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노현재 의사]
"재현이와 성진이는 10년이 넘게 절친한 친구로 지내오던 사이다. 성진이의 경우 외과 의사로 소화기 계통 수술을 잘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용종 제거, 결장 절제술 등 소화관 관련 수술로 명성이 높다. 재현의 경우 건축가로 일을 한다. 그 둘은 주말에 함께 시간이 날 때면 골프를 치러 다니고는 한다.
어느 토요일, 같이 골프를 치던 재현이는 성진이에게 근심 가득한 얼굴로 이야기를 했다. 그말은 즉슨 그가 저번에 받은 대장 내시경에서 상행 결장 부근에 암으로 보이는 조직이 있어서 수술로 절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진이는 그의 말을 유심히 들어주었다. 이후 재현이는 성진이에게 “너는 내가 아는 소화기 외과 의사 중 제일 유능해”라 말했다.
성진이는 “주변사람들이 그렇다고들 이야기를 해주지만 나 외에도 훌륭한 분들은 많아” 라고 대답했다.
재현이는 “이전에 다른 지인들이 부탁한 수술을 모두 거절한 걸로 알고 있는데 나는 절친한 친구인데 네가 수술해주면 안되겠니?” 라 물었다.
성진이는 당황했지만 침묵을 지켰다. 계속해서 재현이는 성진이에게 말했다. “너랑 친구라는 이유로 너를 나를 치료해줄 의사들 순위에서 차순위로 밀어내야 한다는 건 나로선 납득이 가지 않아.”
성진이가 겪는 이 딜레마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거의 대부분의 의사가 살아가면서 한 번 아니면 그 이상 친구나 친척들로부터 치료나 조언을 구하는 요청을 받게 된다. 때때로 종이에 베인 상처만큼이나 사소한 문제로도 그들은 조언을 구한다. 이런 사소한 케이스와 달리 해당 케이스의 경우에는 특히 더 부담스러울 수 있다.
미국 의사 협회나, 영국 의사 협회 그리고 뉴질랜드의 의사협회에서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에게 의사가 의학적 치료를 제공하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 이와 비슷한 입장을 유지하고 추천하는 곳으로 미국 소아과 학회나 온타리오 주 의사 협회등이 있다.
AMA(미국 의사 협회)에서 발표한 의료 윤리 강령에 따르면 “일반적인 경우라면 의사는 자신 스스로 혹은 자신과 가까운 가족들은 가급적이면 치료하지 않는 것이 좋다.”(1)라고 되어있다. 비록 이 가이드라인이 구체적으로 친구도 진료 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가족을 치료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주장을 뒷받침 해주는 근거와 이유들은 아마도 친구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적용 가능할 것이다.
첫째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는 의사로부터 객관적 타당성을 받아야한다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감정적인 요소를 대입하다보면 의사의 객관성이 떨어질수도 있다. 아마도 위의 케이스에서도 성진이가 재현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심각한 합병증이나 부작용과 같은 측면들을 간과하게 만들 수도 있으며 재현이의 임상적 몸 상태와 상관없는 처치들을 제공할 지도 모른다. 성진이가 매우 유능한 소화기 외과 의사일지도 모르지만, 재현이에게 있어서도 그럴지는 알기 어렵다.
설령 성진이가 재현이를 여타 다른 환자들과 똑같이 치료할 수 있을거라 스스로 생각하더라도, 사람은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자기 기만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막상 성진이가 재현이에게 과거력 등을 물어볼 때 불편해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반대로 재현이가 아무리 성진이를 간절하게 자신의 주치의로 원하더라도, 자신의 은밀한 정보를 말하기가 꺼려지면서 거짓말을 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성진이에게 전달할 수도 있다. 둘 중 한 명이 혹은 둘 다 이학 검사나 과거력 청취 과정 중 불편함을 느낄 수 있으며, 이러한 마음 때문에 중요한 단계를 생략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성진이와 재현이가 서로의 가족들도 잘 알고 있다면 진료 과정은 비밀 유지나 사생활 혹은 신뢰의 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 만일 성진이가 재현이의 부탁으로 그의 애인이나 가족에게 그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혹은 재현이가 지닌 다른 문제에 대해서 일체 이야기를 하지 않는 상황일 경우를 생각해보자. 일반적인 경우 환자의 기밀 정보이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이야기 하면 끝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재현이의 애인이나 가족들이 성진이에게 성진이가 단순히 재현이의 의사가 아닌, 가족들이 신뢰하는 친구로서 그에게 조언을 구하는 경우 그의 입장은 매우 난처해질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모든 수술 과정은 집도의가 얼마나 능숙한지와 상관없이 때때로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설령 재현이에게 발생하는 심각한 합병증 혹은 비극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일이더라도, 수술을 집도한 성진이에게는 감정적으로 엄청나게 파괴적인 결말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언급한 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해줄 만한 정보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사실 설문조사 결과 이미 거의 대부분의 의사가 자신의 친구나 가족을 자주 치료해주거나 진료를 보고 있다. 의사에게 이러한 진료가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느냐 안 주느냐와 상관없이, 사적으로 치료를 해주는 일이 더 의료 과실이 많이 발생하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대부분의 의사가 말하기를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를 치료해줄 때 처방이나 치료에 있어서 어느 정도 감정적인 요소들 때문에 방해받거나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당시에 우리가 아무리 걱정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았더라도 실질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특별히 잘 기억해두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우려되는 사항들을 근거로, 가급적이면 성진이는 재현이의 수술 의뢰를 정중하게 거절하는 편이 신중한 결정이라고 생각된다. 재현이에게 걱정되는 부분들을 재치있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마도 수술을 직접 집도하기보다는 재현이에게 도움이 되어줄 좋은 외과 의사를 찾는 일을 돕는 것이 조금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큰 수술을 받는 일은 굉장히 스트레스를 주고 무서운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술을 직접해주는 것 만큼 자신이 아는 지식이나 조언들을 재현이에게 해주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어쨌든, 위에서 언급한 모든 가이드라인은 응급한 상황이나 주위에서 적합한 의사를 찾기 어려울 때에는 예외를 두고 있다. 성진이와 재현이가 살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우리는 모른다. 재현이의 수술을 진행할 자격을 갖춘 의사를 찾기 어려운지도 알기 어렵다. 아마도 이러한 문제들은 재현이에게 적절한 치료를 받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만일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재현이가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성진이는 그의 수술을 집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1)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Opinion 8.19 Self-treatment or treatment of immediate family members. Code of Medical Eth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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