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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의학신문 May 28. 2018

'금수저 신드롬', 그리고 자기애성 성격장애

[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씁쓸한 '금수저 신드롬'

대한항공의 이른바 '갑질 사건' 때문에 언론이 떠들썩했다. 대한민국의 이름을 걸고 항공기를 운항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 일가의 사람들이 부하 직원이나 힘없는 하청 업체 사람에게 물컵을 집어던지고 폭언을 하는 등 유무형의 폭력을 행사해 왔던 사실이 드러나자 많은 사람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태어난 이들을 금수저라 칭한다.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심지어 흙수저라는 용어까지 등장하면서 사회경제적 위치를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배경으로 규정짓는 이들이 많아졌다.

사실 수저의 색깔에 대한 이야기들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조적 비하와 박탈감 때문일 수 있다. 자신보다 나은 이들에 대한 끊임없는 비교, 질투와 부러움, 상대적 박탈감과 같은 복잡미묘한 감정은 인간을 다른 포유류와 구분 짓는,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소위 '금수저'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은 존재한다. 이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는 뜻이다. (위키피디아-노블리스 오블리주 참조)

인류 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부가 불균형하게 배분되었다. 이에 대한 고민과 함께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어 왔으며, 현대에 와서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에 가까워졌다.

사진_픽셀

요즘 언론을 오르내리는 대기업 일가의 갑질, 자신보다 낮은 지위를 가진 이들에 대한 하대와 폭력 등은 우리가 사회에서 느끼는 박탈감과 맞물려 더 큰 색안경을 끼게 만든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에서 운영하는 청원 게시판에서는 소위 '갑질'을 한 대기업에 대한 폭로와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금수저에 대한 사회적 관심 혹은 비난은 연일 뜨거워지고 있다. '금수저 신드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곡된 소위 '금수저'의 모습은 어떠한 정신병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금수저라 불리는 이들이 모두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그들의 비뚤어진 모습은 자기애성 성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나르시시스트)의 일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금수저

자기애라는 말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나르키소스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그는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빠져 있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빠져 있다 결국 그 자리에서 죽어 꽃이 되었다.

자신이 마음속에 가득 찬 이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나 관심은 없다. 오직 모든 일에 자신이 최우선이어야만 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가장 큰 특징은 거만함과 이기심이다.

자신에 대한 과대 사고를 가지며 끊임없는 특별대우를 요구한다. 자신이 모든 일의 기준이어야 하며, 상대적으로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는 빈약하다. 자신보다 나은 평가를 받는 이들에 대해서는 아이처럼 질투하며, 일견 이해되지 않는 유치하고 충동적인 행동도 한다.

현재 언론에서 연일 보도하고 있는, 충동적이면서도 거만하고 이기적인 일부 재벌가의 모습이,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특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지 않은가?

사진_픽셀

대개의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경우 그 이면에 낮은 자존감과 취약함을 가리기 위한 가면으로 나르시시스트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기적이고 거만한 모습 뒤에는, 동정심을 불러내는 어린아이가 숨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극단적인 성장 환경에서 생겨난 자기애성 성격도 있다. 아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물질적으로 충족시켜주며, 인내심이나 자기 절제를 가르치지 않는 성장 환경에서 자란 이들 또한 이기적이고 충동적인 자기애성 성격 특성을 가진다.

지탄을 받는 '금수저'는 후자 쪽에 가까울 것이다. 이런 왜곡된 금수저들의 모습에서는 동정이나 공감을 가지기 어렵다.
 

왜곡된 '금수저'들, 풍요 속의 빈곤?

분명 풍족한 성장 환경은 축복이지만, 절제와 질서가 함께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특권 의식과 손상된 자기 조절 능력을 갖게 된다.

일반적으로는, 아이가 성장하면서 '손만 뻗으면 뭐든지 얻을 수 있었던' 과거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내적 경계가 허물어지고, 타인과 섞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원하는 것들을 대부분 이룰 수 있었던 이들에게 이런 감각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풍요 속의 빈곤’이다.

사진_픽셀

단순히 풍족한 환경에서 성장한 이들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사회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이들에게 사회적 규범과 질서에 대한 잣대는 당연히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그들이 취한 행동과 판단이 수많은 이들에게 적잖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과 사회의 정점에 있는 이들은 좋든 싫든 '공인'에 가까운 법이다. 채 성숙하지 못한 성마름으로 위계에 기댄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행하는 이들의 모습에 우리는 씁쓸할 뿐이다.

 
부디 이번 대한항공 사건을 통해 생겨난 작은 파문이, 사회 전반에 퍼져 각자가 가진 사회적 책임과 부채 의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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