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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의학신문 Jul 31. 2018

모든 일이 귀찮은 마음, 왜 이런 걸까요?

[정신의학신문 :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회사에 가는 것도, 주어진 일을 하는 것도, 퇴근길에 운전을 하는 것도, 모든 일이 다 귀찮아요.
예전엔 하고 싶은 것도, 열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요샌 모든 일이 다 귀찮기만 합니다.
그냥 마지못해서 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취미라도 가져보려고 이것저것 해봤는데 몇 번 하다가 귀찮아서 포기하기 일쑤였습니다.
요즘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던데 그건 아닌지 걱정도 되고, 평생 이렇게 살까 봐 그것도 걱정입니다.
귀찮은 이 모든 것들에 의욕이 생기는 날이, 기다리면 과연 올까요?




우리가 쉽게 내뱉는 말 중에 하나가 "귀찮아"라는 말이죠.
귀찮아서 운동도 하기 싫고, 귀찮아하며 소파에 누워 있게 되죠.
"그딴 것 해봐야 뭐해요? 귀찮기만 하지."라고 말하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나이 들어서, 피곤하고 지쳐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귀찮아"라는 말속에 여러 가지 심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진_픽셀


"귀찮아" 속에는 어떤 마음이 숨겨져 있죠?

"귀찮아"는 심리적 회피입니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 평소에 해 보지 않았던 것을 경험하는 것, 새로운 취미를 만들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새롭게 배우는 것.
이런 건 일단 해보면 즐겁고 흥분되지만 새로운 시도라는 건 언제나 조금 불편하고, 힘이 들게 마련이죠.
익숙한 건 편하지만, 새로움에는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반드시 따르기 마련이죠.
 
"귀찮아"라는 말에는 변화에 따르는 불편을 회피하려는 심리가 녹아 있기 마련입니다.
쉽게 포기해 버리는 자기 자신을 "귀찮다"라는 말로 합리화하려는 마음이 숨겨져 있기도 합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러 갔다가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서 창피해지는 것이 싫어요."라며 새로운 도전을 거부하고, "그냥 살던 대로 살아야지, 귀찮게 이 나이에 뭘 해요."라며 세월의 흐름에 자기를 눌러 앉혀 버리기도 합니다.
이건 모두 "귀찮아"라는 말로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는 겁니다. 
 

'의욕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귀찮다.' 이 말의 인과 관계가 맞는 건가요?

쉽게 생각하면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의욕이 없고 우울한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의욕이 없는데 어떻게 운동해요? 의욕이 없으니까, 누워 있는 거죠. 저도 취미 생활, 운동하고 싶어요. 그런데 의욕이 없으니까 못하는 거예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의욕이 생기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의욕은 절대 생기지 않습니다.
 
심리 치료 중에, 행동활성화 치료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치료법의 핵심은 내적인 의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가치에 따라 행동하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의욕이 생기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 인생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것을 떠올리고, 비록 의욕이 없더라도 삶의 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을 꾸준히 실천하게 되면, 자연히 의욕이 생겨나게 된다는 겁니다.
이런 원리에 따라 행동하면, 자연스럽게 활력과 정열을 되찾을 수 있죠.

조금 어렵게 설명하자면,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이 아니라, 아웃사이드 인(outside in)으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정열이나 활력은 인사이드 아웃이 아니라, 아웃사이드 인으로 활동할 때 생기는 거거든요. 
 

일상은 다 비슷 비슷하니까 너무 익숙해서 귀찮은 건 아닐까요?

매번 하던 대로 하면, 일상이란 익숙한 것이니까, 그대로 하면 편하죠.
하지만 이렇게 익숙한 대로만 살면, 권태로워지고 의욕은 점점 사라집니다.
삶은 무의미해지고, 마음은 메말라버립니다.
“귀찮아”가 입버릇처럼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삶은 흑백처럼 색이 바래져 버립니다. 

강을 건너야 산을 오를 수 있는 여행자가 ‘귀찮게 왜 강물에 발을 담그려 하니? 저 물은 차갑고 송곳에 찔리는 것처럼 아플 거야. 강을 건너는 건 귀찮은 일이야. 그냥 뒤돌아버려.’라는 내면의 목소리에 굴복해서 그냥 주저앉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말이 요즘 심심찮게 들려오는데, 정확히 어떤 증후군인가요? (위 증상을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나요?)

번아웃 증후군은 우리말로 소진 증후군이라고 하는데요.
비유하자면 자동차 연료가 다 떨어지고, 핸드폰 배터리가 다 떨어진 상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익숙한 일상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에너지가 소진되어 버립니다.
새로운 자극으로 정신적 에너지를 보충하지 않은 채, 계속 에너지만 소비하게 되는 거죠.

위 증상도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상을 반복하면서, 최근에는 의욕도 없고, 지친 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것이 몇 년째 계속되어 왔다면 번아웃 증후군뿐만 아니라, 만성 피로증후군이나, 만성 우울증 등의 다른 문제들도 고려해 봐야 합니다.
 

취미 생활을 가져봤지만 그것도 실패하셨는데 이렇게 인위적으로 자극을 주는 방법, 필요할까요?

의욕은 새로운 경험을 반복해야 유지되는 겁니다.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되면, 우리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거든요.
이 도파민이 의욕과 열정이 생깁니다.
흥분되고 짜릿한 느낌도, 도파민 때문이고요.
약간 불확실하고, 약간 불편하더라도 새로운 경험을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딱 맞는 취미 생활을 찾으려 하지 말고, 무엇이든 일단 시도를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거나, 즐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지 말고, 일단 시도해 보고, 그것이 어떤 느낌일지 체험해봐야 합니다.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새로운 경험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 뒤에서 밀어주면 시동이 걸릴 때가 있잖아요.
뒤에서 밀어서 차 시동을 걸 때, 처음은 힘들어도 시동이 걸리고 나면 힘들이지 않고 앞으로 쭉 나가잖아요.
마찬가지로, 일부러라도 새로운 취미를 갖는 것은, 처음에는 힘이 들어도, 어느 순간부터 편해지고, 이 경험을 통해 활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진_픽셀


위와 같은 증상에는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어요?

“귀찮아”를 물리치는 에너지는 몸을 움직여야 생깁니다.
몸으로 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더 귀찮아집니다.

“귀찮아”라며 집에서 쉬려고만 하면 안 됩니다.
시간이 나면, 책 한 권 들고 집 근처 카페에 가십시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세요.
책 읽는 것이 귀찮으면, 카페에 앉아서 사람 구경을 해도 좋습니다.

멀리 여행 갈 수 없다면, 마치 여행을 떠나 왔다고 느끼며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작은 골목들을 헤집고 다녀보세요.
음악을 좋아한다면 훌륭한 연주를 찾아 듣고, 미술을 좋아한다면 시내로 갤러리로 투어를 떠나야 해요. 
열정 넘치던 예전 자기 모습을 떠올려 보고, 과거의 내 모습을 흉내 내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전에는 시간 나면 자전거 탔는데...' 그러면서 과거의 내 행동을 따라 해보는 거죠. 
 
"산다는 것은 호흡하는 것이 아니다. 산다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라고 장 자크 루소가 말했죠.
사람은 경계를 넘어서서 낯선 영역을 탐색할 때,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는 법입니다.

“귀찮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주저앉히지 말고,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귀찮아” 속에 숨겨진 회피 심리도 사라집니다.
그래야 열정도 다시 활활 타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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