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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의학신문 Jun 23. 2018

가상화폐 광풍의 끝, 중독 그리고 정신건강

[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상화폐 광풍, 그 앞에서 우리는

2017년 말, 그리고 2018년 초는 가상화폐에 대한 열기로 가득했다.
언론에서는 연일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의 가격 상승에 대해 보도하고, 사회는 이에 대한 장밋빛 전망과 우려를 쏟아내기도 했다.
어떤 젊은이들은 가상화폐가 일확천금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생각에 무리한 대출을 끌어 투자하였다.
24시간 돌아가는 가상화폐 시장의 특성 때문에, 투자자들은 서로 돌아가며 가격 보초를 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17세기 말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를 기억하는가?
튤립이 수 천 배의 가격 상승을 보이면서, 네덜란드의 국민들은 너도나도 투기에 뛰어들었다.
주먹 크기밖에 되지 않는 튤립의 구근이 엄청난 부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생각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열광했고, 사회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다들 알다시피, 투기의 끝은 잔혹했다. 투자의 열기가 갑작스레 꺼지면서 당시 네덜란드 사회는 혼란스러워졌고, 이로 인해 목숨을 끊는 이들도 생겨난 것이다.
 
가상화폐 광풍이 끝나가는 분위기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가격 상승이 멈추고, 시장의 열기가 한풀 꺾였다. 어떤 가상화폐는 광풍이 불기 이전의 가격대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무리한 대출을 받고 시종일관 가상화폐의 가격 상승만을 바라며 그래프를 지켜보던 이들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가상화폐 중독의 늪에 빠진 이들은 어떤 괴로움을 겪고 있을까?


사진_픽셀


우리에게 가상화폐 광풍이 남기고 간 것들

가격 상승에 대한 집착하며, 근거 없는 장밋빛 미래에 현혹되어 투자금액이 점차 늘어나고, 한 시라도 투자를 멈추기 힘든 관성이 생기며, 이로 인한 일상생활, 사회적 활동에 주는 부정적 영향 등에서 가상화폐 광풍이 '중독 현상'과 맞닿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정신의학에서 가장 널리 사용하는 진단체계인 DSM-V에서는 2013년 처음으로 <도박장애>를 '비물질성 중독'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과거에는 도박 행위를 충동조절의 문제로 인식했지만, 연구자들은 도박 행위에서 나타나는 집착, 금단, 내성, 갈망, 이로 인한 삶의 부정적 영향 등과 더불어 뇌 영상 연구에서 보이는 뇌의 특성이 충동조절의 문제보다는 중독의 범주에 더 가깝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가상화폐 광풍은 중독 현상, 더 구체적으로 도박장애와 같은 행위중독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가상화폐의 열기가 꺼져가는 지금, 중독의 늪에 빠진 이들은 충족되지 않는 갈망으로 괴로울 수밖에 없다.
중독은 중독 대상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몰입으로 시작한다. 뇌는 서서히 중독 대상에 대한 보상회로를 형성하며, 중독 대상에 적응된 뇌(neuroadaptation)는 심한 갈망과 금단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불안, 초조, 좌절, 감정 기복 등의 여러 심리적 문제가 불거지고, 불면, 활력의 저하, 직업적 효율의 저하 등의 실생활 문제가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온다.
 
상승에 대한 기대의 좌절, 닥쳐오는 현실의 혹독함, 자신 이외의 투자자들의 성공담을 들으며 느끼는 박탈감 등의 복잡미묘한 감정은 '실패한' 투자자들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급기야 우울증과 같은 기분장애를 비롯하여 여러 심리적인 문제 또한 나타난다.
실제로, 가상화폐에 과도하게 몰두했던 몇몇 이들은 최근 일어난 가격의 폭락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선택을 하기도 했다.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다. 애초에 가상화폐 열풍은 사회 구성원이 느꼈던 박탈감에 기인한다.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점차 치워지고, 사회 내의 빈부격차는 더욱 커져만 간다.
가상화폐 광풍이 끝나고 나니 왜곡된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에는 이를 답답한 현실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여겼던 이들도 있었다.
열기가 한풀 꺾이고 가격의 심한 변동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다시 한번 절망과 좌절에 빠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진_픽셀


가상화폐 중독을 극복하기 위하여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며, 학습을 통해 성장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군중을 들썩이게 했던 비이성적인 가상화폐 신드롬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중독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물론, 한 대상에 쉽게 몰입하고 잘 빠지는 성격적 특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성격이나 기질적 원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중독의 늪에 빠질 수 있다.
그 대상도 실로 다양하다. 과거에는 알코올, 마약, 담배 등 체내로 투입되는 특정 물질에 대한 중독만을 이야기했지만, 쇼핑, 일, 성적 행동, 도박, 게임 등의 '행위중독'들도 무척 다양하다.
 
자신이 경험했던 감정, 사고, 행동이 중독의 범주에 있지는 않았나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집착은 분명 중독에 가깝다. 자신의 모습이 중독 행태에 가깝게 여겨진다면, 이미 뇌 안에서는 중독 대상에 대한 보상회로가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보상회로의 작동으로 인해 나타나는 끊임없는 갈망은 우리를 중독의 늪에서 쉽게 놓아주지는 않는다.
스스로를 통찰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갈망과 금단으로 인한 자기 파괴적 행동이 도돌이표처럼 돌아올 뿐이다.
 
중독에 깊이 빠져든 상태라면 이는 더 이상 개인의 성격이나, 충동의 문제가 아니다.
혼자 힘으로 극복하려 하거나, 타인에게 숨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과도한 대출 등으로 인한 금전적 피해가 발생했다면, 이를 알리거나 드러내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독을 벗어나기 위한 제 1원칙은 '내가 중독에 빠져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이를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중독은 중독 행위 자체뿐만 아니라, 우울증과 불안장애, 알코올 의존 등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전문적인 평가와 진단,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중독을 벗어나기 위한 지름길은 없지만, 전문적인 도움은 치료 방향의 이정표를 세워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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