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승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1월 들어 날씨가 점차 스산해지고, 마트며 제과점에서 화려하고 예쁜 엿과 초콜릿들이 진열된 것을 보면, 초겨울의 시작과 더불어 바야흐로 수능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전과 비교하여 대학 입시에 있어 수능 자체의 비중은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사회로 나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단단하고 무거운 관문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수험생들은 그 무거운 문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서 약 10여 일 남은 이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도 나름의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 긴장이 올라오는 시기인 것이다.
스트레스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
스트레스를 받은 신체는, 자율신경계라 불리는 체내의 생리를 조절하는 신경계를 자극한다. 자율신경계 내의 교감신경은, 스트레스를 외부의 위협으로 인식하고 기민한 반응을 위해 자동적으로 체내의 에너지를 분출하고 순환기관들을 활성화시키게 된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대개는, 교감신경이 활성화된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반대급부에 있는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흥분된 신체를 안정시키고, 몸의 균형을 바로잡는다.
하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활성화된 교감신경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면, 가슴 두근거림이나 질식감, 몸의 경직과 긴장 등을 유발하고, 더 심한 불안 초조감을 불러일으킨다. 평상시와 같은 안정적인 사고는 당연히 어려워진다. 수험생들은 현재 이러한 상황을 견디며 입시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교감신경은 자동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인간은 특히 다른 포유류와 비교하여 신피질 뇌(neocortex brain)가 발달했으며, 특히 전전두엽의 발달은 실제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까지 가정해서 자율신경계를 반응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중요한 발표를 눈앞에 둔 이가 발표 상황에서의 최악의 일을 상상하며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초조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수험생의 상태로 그러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말을 바꾸어 본다면, 약간의 생각과 관점의 변화는 시험에 대한 지식과 긴장으로 꽉 차 있는 뇌에 약간의 여유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생각과 관점의 변화는 신체 반응을 바꿀 수도 있다. 또한, 완전한 생각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더라도 관점의 방향을 약간만 ‘틀어주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수험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Aaron T. Beck 이 주창하여,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과 질환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 인지치료(cognitive therapy)가 이야기하는 맥락이 바로 그것이다.
관점을 바꾸어 보기
위의 도식을 참고하도록 하자. 상황을 해석하는 자신의 생각을 자동적 사고 (automatic thought)라 한다. 상황을 해석하는 자동적 사고에 따라서 감정적, 행동적, 신체적 반응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동적 사고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시험을 앞둔 상황에서 ‘ 나는 망했어. 이제 내 인생은 끝이야. 나는 영원히 일어설 수 없겠지.’ 와 같은 왜곡된 생각으로 상황을 받아들인다면, 체내의 교감신경은 꺼지지 않고 내내 활성화되어 시험 준비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생각의 오류’라 칭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 국민의 건강 행태와 정신적 습관의 현황과 정책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1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결과 ‘생각의 오류’ 영역에 해당하는 5개 항목 중 1개 이상에 대해 ‘그런 습관이 있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은 90.9%로 나타났다. 즉, 생각의 오류는 흔한 현상이다.
수험생들을 위한 마인드 컨트롤 I
이러한 왜곡된 생각은 차분히 자기 생각을 돌아보기 힘든 스트레스 상황에서 많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생각의 오류에 굳이 대항해 싸우지 않더라도, 자신이 이런 오류에 빠져 있음을 인식(awareness)하게 된다면 막연하게 불안하고 심란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생각의 왜곡(생각의 오류)은 다음과 같다.
1) 재앙화의 오류 : 작은 사건을 파국적인 결말로 연결시키는 오류이다. 오늘 푼 모의고사가 평소보다 점수가 밑돌았을 때, 입시의 실패와 더 나아가 인생의 실패까지 연결하는 것이다.
관점을 바꾸어 보기) 오늘의 점수와 입시의 성공 여부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결정요소가 숨어있다. 지나친 비약인 것이다. 또한, 시험이 인생의 끝은 절대로 아니다! 시험의 충격은 불과 얼마 가지 않으며, 이내 그 날의 감정이 기억조차 나지 않을 것이다. 더 긴 시각으로 보면, 긴 인생 중 스쳐지나가는 미미한 한 지점일 뿐이지 않은가. 또,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지 않은가? 미리 미래를 가정하여 염려하는 것은, 긴장을 유발할 뿐이다.
2) 흑백논리 : 입시의 ‘성공’ 아니면 ‘실패’ 두 가지만 생각한다. 흑백논리는 경직된 사고와 극단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관점을 바꾸어 보기) 성공과 실패의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의 스펙트럼이 있다. 완전한 성공도, 극단적인 실패도 없다. 모든 사람이 그 사이의 어딘가에 분포할 것이며, 당신 또한 스펙트럼의 양극단이 아닌 안에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도 앞으로의 날들이 펼쳐질 것이다.
3) 긍정적인 면의 평가절하 : 자신이 가진 장점, 자신의 자신 있는 것을 쉽게 ‘깎아내린다’. 이는 재앙화와 결합하여 평소의 자신감을 짓밟아버리기 쉽다. 자신 있었던 과목이 최근 점수가 부진하다고, ‘최악의’ 과목으로 금세 바뀌어버린다.
관점을 바꾸어 보기) 어떤 상황이든,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뒤섞여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 집착하여 자신감이 떨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종이를 펼쳐서 ‘내가 자신 있는 것’에 대한 목록을 직접 적어보도록 하자. 긍정의 기준은 ‘잘하는 것 같다’가 아닌, 실제 자신이 기록했던 점수, 문제를 잘 풀어나갔던 과목들이 되어야 한다. 긴장되고 힘든 시기에 자신의 능력에 대한 평가절하를 덜고, 객관적으로 현재의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수험생들을 위한 마인드 컨트롤 II
시험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에서 오는 격려의 응원과 점차 줄어가는 D-day의 숫자를 보며 오히려 공부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들뜨고 심란해지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지 못하고, 먼 미래의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지기 때문이다. 현대 심리치료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마음챙김(mindfulness)의 기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으면서도 짧은 시간을 들여 이 순간에 집중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3분 명상 (3-minute breathing space, TMBS)
: 조용한 곳에 차분하게 앉는다. 굳이 가부좌를 하고 앉을 필요는 없고 집중할 수 있는 편안한 곳이면 된다. 첫 1분은 외부의 자극들에 집중한다. 창밖의 경적소리, 창을 때리는 바람 소리, 문밖에서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소리 들을 ‘판단하지 않고’ 감지하도록 한다. 판단하지 않는다는 말은 좋다, 나쁘다는 생각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느끼라는 말이다. 집중의 포커스를 잘 유지하되, 다른 생각이나 느낌에 사로잡혀 이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더라도, 흐트러짐이 인식되는 순간 다시 이 순간에 돌아와 초점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다음 1분은, 자신의 내부 감각에 집중한다. 엉덩이가 바닥에 닿는 느낌, 어딘가 가려운 느낌, 목에 침이 넘어가는 느낌 등에 집중하되, 역시 ‘불쾌하다, 불편하다’ 라는 판단은 최대한 내려놓고, 그저 느낌을 자각하도록 하자.
마지막 1분은, 자신의 호흡에만 집중한다. 호흡의 초점을 코에서 들어왔다 나가는 바람의 느낌, 혹은 들숨 시에 올라왔다가 날숨 시에 꺼지는 배의 감각에 집중하도록 한다. 요컨대, 3분 동안 자신을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데려다 놓는 방법이다.
마음이 흐트러지는 순간,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점령할 때, 앞에서 이야기 한 생각의 오류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순간이 인식된다면 3분 명상을 통해 지금 이 순간으로 초점을 다시 조정하여, 눈앞의 과제들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본래의 실력을 발휘하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
숨 가쁘게 달려온 수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볼 때가 왔다. 모두 평소의 실력보다 ‘대박’을 바라는 마음이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간의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는 일이지 않을까. 막상 시험장에 들어가 ‘재앙화’로 인하여 시험 문제가 눈에 들어오지 않거나, ‘흑백논리’로 인해 과도한 긴장을 경험하게 된다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시험 직전의 이 시기는 어느 때보다도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한 때이다. 자신의 마음이 심란하다면, 3분 명상과 더불어 잠깐이나마 마음을 들여다보며 생각의 오류로 인한 불안감을 다스려나가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정신의학신문 홈페이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