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이선환, 전상원 교수를 만나다
직장을 다니면서 대인관계 때문에 고민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직장이라는 공간은 살면서 경험했던 공간들과는 다르게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동안 어찌어찌 길러온 나의 최대한의 사회성과 사교성을 발휘해야만 하는 공간이다. 그리 노력해도 상사는 내 예측대로 행동하지 않고, 심지어 이해할 수 없는 범주에서 행동하기도 한다. (실제로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으로 과다한 업무량은 24%밖에 안 되지만, 인간관계는 무려 51%를 차지한다.)
그래서일까,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으레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선환 교수는 초점을 타인이 아닌 자신에 맞추어 생각해 보라 조언한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에 먼저 초점을 맞추어보라는 것이다. 그에 대한 정신과 의사의 통찰을 인터뷰를 통해 들어보았다. 결론적으로는 '나를 먼저 챙기는' 건강한 관계 맺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정작 상처를 준 사람은 정신과에 오지 않는데 상처를 받은 분들이 많이 오기에, 나를 먼저 챙기는 관계의 세 가지 원칙을 알려주고 싶으셨단다. 브런치 글에는 그중 한 가지 원칙을 소개하고자 한다.
Q. 그동안 빌런의 특성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았는데, 빌런에 대처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들어보지 못했어요. 어떤 원칙들인지 궁금합니다.
이선환(이하 이): 영업사원 경험과 정신과 의사로서의 경험을 살려, 건강한 소통을 통해 관계를 잘 만들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세 가지는 모두 관계를 잘 만들기 위해 필요하며, 기억하기 쉬우시도록 일부로 '기억(ㄱ)'으로 시작하는 단어로 준비했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공기'입니다. 사람마다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정신과 의사들은 특히 사람의 공기, 즉 분위기를 봅니다. 내과 의사가 신체검사를 하듯, 저희는 얼굴, 표정, 목소리 톤을 통해 정신 상태를 파악합니다 (Mental Status Examinaion, MSE). 즉, 상태를 파악하는 순서가 있는데 가장 첫 번째로 보는 게 그 사람의 분위기, 얼굴, 표정, 목소리의 톤입니다.
Q. 분위기를 읽는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이: 표정을 보고 '우울하겠다', '불안하겠다', 아니면 '건강하겠다' 같은 상태를 파악하는 겁니다. 사람의 얼굴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거든요.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어요. 직장인들의 표정을 출근부터 퇴근까지 관찰했습니다. 그래서 평균을 내봤더니, 하루에 평균 3시간은 찡그리는데, 웃는 시간은 1분 30초에 불과했습니다! 웃을 여유가 없다는 건, 직장인들의 마음 건강 상태가 이미 바닥이라는 거예요. 환한 얼굴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에너지가 없는 거죠. 그렇다 보니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곳간에서 인심이 나야 하는데…‘ 충만해야 하는 내 마음의 에너지가 이미 바닥이 나있으니, 사소한 자극에도 짜증이 나고 갈등에 격하게 반응하는 겁니다.
후배가 인사를 안 할 때를 생각해 봅시다. 기분이 좋을 때는 '무슨 일 있나 보다' 하지만, 기분이 나쁠 때는 '나를 무시하는 건가??'라고 해석할 수 있죠.
Q. 그럼 웃는 얼굴로 내 공기를 밝게 하면 빌런을 물리칠 수 있다는 건가요?
전상원(이하 전): 맞아요. 공격을 막아내는 최고의 방법이 웃는 얼굴입니다. 웃는 얼굴에는 침 못 뱉어요. 물론 하루 종일 웃긴 어렵지만, 직장에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최고의 방어책은 밝은 표정입니다.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빌런을 튕겨내는 자연 보호막이 바로 밝은 분위기와 웃음, 쾌활함으로 나의 공기, 나의 아우라를 밝게 바꾸는 거라는 걸요. 똘망똘망해 보이면 괴롭히기 힘들어요. 웃고 있으면 한마디 하려다가 뒤돌아 서게 돼요. 물론 정말 이상한 빌런들은 그걸 깨부수고 들어와야 빌런이지만요...
이: 실제로 뇌과학적으로 잘생긴 사람을 보면 우리 뇌에는 쾌락 중추가 활발하게 반응합니다. 그래서 잘생긴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거예요. 그런데 잘생긴 얼굴보다 우리의 뇌를 더 즐겁게 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웃는 얼굴입니다! 웃는 얼굴을 하면 내 기분뿐 아니라, 나를 보는 상대의 뇌도 즐거워져요. 그러니 웃는 얼굴로 나의 아우라, 나의 공기를 밝게 환하게 바꾸는 게 나를 지키는 첫 번째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 웃음은 전염도 돼요. 웃음이 우성입니다. 웃는 얼굴과 찡그린 얼굴이 맞부닥치면 웃는 얼굴이 이겨요. 그러니까 자신 있게 웃읍시다.
Q. 하지만 회사에 가면 웃음이 안 나오는걸요. 출근 몇 시간 만에 이미 바닥에 닿아 텅텅 빈 마음의 에너지는 어떻게 채워야 할까요?
이: 두 가지 꿀팁이 있는데, 첫 번째는 많이 놀아야 합니다. 진료실에 오시면 꼭 여쭤보는 게 "퇴근하고 뭐 하고 노세요?"라는 질문이에요. 그럼 대부분 퇴근하고 유튜브를 보거나, 치킨에 맥주를 마신다고 답하세요. 그건 노는 게 아니라 쉬는 겁니다. 나를 즐겁게 만들고, 막 웃으면서 할 수 있는 '놀이'를 해야 합니다. 저는 테니스를 치는데, 치다 보면 너무 신나거든요. 그런데 헬스클럽은 신나는 마음으로 가기 어렵죠.
노는 게 도대체 뭘까? 잘 모르시겠으면 아이들을 보면 됩니다. 아이들은 놀이와 휴식을 분명하게 구분해요. 놀고 있을 때 쉬라고 하면 "안 돼! 나 지금 놀아야 돼!"라고 하죠. 아이처럼 쉬는 것과 노는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생각의 힘으로 내 몸에 따뜻한 정서를 채우는 겁니다. 머릿속에 레몬을 떠올리고 베어 물면 실제로 침이 나오죠? 우리 뇌는 실제와 생각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회사 다니기 싫어'라고 생각하면 몸도 그렇게 되지만, '불경기에 출근할 수 있는 회사가 있어 그래도 고마워'라고 생각하면 몸도 그래집니다. 감사일기가 개인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아침부터 소소하지만 감사한 것들을 떠올리고 그걸 꾸준히 생각하면 내 정서적인 에너지도 채워지는 경험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Q. 마지막으로 대인 관계 때문에 직장에서 힘들어하는 직장인 분들께 응원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전: 직장은 개인의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 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생계를 위해 다니는, 나의 배움에 신경 쓰기보다는 나를 투자한 가치를 더 보고 싶어 하는 곳입니다. 태생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즐거운 직장은 없습니다. 직장은 항상 힘들고 버텨야 하고 이겨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죠. 그럴 때마다 직장은 원래 힘든 곳이라는 걸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대신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함께 노력하면 조금은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이: 정신과에 오시는 분들을 보면 이기적인 분들보다 이타적인 분들이 많아요. 자기보다 타인을 위하고 배려해 주는 착한 사람들이요. 그러니 대인관계에 지치고 상처를 많이 받으실 텐데, 저는 이 말씀드리고 싶어요.
“컵을 가득 채우고 거기서 흘러내린 물로 베풀어. 그런 다음에 베풀어도 늦지 않아. 우선 너부터 챙기자. 네 마음의 컵부터 가득 채우자."
대인관계로 힘들어하시는 분들을 보면 본인 마음의 컵이 비어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좀 노셔야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 노는 데 너무 인색해요. 먹고 자고 노는 기본적인 것부터 하면서 자신을 먼저 챙기시면 좋겠습니다.
결국 직장 생활이라는 긴 마라톤을 끝까지 (건강하게) 달릴 수 있게 하는 힘은 타인의 인정도 성과도 아닌 내 안의 에너지인 것 같다. 그동안 남들 눈치 보느라 마음의 컵이 텅 비워졌다면, 올해는 그 컵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해 보면 좋겠다. 컵을 채울 때는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도, 자기 분석도 멈추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내가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놀이를 그저 웃으면서 하면 좋겠다. 타인을 향해 쏟았던 그 다정한 배려를, 이제는 가장 먼저 '나'에게 베풀어줄 시간이다.
해가 질 무렵 언덕 위 나무를 향해
셋이 달리기를 했어요.
먼저 말을 꺼낸 에렌이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고 미카사는 일부러 늦게 달렸죠.
전 당연히 꼴찌였고요.
하지만 그날은 바람이 따스해서
그저 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어요.
낙엽이 휘날렸죠.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요.
여기서 셋이 달리기를 하려고
태어난 게 아닐까 하고요.
비 오는 날 집에서 책을 읽을 때도
다람쥐가 제가 주는 열매를 먹었을 때도
애들과 시장을 돌아다닐 때도
그 생각을 했어요.
그런 소소한 순간들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죠.
- 진격의 거인 4기, 아르민 알레르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