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동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예술가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어떤 이들은 예술가들을 천재라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술가들이 이상한 사람들이라고도 한다. 이 문제는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고 다루기 껄끄러운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가 역사적으로 그리고 정신의학적으로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알아보자.
고대 역사에서 예술가가 본격적으로 문헌에 등장한 것은 그리스 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플리니우스(Plinius)의 박물지(Natural History)에는 자연을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모방하는 예술가를 칭송하는 일화가 많이 실려 있다. 포도송이 그림에 새들이 속아서 날아들었다는 제욱시스(Xeuxis)의 일화는 그의 작품이 천재적인 눈속임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림에 휘장을 그림으로써 제욱시스의 눈을 속인 파라시오스(Parrhasios)의 일화 역시 동물을 넘어서 화가마저 속인 천재적인 재능을 칭송하고 있다(후대의 화가들은 파라시오스의 일화를 좇아서 베르메르의 작품 <회화의 기술>에서처럼 휘장을 즐겨 그림으로 해서 자신을 천재의 위치에 올려놓고 싶어했다). 이렇듯 인간 중심적인 그리스 사회에서는 예술가가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늘 천재로 대접받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천재로 대접받은 시기가 훨씬 더 적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중세 이후 예술가들은 그저 솜씨가 뛰어난 장인에 지나지 않았고, 그 장인이 누구인지조차도 중요하지 않은 시대를 살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예술가들은 장인에서 뛰어난 예술가로 점차 격상하기 시작했다. 시대가 지나면서 예술가의 위치는 점차 올라갔고 낭만주의 시대에는 이들을 ‘천재’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천재와 광기는 일맥상통한다는 말도 있듯이 천재적인 예술가에게는 남다른 광기도 있다는 생각도 점차 커지게 되었다. 특히 영국에서는 자살한 예술가가 사회의 책임이요, 개인의 질병의 결과라는 시각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런 계몽주의적인 사고의 발달로 예술가는 천재와 정신질환자 사이에 놓이게 되었다.
정신의학에서 예술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된 것은 정신분석의 태두인 프로이트에 의해서였다. 프로이트는 수요일마다 모인 증례발표 시간에 증례가 부족할 때 예술작품을 다루기도 했는데 그가 다룬 예술가로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도스토예프스키 등이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 내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의식이 있으며, 무의식에는 성욕(libido)이나 공격성(aggression)이 내재되어 있고, 무의식이 의식보다도 정신세계에 더 많은 영역을 차지하며 우리의 일상에서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그는 예술활동이라는 것이 무의식에 있는 소망이 의식세계에서 받아들여질만하게 교묘히 왜곡, 위장되어 나오는 것이며, 성적 에너지가 승화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예술가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에 의하면 예술가는 명예와 부를 추구하지만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환상의 세계로 관심과 욕구를 돌리다가 그 환상을 새로운 형태의 진실로 펼치는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예술가들로부터 큰 반박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프로이트는 예술가가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지만 신경증 환자는 아니라는 식으로 입장을 바꿨다. 하지만 예술가들의 불만은 지속되었고 이후 예술가는 정신분석가를 멀리하고 불편하게 여기게 되었다.
이런 갈등은 프로이트의 제자인 크리스(Ernst Kris)에 의해 중재되었다. 크리스는 예술가가 보통 사람보다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예술가의 자아가 무의식계를 쉽게 들락거릴 능력이 있고, 또 무의식에 있는 내용물에 압도당하지 않고 이에 접근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즉, 예술가는 무의식의 각종 욕구와 충동에 쉽게 다가가서 그 내용물을 꺼내서 어떤 예술적 영감에 의하여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크리스는 이런 예술가들의 능력을 ‘자아의 주도 아래 일어나는 퇴행능력’(regression in the service of Ego)이라고 했다.
프로이트 제자 중 또 한 사람인 융(Jung)은 무의식의 긍정적인 의미를 확장시켰는데, 그에 의하면 무의식은 의식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며 그러한 시도 속에서 예술도 형성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크리스와 융의 노력으로 인해 예술가는 자아와 무의식의 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현대의 정신의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프로이트, 크리스, 융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주장하기 껄끄럽긴 하지만 예술가 중에는 병적인 경우도 상당히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예술성과 창조성을 돋우는 동기로 알려진 것은 긴장과 불안을 잘 참아내는 능력, 성격장애나 양극성장애(‘조울병’이라고도 하며 기분이 극도로 좋아지고 과대망상에 빠지기도 하다가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는 병으로 고호, 슈만, 헤밍웨이, 버지니아 울프 등 많은 예술가가 겪었던 정신질환이다)나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는 경우, 신체불구나 기형이 있는 경우, 과거에 비애와 불만이 많은 경우, 오이디푸스적 갈등이 많은 경우가 있다.
이렇게 예술성을 돋우는 동기를 살펴보면 예술가들은 병적인 상태든 아니든 간에 일반 사람보다 어려움도 많이 겪고 또 이를 참아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술가가 천재적인 사람이냐 광기를 지닌 사람이냐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힘든 인생을 살면서도 이를 극복해가고 재창조하여 승화하는 사람들이 바로 예술가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글쓴이_신동근
마마라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 정신과 전문의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겸임교수 역임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미술치료학과 겸임교수
한국정신보건미술치료학회장
한국소비자원, 기업소비자전문가협회, 농심, CJ 자문의사
KBS 2TV 아침뉴스타임 <신동근의 힐링타임> 진행 (2015.7 ~ 2016.4)
KBS 팟케스트 <힐러들의 수다>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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