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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롱 Nov 17. 2020

처참한 실패로 끝난 첫 도전

2017년 8월의 B430 : 방송댄스

    춤에 대한 나의 열정은 남다르다. 기분이 좋을 때나 슬플 때나 힘들 때나 덩실덩실 몸을 놀리고, 클럽을 '춤추러'가는 바로 그런 사람이 바로 나니까! 이래 봬도 언제 어디서나 춤과 함께하는 생활밀착형 댄서다. 내적 댄스를 통한 수련은 이 정도면 족한 것 같고, 이제는 돈을 좀 들여서 남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멋진 몸놀림을 배워보려 했다.


사실 이런 모습을 기대했다. 


    스물다섯 여름, 나는 선릉역의 모 댄스학원 방송댄스반에 입성했다. 데스크 직원의 꼬임에 홀려 무려 3개월치를 한 번에 등록했다. 분명 실패할 거라는 회사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가족 친구 회사까지 여기저기 떠벌리기도 많이 떠벌려놨었다. (어리석은 과거의 나여..)


    첫 수업 날, 박재범 버금가는 댄서가 될 거라는 기대에 찬 내가 강의실 거울에서 발견한 것은 한 마리 지렁이였다.

방금 본 동작을 복사기처럼 따라 하는 연예인 지망생 아이들과 에어로빅 대신 아이돌 노래를 선택한 젊주머니들 사이에서 난 그저 한 박자 느리게 팔다리를 펄럭거리는 (조금 두꺼운 도화지로 만든) 종이인형이었다. 혼돈의 첫 수업 이후 나는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하지만 난 이미 3개월치 수강료를 학원에 갖다 바쳤고, 댄스 가겠다고 새 운동화도 샀다. 이 마당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적응할 거라는 기대를 안고 계속 나가보기로 했다.


    오. 아무리 연습을 해도 내 몸뚱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팔과 다리는 늘 따로 놀았고 왼발을 먼저 딛으라면 오른발이, 오른팔을 움직이라면 왼팔이 먼저 존재감을 표출했다. 한 달 반 정도 삽질을 한 뒤에 나는 쓰디쓴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렇다 나는 몸치였다.


    재능보다는 엉덩이 힘으로 승부를 보는 문과생으로서 평생을 살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다.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은 확실히 있다. 예체능의 세계는 위너 테잌스 올이다. 아 물론 노력파 댄서의 존재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들도 기본적인 끼가 있으니까 노력할 의지가 생겼을 거라는 거다. 어쨌든 끼 있는 자가 이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노력하는 젊은이들을 정 없이 뚝뚝 떨어트리는 심사위원들이 너무한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댄스학원을 다니며 깨달았다. 역시 타고난 게 짱이다. 춤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 이후 댄스학원은 자연스럽게 내 스케줄에서 사라졌다.


    3개월 후 사물함에 들어있는 운동화를  폐기 처분하겠다는 문자를 받고 다시 한번 학원을 찾았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당시 가장 핫하다는 춤을 배우고 있었다. 아직도 신명 나게 춤을 추고 있는 연예인 지망생이 있었고, 나처럼 정신 못 차리고 몸만 흔들어대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댄스반의 지진아가 아닌 맘 편한 구경꾼이 되어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사물함 구석에 박혀있는 내 운동화를 챙겨 내게 어울리지 않는 그곳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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