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배문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남동에는 공중 목욕탕 컨셉의 디저트 카페가 있다. 그 카페 이름은 옹느세자매(On ne sait jamais). 이 불어를 영어로 직역하면, 'we never know'라는 뜻이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도 있듯이, 우리는 앞날을 알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확실성이 높은 상태를 불안하게 느끼기에, 앞날을 예측하고 계획하며 불확실성을 줄이려고 한다. 전문직 못지 않게 공무원 같은 직업이 인기가 있는 것도, 퇴직할 때까지의 근무 안정성과 연금이라는 노후 안정성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우리 삶에 불안과 염려를 가져오는 불확실성은 줄어들수록 좋을까? 만약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의 모든 삶을 미리 알고 살아간다면(불확실성이 0이라면), 그것은 축복일까 불행일까?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아니면 지루해질까?
불안은 염려와 동반되는 유쾌하지 않은 감정이다. 우리는 불안을 없애고 싶지만, 사실 모든 불안이 병적인 것은 아니다. 정상적인(적응적인) 불안은 알람 신호로서 위험을 경고해주고, 그것을 대비하게 해준다. 이러한 적응적인 불안 덕분에 우리는 시험을 앞두고 열심히 공부도 하고, 지하철 막차 시간이 아슬아슬할 때 뛰기도 한다.
하지만 과도한(병적인) 불안은 사고, 지각, 학습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며,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게 만든다. 면접 때 순간적으로 머리 속이 하얘지는 경험을 떠올려보면 극대화된 불안의 위력을 알 수 있다. 정신의학에는 병적인 불안을 특징으로 하는 불안장애의 카테고리가 있다. 불안장애의 대표주자로는 여러 연예인을 통해 잘 알려진 공황장애(panic disorder), 흔히 무대 울렁증으로 부르기도 하는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 모든 사소한 일에도 걱정을 사서 하는 범불안장애(generalized anxiety disorder) 등이 있다.
불안과 우울은 여러 특성들을 공유하고 있는데, 불안이 우울과 차별되는 핵심 특성 중 하나는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 하는 것(intolerance of uncertainty)이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마다 불확실한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정도가 다른데, 특히 범불안장애 환자들은 불확실한 상황을 견디지 못 하는 특성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들은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불확실성을 피하려고 한다.
결과를 미리 알고 있다면 불안은 줄어든다. 그런데 때로는 그것이 삶의 즐거움을 반감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는 스포츠 경기를 시청할 때다. 스포츠 경기를 라이브로 보는 것과 결과를 알고 다시 보는 것은 즐거움에서 큰 차이가 난다. 라이브로 볼 때는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길지 질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내가 응원하는 팀이 위기를 맞았을 때는 마음을 졸이며 보게 되고, 득점했을 때는 쾌감을 느낀다. 이런 즐거움은 특히 이길 가능성이 적은 경기를 이길 때, 지고 있던 경기를 역전할 때 짜릿함으로 극대화된다.
영화의 경우에도 멋진 액션 장면이나 섬세한 감정표현이 매력적인 영화들은 대강의 줄거리를 알고 봐도 큰 상관 없지만, 스릴러나 반전 영화의 경우 스포일러에 의해 미리 내용을 알고 볼 경우 영화의 즐거움이 크게 손상된다.
정신의학에서는 즐거움을 탐닉하는 질환도 다루는데, 물질 중독과 도박 중독이 대표적이다. 최근 여러 연구들을 통해 이 두 질환에서 뇌에서 비슷한 부위의 영역이 관여하며 도파민 관련된 생리학을 공유하고 있음이 알려졌다. 종종 가벼운 내기를 즐기는 것과는 달리 도박 중독의 경우 자기 자신의 힘으로 중독에서 빠져 나오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정신의학에서는 도박 중독을 일종의 뇌 질환으로 보며, 심각성을 가지고 치료한다. 한편 카지노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최대한 도박에 빠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렇다면 카지노에 있는 대표적인 기구, 슬롯머신은 어떻게 보상을 주도록 설정되어 있을까? 세계 대부분의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의 환급률은 90% 내외라고 전해지는데,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많이 할수록 손해에 수렴하게 되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왜 슬롯머신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이와 관련된 개념이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화'이다. 미국의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는 지렛대를 누르면 먹이가 나오게 되어있는 상자에서 쥐의 행동을 관찰하였다. 쥐는 지렛대를 누르면 먹이가 나오는 것을 우연하게 경험하면서 연관성을 학습하고, 반복적으로 지렛대를 누르게 되었다. 스키너는 이 쥐가 특정 행동을 하도록 조건화되었다고 보았다. 이러한 '조작적 조건화'는 유기체가 원하는 보상을 제공해서 특정 행동을 하게 하는 것으로, 상과 벌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특정 행동을 강화시킬 때, 보상을 어떻게 주는가에 따라 강화되는 정도가 다르다. 규칙적인 보상보다는 불규칙한 보상이 특정 행동을 더 강화시킨다. 예를 들어 10번에 1번씩 규칙적으로 보상을 주는 슬롯머신보다, 어떨 때는 3번에 1번, 어떨 때는 10번에 1번, 어떨 때는 100번에 1번 보상을 주는 슬롯머신이 사람들을 더 중독시킨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보상이 주어질 때 사람들은 더 짜릿한 즐거움을 느끼며, 이것은 뇌에서 즐거움을 담당하는 도파민 회로에서 더 급격한 도파민의 방출되는 것과 연관된다. 불확실성이 주는 쾌감-짜릿한 손맛-이 사람들로 하여금 도박에 중독되게 하는 것이다. 실력이 많이 개입하는 낚시, 인형뽑기, 주식투자 등에서도 이러한 불확실한 보상이 주는 중독적 요소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삶은 불확실하다. 우리는 책을 읽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래를 예측해보기도 하고, 삶을 계획해서 준비하고, 보험도 들고, 건강검진도 하고, 적응적인 불안을 통해 여러 준비를 하지만, 삶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전히 불확실성은 삶의 여러 측면에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미래를 전부 다 예측할 수 없다(On ne sait jamais).
이러한 불확실성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우리 인생에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이에 대한 빨간머리 앤의 유명한 대사도 있지 않은가.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아요.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걸요.' 우리는 불확실성에 대해 두 가지로 반응할 수 있다. 부정적인 결과를 두려워하며 불안해할 것인가.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며 짜릿해 할 것인가.
서두에 이야기했던 카페, 옹느세자매의 메뉴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어차피, 그리고 솔직히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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