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인간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감정은 상황적인 맥락에서 만들어지는 것 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감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자신이 그 감정인 것으로 정의한다. 예컨대 오랫동안 감정에 시달리다 보면, "나는 우울감을 느끼는 형편없는 인간이다.", 라는 식의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나는 힘든 일을 겪었으니까 슬픈 감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라는 감정에 대한 관점이 적절한데도 말이다.
사실 상황 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감정으로 자기를 정의하는 습관은 거의 모든 정신적인 어려움을 야기하는 근본적인 주요 원인들 중 하나다. 살다보면 생길 수 밖에 없는 우울, 불안, 분노, 질투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마다 자기가 엉망진창인 듯한 생각의 늪에 빠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감정이 상황과 자신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지'의 정도가 정신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모든 감정은 상황과 나 자신 사이의 교류의 결과물들이다.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으니까 우울하고, 누가 나를 괴롭혔으니까 화가 나고, 나쁜 일이 생길 확률이 있으니까 불안하고, 경쟁적 상황에 놓여 있으니까 시기심이 든다.
하지만, 상황과 나 자신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라고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내 자신의 인격적 결함으로 인해서 부정적 감정을 느낀다고 설명하는 습관이 든 경우에는 괴로워질 수 밖에 없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우울한 게 아니라 원래부터가 우울한 인간이라 그렇다든지, 누가 괴롭혀서 화가 나는 게 원래부터가 화가 많게 태어나서 그렇다든지, 경쟁적 상황 탓이 아니라 원래부터 시기심이 많게 못 되먹어서 그렇다든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경우에 그렇다. 감정이 느껴지는 이유를 상황적 맥락이 아니라 내재적이고 본질적인 인격적 결함에서 찾는 사람들이다.
이런 습관은 내부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비난적 이미지를 만든다. 부정적 감정이 들 때 마다 부정적 자기 이미지를 만들고 부정적 자기 이미지가 만들어졌으니 당연히 부정적 감정을 더 만들어낸다. 다시, 부정적 감정은 부정적 자기 이미지를 강화하고 부정적 감정을 또 유발한다. 이러한 끝없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면 명백히 우울장애, 불안장애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감정을 내용 그 자체보다는, 그 감정을 둘러싼 상황적 맥락을 포괄적으로 인식하려고 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정신과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예컨대 심지어는 곧 자살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자살에 대한 생각을 하다니 내가 비정상적인 쓸모없는 인간인게 분명하다."라고 스스로에 대한 인식을 하기 보다는, "이러저러한 부정적인 일들이 있었으니 당연히 슬퍼졌고, 슬프다보니까 당연히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라고 감정을 외부적 상황과 함께 포괄적 인식하고 인정해주는 것이다. "안 좋은 일이 있었으니까 우울하고 우울하니까 죽고 싶은 게 당연하지." 라는 생각을 습관처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자살 생각으로 인한 부정적 자기 이미지로 또 다른 우울, 불안, 초조감을 유발하지 않기 때문에, 힘든 일이 있었던 만큼만 힘들고 만다. 또 감정이 날씨따라 바뀌는, 지나가는 바람이나 파도같이, 금방 완화되리라는(그리고 언제가는 또 나빠질 수도 있다는) 확신을 갖고 여유있게 감정을 바라보게 된다.
감정을 내용으로 바라보면 반드시 우울하고 불안해진다. 감정을 맥락으로 바라보면 반드시 편안해진다. 그 감정이 매우 부정적이라 하더라도 편안하게 불편하고 만다. 어떤 감정을 느꼈다는 이유로 추가적으로 덧붙여서 불편해서 더 불편해질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