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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의학신문 Jan 16. 2018

꿈은 줄어드는게 좋을까, 늘어나는게 좋을까?


[정신의학신문 : 이정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 눈앞에 놓인 건 아무리 올려다봐도 끝이 없는 계단.
발 뒤꿈치가 허전한 것이 뒤는 돌아볼 것도 없이 낭떠러지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앞으로 발을 내딛는다. 분명 계단을 올라갔는데, 뒤꿈치가 서늘한 건 여전하다. 왜지?

이런! 계단이 아래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올라가지 않으면 나도 함께 떨어지고 만다.

난 위로 올라갈 수 밖에 없다.

난, 멈출 수 없다. 살기 위해서.



위의 이야기는 제가 고3 수능을 앞두고 몇 차례 반복해서 꾼 꿈의 내용입니다. 저는 이 꿈을 꾸고는 '아, 내가 시험 스트레스를 받고 있긴 하구나'라며 스스로를 되돌아보곤 했는데요, 고등학교 졸업 후 강산이 변한지도 오래인데 '꿈'하면 아직도 이 꿈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여러분도 혹시 간직하고 있는 꿈이 있나요?


꿈은 우리와 굉장히 가까이 있지만 그 실체는 여전히 모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신비롭기도 하고 영화나 소설 등 이야기의 주제로도 많이 등장하지요. 19세기 중반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꿈에 대한 여러 연구들이 진행되었지만, 꿈은 여전히 우리의 이해를 훨씬 넘어서는 곳에 있습니다.


진료를 하다 보니 꿈에 관해 이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꿈은 줄어드는게 좋을까,
아니면 늘어나는게 좋을까?"


진료를 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거든요. "요즘 자면서 꿈을 너무 자주 꿔요. 좀 더 깊이 잤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얼마 전에는 이런 이야기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몇 일 전에 자다가 오랜만에 꿈을 꿨어요. 간만에 꿈을 꾸고 일어나니까 너무 기분이 좋더군요!"


이럴수가...


누군가는 꿈을 꿔서 싫어하고 누군가는 꿈을 꿔서 좋아합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지금부터 파헤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꿈의 기능


꿈은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할까요? 과학적인 입장에서 꿈은 신의 계시나 다른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닌 우리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반응입니다. 2017년 6월 Nature Neuroscience에 발표된 뇌영상 연구를 보면 꿈을 꿀 때 공통적으로 활성화되는 영역이 대뇌의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군요(F.Siclari, et al.).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꿈은 다음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선 꿈은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스트레스와 격한 감정들을 조절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감정적으로 힘든 하루를 보낸 날 특히 생생한 꿈을 꾼 경험이 있으신가요? 우리의 뇌는 수면, 그리고 꿈을 통해 그날의 힘든 감정을 조절하고 다스려 우리가 다시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끔 해줍니다. 우울증 환자들은 주로 꿈을 굉장히 많이 꾸거든요. 이는 우울증 환자가 감정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에 뇌에서도 열심히 감정을 처리하느라 꿈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꿈은 학습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일상생활에서의 경험을 꿈에서 되감기 하여 반복하며 이를 학습하고 기억하게 됩니다. 한 실험에서는 낮에 쥐에게 미로를 통과하게 하였더니 그날 밤 자면서도 미로를 탐색할 때와 같은 영역의 뇌에서 활성화가 일어났다고 해요.


그 외에도 꿈은 우리의 면역력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돕고, 악몽을 통해 위험한 상황에 미리 대처할 수 있도록 예행 연습을 하는 등 우리의 원활한 일상 생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외에도 꿈에 기능에 대해서 많은 이론이 있고,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연구들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꿈을 꿨다는 사실을 알아채건 아니건, 꿈을 꾼다는 것은 우리의 정신건강에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꿈이 사라진다면


꿈이 사라진다면 위와는 반대되는 상황들이 발생을 하겠지요. 꿈의 결핍은 대부분 REM(Rapid Eye Movement) 수면의 결핍에 대한 연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1950년대 꿈에 대한 연구가 적극적으로 연구되던 시절 REM 수면이 꿈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인데요, 현재는 비REM(Non REM) 수면 상태에서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이 밝혀져 있습니다. 다만 시각적이고 생생한 꿈은 주로 REM 수면에 이루어진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이론이며, 비REM 수면 중에도 꿈을 꾼다는 사실이 그동안의 REM 수면 중 꿈에 관한 연구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적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REM수면에서의 꿈에 저하에 대한 연구를 소개하는 것이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 논문에 따르면 꿈이 주로 나타나는 REM 수면이 결핍되었을 때에는 면역력 저하, 기억력 저하 뿐 아니라 감정 조절의 어려움, 예민함, 과도한 통증 반응 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불면이 있는 사람들도 이와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요, 선택적으로 REM 수면과 꿈이 결핍된 경우에도 체중 증가나 집중력 저하, 짜증, 불안 등등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하니 수면 중 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꿈을 되돌릴 수 있을까


꿈은 어떤 상태에서 줄어들까요? 꿈은 주로 각종 수면 장애, 약물, 그리고 생활습관에 의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수면 장애는 어떤 종류이건 수면 생리 자체가 망가진 것이기 때문에 꿈이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현상은 따라올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전문가의 상담을 받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수면 장애를 치료하는 것이 꿈도 회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약물 자체가 꿈을 줄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술'인데요, 술은 입면 시간을 줄여 잠에 도움이 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지만 실제로는 잠의 유지와 깊은 잠을 방해해 잠과 꿈을 모두 해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을 못 잘 때 술을 마시는 건 절대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그 외에도 우리가 병원에서 처방을 받을 수 있는 벤조디아제핀, 항콜린성 약물, 항우울제 등은 REM 수면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꿈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치료를 중단해서도 안되겠죠, 본인의 병을 의사와의 상의 하에 잘 치료하고 약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입니다. 꿈이 줄어든다고 해서 받아야할 치료를 받지 않는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됩니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생활습관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이니까요. Rubin Naiman에 따르면 밤에 사용하는 과도한 밝은 조명(Excessive artificial light at night, LAN)과 매일 아침의 알람은 총 수면 시간을 줄이고 우리의 일주기 리듬을 해치기 때문에 REM 수면을 억제해 꿈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비정상적인 꿈의 감소는 원인이 해결되면 다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질환이나 술 문제, 약 복용과 같은 이유들이 없다면, 적절한 환경에서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늘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내 수면의 상태와 환경을 체크하고 교정 가능한 부분들을 바꾸어 나가는 건 우리의 건강을 위한 소중한 투자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도입부에 소개해드린 꿈을 꾸고 좋아했던 환자분은 아마 비정상적으로 감소했던 꿈이 다시 회복되면서 긍정적인 경험을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오랜만에 꿈을 꾸면서 적절한 감정 처리 등이 이루어지면서 더 상쾌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죠. 반면에 꿈이 많아졌던 환자들은 주로 우울증이나 기타 질환이 악화될 때 그런 호소를 많이 하게 되는데 그만큼 많은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더 많은 지지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에 가장 어려운 부분은 실제로 내가 꿈을 꾸었는지, 꾸면 몇 번을 꾸었는지를 알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이 글을 읽으며 ‘난 꿈을 안 꾸는데’라며 걱정을 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너무 염려 마세요.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모두 꿈을 꾸고 있으니까요.


꿈은 관심을 가질수록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잠에서 깬 직후에 꿈을 기록하거나 되내이면 오래 기억할 수 있다고 해요.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몰라도 내 꿈에 관심을 가지고 탐색해보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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