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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의학신문 May 14. 2018

예술의 치유적 효과

[정신의학신문 : 신동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The fallen-jamie wardley (출처_http://thefallen9000.info/)


프랑스 아르망슈 해변에서는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희생된 9000명의 민간인, 독일군, 연합군을 기리기 위해 매년 <국제 평화의 날> 행사가 열린다. 2013년 9월, 예술가 Andy Moss와 Jamie Wardley에 의해 진행된 <The Fallen(쓰러진 사람들)>이라는 프로젝트는 많은 자원봉사와 함께 틀을 대고 모래를 긁는 스텐실 기법으로 물이 빠진 해변에 쓰러진 군인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그 어떤 캠페인성 문구나 행사보다도 효과적이었고 더 강렬하게 감동을 주었다.
 
이렇듯 예술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때론 눈물을, 때론 감동을, 때론 위로를, 때론 깨달음을, 때론 치유를 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지난 2014년에 ‘나라가 슬픈데 무슨 풍악을 울리느냐’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전국 대부분의 연과 예술활동이 중지되었다. 이것은 예술의 기능을 제대로 알지 못해 일어난 안타까운 해프닝으로 위로와 치유적 기능이 있는 예술이 더 표현되었더라면 우리사회는 보다 빨리 상처를 딛고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글을 통해 예술에는 어떤 치유적인 효과가 있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예술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그림을 그려 생명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술의 탄생이라고 하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사랑하는 남자의 그림자를 따라 그린 ‘디부타데’라는 여인의 행동이 예술의 기원이라고 한다. 사회인류학자인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 1854~1941)에 따르면 예술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에서 출발한 제사행위와 함께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기원이 무엇이든 예술은 제사나 큰 행사부터 일상의 작은 일까지 인류와 함께 해왔으며 그러기에 인간의 정신세계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결속과 위로와 즐거움을 주는 등 많은 치유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예술의 치유적 효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감정의 자극과 순화

사진_오르페우스동굴 (출처 픽사베이)


‘예술이 감정을 자극하고 순화한다’는 주장에 앞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음악의 신 <오르페오>(일명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언급하고 싶다. 오르페오는 뱀에 물려 죽은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체를 살리기 위해 지하세계까지 가서 저승의 신 하이데스를 감동시키고 부인을 데리고 나온다. 하지만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그녀를 다시 잃게 되고 이후 그는 평생 후회 속에서 노래하며 살아간다. 이 신화의 본질은 ‘슬픔과 고통이 바로 예술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많은 예술 작품은 사랑, 이별, 상실, 삶의 고통에서 출발하거나 그런 고통의 주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마음 속 깊은 감정을 자극하게 된다. 슬픈 감정이 자극되면 눈물을 흘리고 기쁜 감정이 자극되면 웃게 되는 과정에서 억눌린 감정이 분출되고 자연스럽게 순화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카타르시스’란 바로 감정의 분출과 순화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예술가의 안타까운 삶과 작품의 배경을 알게 될 때 감상자는 현재의 삶 뿐 아니라 아픈 과거의 경험을 다시 떠올리는 ‘재경험(abreaction)’을 하기도 하고, 예술가의 삶에 공감하며 자신과 예술가를 ‘동일시(idealization)’하고 ‘보편화(universalization)’하는 등의 치유적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예술은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도록 돕고 불안을 극복하게 하고 과거의 좋지 않은 경험의 상처를 벗어나게 하며 또 현재의 갈등을 해결하도록 돕는다. 정서지능에 관심이 높은 현대사회에서 아이들에게 예술을 권장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 창조성의 활성과 미적감상
 
예술작품이 어떤 감정을 담았을 때는 감정을 자극하고 순화하지만 추상화나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처럼 정해진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아도 우리는 그 작품이 아름답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 순간이 내면에 있는 무의식의 창조기능이 자극을 받아 활성화되는 순간이다. 융은 ‘무의식은 이미지를 창출하고 상징화하며, 자율적인 창조기능이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은 인간의 정신세계에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즐기는 기능도 있고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기능도 있다는 뜻이다.
 

그림_스탈당이 이탈리아 여행중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에서 보고 감동을 받은 귀도 레니의가 그린 '베아트리체 첸치'(출처_위키미디어 공용)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은 산타크로체 성당을 방문했다가 그곳의 벽화를 보고 너무 감동을 받은 나머지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거의 주저 앉아서 한참을 걸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나온 말이 바로 예술작품이 주는 전율을 말하는 ‘스탕달 신드롬’이다. 예술 감상이 너무도 감동적이고 아름다울 때 무의식의 창조기능은 황홀할 정도의 자극을 받게 되어 무아지경에 빠지게 되며 이런 즐거움은 삶을 살아가며 힘든 일을 겪을 때도 견뎌낼 수 있는 큰 밑거름이 된다.
 

3) 상징의 자극과 충동발산
 
예술은 무의식의 상징을 자극하며 그 결과 자연스럽게 충동을 발산하도록 돕는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예술은 꿈과 마찬가지로 무의식적 소망, 아동기적 환상, 현재의 인생 상황 등이 재료가 되어 의식에서 받아들여질 만하게 그럴듯한 변장과 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 근원이 무의식에서 출발한 예술은 성적이거나 공격적인 원초적인 본능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경우가 많고 자연스럽게 무의식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무의식의 욕구를 억압하며 현실법칙에 맞춰 건조하고 다소 딱딱하게 살아가기 때문에 보다 자유롭고 건조하지 않으며 살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바로 이러한 일이 예술을 통해서 일어날 수 있다. 무의식에서 기원한 예술이 무의식적 욕구를 상징적으로 자극하고 충동을 발산하고 해소시켜주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이 이차과정사고의 구속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며 창조적 정신은 논리적인 현실과 원시적인 정신세계를 함께 아우른다’라는 아리에티(Sylvano Arieti)의 말은 정확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4) 자존감 향상
 
예술 작품에는 세상의 많은 인생과 사건이 담겨있다. 그런 까닭에 예술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감상자는 세상에 대한 이해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자신의 내면을 돌이켜보며 자신의 문제를 객관화하게 되는 ‘자기성찰’을 하게 된다.
 

사진_픽셀

 
예술작품은 감상자의 품격을 올려주기도 한다. 예술가들이 갖는 특징 중의 하나가 비록 가난하더라도 품위가 있다는 것이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철학자 밀의 말처럼 비록 현실의 삶이 고단하고 여유가 없을 지라도 예술을 즐기는 사람 역시 스스로를 품격 있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또한 예술작품을 즐기다보면 예술가에 대해서 그리고 작품에 대해서 더욱 더 깊게 파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은 새로운 작가와 작품에 도전하고 또 성취해내는 ‘자기 효능감(Self Efficiency)’를 올려주기도 한다.
 
자기성찰, 그리고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도 느끼는 것, 도전하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모두 합쳐져서 감상자의 자존감은 향상되게 된다.
 

5) 몰입, 놀이 그리고 레크리에이션
 
예술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예술을 창작하는 동안 너무도 몰두해서 배가 고픈지도 모른 채, 얼마나 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시간이 가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너무도 몰두한 나머지 정신의 세계가 오직 한 가지 것에만 집중하고 시간적 개념이나 감각 자극마저 잊어버리는 현상 즉, 삼매경의 현상인데, 요즘 긍정심리학에서 이를 몰입(Flow)이라고 부른다.
 
예술을 감상하는 사람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예술을 감상하는 것은 일종의 ‘놀이’와도 같다. 예술은 마치 맛집을 아는 것처럼 또는 레크리에이션을 즐기는 것처럼 예술을 즐기는 사람은 삶의 여유를 느끼고 인생을 즐기며 인생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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