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고마웠다.
그 사람이 해준 것들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고, 내 마음 안에서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 말을 꺼내려하면 이상하게 입이 무거워졌다.
고맙다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그냥 넘어갔다.
대신 아무 말 없이 밥을 샀거나, 문자 대신 이모티콘 하나로 때웠거나, 그냥 다음에 잘하면 되지 하고 넘겼다.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
진심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 말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심리학에서는 감사 표현을 어려워하는 것이 단순한 쑥스러움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빚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다.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소리 내어 말하는 순간, 나는 그 사람보다 약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공식화하게 된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혹은 스스로 강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그 순간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 패턴을 한참 뒤에야 알아챘다.
고맙다는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도움을 받은 내 모습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었다.
혼자 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어딘가에 깊이 박혀 있었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사실이 왠지 부끄럽게 느껴졌다.
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고마움을 표현받지 못한 사람은 조용히 지쳐간다.
말로 듣지 못해도 알겠지 하고 넘기는 사이, 그 사람은 자신이 한 것들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그렇게 가장 고마운 사람이 가장 먼저 멀어지는 일이 생긴다.
지금 고마운 사람이 떠오른다면, 오늘 그 말을 꺼내보는 것도 좋겠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고마워,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 한마디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지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