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자기애성) 성격장애
[정신의학신문 : 신승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늘 잘난 척을 하고, 자신의 업적을 뽐내고 싶어 하며, 한편으로는 다른 이들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고, 타인보다 한발 앞서나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지닌 경쟁적인 사람. ‘거만하다, 재수 없다’는 다양하고도 부정적인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사람.
혹시, 주변에서 이런 사람을 찾아볼 수 있는가? 혹시 자신의 모습이지는 않을까? 바로, 나르시시스트(Narcissist) 혹은 자기애성 성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에 대한 이야기다.
겉으로 보이는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적인 모습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우월감을 강조한다. 자신에게 오는 칭찬에 집착하는 반면 타인에게 하는 칭찬에는 박하고, 자신을 제치고 칭찬받는 상대를 대놓고, 혹은 은근히 깎아내리기가 다반사다. 자신의 자존심이 다쳤다고 느끼는 순간, 폭발적으로 감정을 터뜨리며,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보복을 행하기도 한다. 자존심이 걸린 이슈에는 언제나 민감한 모습을 보이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날 때면 이상하리만큼 무모하고 미숙하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더 극단적인 경우에는, 상대방에 대한 조종과 착취를 일삼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살아오며 만났던 수많은 사람 중,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대개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준다. 같이 있어도 감정의 주파수가 조율되지 않고, 한쪽이 한없이 맞추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피곤하기까지 하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는, 거만한 사람들의 전형인 것이다. 처음에는 이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타인에게 거침없이 비난을 쏟아 붓고, 자신은 찬양 받기만을 바라는 이들을 마음으로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저 이런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며, 만나게 되었더라도 깊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꺼려진다.
하지만,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가족 중의 한 사람, 혹은 내가 속한 직장의 중요한 상사, 혹은 알아채지 못했던 내 배우자의 본모습이라면?
그들을 바꾸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참고 인내하는 사이에, 그들 스스로 자신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착취적이고 거만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바뀌려는 노력을 기울일 확률은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가 그들을 보는 시각을 조금은 달리하는 것이다. 상대방 때문에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표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이는 우선적으로 ‘내가 힘들지 않기 위해서’ 이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스키마 치료 이론(schema therapy theory)에는 스키마 모드(schema mode)라는 개념이 있다. 자신의 스키마가 활성화되는 순간, 표면에는 마치 가면을 바꿔 쓰듯 내부의 다양한 모습이 하나의 모드로 드러나는 것이다. 레고와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는 아이와 같은 키덜트(kidult)의 모습을 보이다가(아이 모드,child mode), 자신의 업무 분야에서는 성숙하고 건강한 성인의 모습(건강한 성인 모드, healthy adult mode)으로 일 처리를 해 나가는 사람들을 떠올린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지만, 내 속엔 나의 다면성을 반영하는 원형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매 순간 촉발 자극에 따라, 겉으로 표현되는 모드들이 변화한다. 나르시시스트는 거만한 모습의 자기 과시자(self-aggrandizer) 모드와, 그 기저에 취약한 아이(vulnerable child) 모드를 함께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거만한 모습의 이면엔,
어린아이가 있다
나르시시스트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자존감’ 이다. 자존감을 건드리는 사소한 사건들을 접하게 되면, 그 냉정하고 거만하기만 한 사람이 미숙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충동적으로 사안을 다루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대개는 그러한 모습을 보면 인상이 찌푸려지고 그들을 상대 하고 싶지 않겠지만, 실은 우리가 그들에 대한 이해를 시작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일 수 있다. 어렵겠지만, ‘거만한 어른’의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자존심을 다쳐서 눈물을 흘리며 울고, 떼를 쓰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의 미숙한 행동들에서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할 때, 희미하게나마 공감의 가능성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나르시시스트의 모습은, 사실은 유약한 아이의 본질을 과잉보상(over-compensation)하여 가려온 가면이라 할 수 있다. 성장 과정에서 열등감, 결핍감, 정서적 박탈 등의 두려운 감정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두꺼운 벽을 만들어 자신을 가리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동정심이 전혀 가지 않는 나르시시스트도 있다. 대개 나르시시스트의 성장 과정에서 열등감과 결핍의 경험들과 더불어, 규제나 통제감을 배우지 못한 경험들을 발견한다. 이처럼 충동적이고 통제되지 않는 성향이 더 강한 사람을 마주한다면,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의 내면에 있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기란 더욱 어려울 수 있다.
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야 할까
그들과 피할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들 스스로가 변화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그들을 받아들이는 관점을 조금씩 바꾸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관계의 어긋남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다.
거만한 어른의 가면 뒤에 숨은 나약한 아이를 발견하도록 하자. 거만하게 구는 이들의 이면에 쓸쓸하고 외로운, 상처 입기 두려워하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그들의 행동과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표면적으로 보이는 무례하고 거만한 행동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는, 그러한 행동을 유발한 동기를 살펴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감정에 약간의 공감을 더 얹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갈등 관계에서 이해에 기반을 둔 공감은, 갈등의 압력을 낮추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거만하고 이기적인 가면의 뒤에 숨어있는 아이에게 공감의 느낌이 전해진다면, 조금씩 자신을 가리고 있던 벽을 걷어 낼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를 견디려면 수많은 시행착오와 인고의 시간을 겪어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나르시시스트라면,
어떻게 변해야 하나
사실, 나르시시스트 본인이 스스로 ‘나의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고쳐달라’며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개는 관계의 위기에 봉착해 상대방의 강권으로 찾아오거나, 자존심을 크게 다친 상태에서 우울감을 가지고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면 자신이 애써 외면해 왔던 나약한 자신과 마주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 동안 기억 속에 묻어 놓았던, 끔찍한 과거의 모습이 드러날 수도 있다. 수십 년간 쌓아온 견고한 벽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지루하고 힘든 싸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취약함을 느끼는 순간, 남을 공격하려는 태세변환의 시점을 인식하고, 그 순간의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혼자서 해 내기는 어려우며. 이정표를 세워줄 수 있는 숙련되고 풍부한 경험을 가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
1) 심리도식치료, Jeffrey E.Young et al., 권석만 등 공역, 학지사
2)Schema Therapy in Practice: An Introductory Guide to the Schema Mode Approach, Gitta Jacob et al., Wiley-Black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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