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팥크림빵 Feb 11. 2024

상담자가 Chat GPT에게 질문해보았다

심리학자로 살아남기

  저는 기록을 자주 하지 않지만 가끔은 어디에라도 적곤 합니다.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 블로그 임시저장과 댓글, 그리고 메모앱 노션처럼요.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며칠 전에 기록을 토대로 글을 쓰면서 AI를 경험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한달에 한두번 상담에 대한 인사이트가 문득 명료하게 느껴질 때면, 갑자기 없던 힘이 나서 단어와 문장을 어딘가에 메모해둡니다. 며칠 전에는 그 기록을 글로 갈무리해서 말끔해지고 싶었어요. 그 글이 얼마전 발행한 <상담자도 유연함을 잃을 때가 있다>입니다. 그 글을 다듬으면서 노션 앱에서 제공되는 AI 기능을 써보게 된 데서 이야기는 진짜로 시작합니다.


  노션을 켜놓고 문장을 정리하는데 시끄러운 카페에, 귀성을 앞둔 어쩐지 들뜬 마음으로는, 글로 정리할 집중력이 남아나질 않더라고요. 글로 정리는 하고 싶은데 그럴 여력은 없는 상태에서 AI 기능을 눌러보기 시작합니다. 더 길게 만들어주고, 짧게 만들어주고, 친근한 톤으로 바꿔주고, 더 나은 문장으로 만들어주는 식의 버튼이 있더라고요. AI가 나의 글에 어떤 새로움을 주거나 킥을 더해주지는 못하지만, 단어와 문장 사이에 있던 구절들을 그럴듯한 문장으로 엮어주다니 신기할 따름이었어요.


  침대에 뒹굴다 유튜브에 들어가니 귀신같은 알고리즘이 자동화 툴에 대한 영상을 추천해줍니다. 요즘 핫한 프레젠테이션 AI, 노션 AI, Chat GPT처럼 인공지능 툴을 활용하는 것들을 보고 있자니 뭔가 나도 힙해진 것 같고 이런 게 되는구나 놀랐어요. 집단 교육을 위해 발표자료를 만든다면, 통계 업무를 하면서 어려웠던 엑셀 함수를 짜달라고 한다면, 이런 상상도 해보고 AI 앱을 설치해보기도 하고요.


  그렇게 감명만 받고 끝났다면 이 글이 써지지 않았을 텐데요. 서울에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한번도 꺼내지 않은 노트북이 아쉬워서 괜히 한번 꺼내봤어요. 아직 시간은 많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할 것도 없었거든요. 드디어 Chat GPT를 만났습니다. 주변 IT친구들이 코딩할 때 쓴다고 할 때도 별 관심이 없었어요. AI가 감히 상담이나 정신영역의 고차원적인 것들을 구현할 수 있겠어 하는 마음도 있었거든요. 내 일을 편하게 만들어주거나 내 일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했으니 당연히 호기심도 없었던 거예요.


  Chat GPT 3.5에게 얼마전 명상 프로그램에 다녀와서 궁금했던 개념들을 물어봤어요. 사마타 명상과 위빠사나 명상은 어떻게 구분되고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가. 질문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하면 더 정교한 답을 주기도 합니다. 아직은 찰떡같이 알아듣지 못할 때도 있고, 제대로 된 답을 갖고 있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요. 그러다보니, 더 괜찮은 혹은 이해할만한 답이 나오는지 더 나은 질문을 해보려 애써보게 됩니다. 답을 찾아나가는 학습 과정이 새로웠어요.


   AI를 제 삶의 중요한 부분과 맞닿아서 활용해보니 AI의 강점과 한계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AI가 과연 상담자를 대체하여 심리상담을 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정말 인간다움을 대체할 수 있을까, 이런 막연하고 거대한 질문이 아니라, 상담자이자 생활인으로서 나에게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내담자라면 이걸 어떻게 경험하고 또 도움받을 수 있을까, 하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뀌더라고요.


  AI에 대한 우려와 맹점은 연구자들과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고 있죠. 제한된 정보 내에서 편향된 학습을 하게 되면 편견 섞인 반응을 사실인 양 제시하게 된다는 거죠. 그러나 막연한 두려움만으로는 지피지기를 어렵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제가 경험하기에, 지금 수준으로는 상담을 대체하긴 어렵지만 더 발전한다면 일상적인 생활을 관리해주는 코칭 앱이나 습관 앱은 충분히 대체할 수 있어 보였어요.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건강 영역에서, 능동적으로 질문할 수 있는 인지능력과 의욕이 있는 상태라면, 자신을 이해하고 행동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는 질문을 인터랙티브하게 해주는 거죠.


  여기에 챗지피티의 답을 옮기는 것보다 어떤 질문들로 방황하며 놀았는지 보여주는 게 흥미로울 것 같네요. 오늘은 마음챙김 명상에 대해 어떤 질문 과정을 거쳤는지 공유하며 마무리합니다!

  

    상담자가 Chat GPT에게 마음챙김 명상에 대해 질문해보았다!

    사마타명상과 위빠사나 명상에 대해 설명해줘  

    두개가 마음챙김 명상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설명해줘  

    정혜쌍수와 명상은 어떻게 관련되?  

   사띠와 메타인지에 대해 설명해줘  

   사띠와 마음챙김에 대해 설명해줘  

    성찰적 자기와 마음챙김에 대해 설명해줘  

    성찰적 자기, 사띠, 마음챙김, 메타인지, 정혜쌍수에 대해 설명해줘  

    위빠사나, 사마타, 요가를 비교해줘  

    위빠사나, 사마타, 요가, 마음챙김을 비교해줘  

    위빠사나, 사마타, 요가, 마음챙김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뭘까  

    다시해줘  

    위빠사나도 사마타도 집중이 필요한거 아닌가  

    어떻게 집중력 강화와 정적인 집중을 한다는거야?  

    정적인 집중이 위빠사나와 다른게 뭘까  

    근데 사마타는 정적인 집중이라며  

    여전히 사마타는 정적인 집중을 강화하고 정적인 집중력 향상이 필요한 상황에 적합한거잖아  

    특정 대상에 집중하고 반복하는게 위빠사나에서도 하는거 아니야?  

    그럼 차이점을 더 명확하게 설명해줘  

    왜 아직 사마타가 이해가 잘 안될까  

    이것이 위빠사나의 관찰과 다른게 뭐야?  

    단지 집중하려는 거라면 그게 가능한걸까? 나는 위빠사나가 더 유연하고 현실적인거 같거든  

    그렇구나, 그럼 사마타는 유연성과 현실성이 아니라 어떤걸 중요시하는거야?  

    계속 집중하려는 시도가 위빠사나의 관찰과 비슷한거 같아  

    어떻게 사마타에서 말하는 정적인 집중이자 공(비어있음)이 가능해?  

    "다른 생각이나 감정이 떠오를 때 이를 차분하게 관찰하고 다시 주의를 대상에 집중시킵니다." -> 이부분은 위빠사나 아니야?  

    "다른 생각이나 감정이 떠오를 때 이를 차분하게 관찰하고 다시 주의를 대상에 집중시킵니다." -> 이부분은 위빠사나야 마음챙김이야 사마타야?  

    그렇구나 조금더 이해가 됐어. 그럼 사마타에서 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명상법을 수행하는거야?  

    그걸 통해 공에 들어갈 수 있는거야?  

    그렇구나 그 공의 느낌을 더 설명해줄래?  

    Q2: 공(비어있음)의 경험을 통해 어떻게 마음이 변화하거나 어떠한 인사이트를 얻었나요?  

    그것이 위빠사나에서의 혜와 비슷해보이는데?  

    그럼 위빠사나의 혜, 그리고 사마타의 공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말해줘  

    더 이해가 잘된다. 그럼 여기에 기반해서 정혜쌍수를 설명해줘  

    그럼 결국 정혜쌍수가 마음챙김과 유사한걸까?  

    그럼 마음챙김과 위빠사나, 사마타에 대해 말해줘  

    왜 위빠사나가 대화와 인지적 접근이야?  

    아하 그럼 위빠사나는 개인적인 명상이라기보다는 대인적인 명상인거야?  

    그렇구나 그럼 이게 어떻게 마음챙김과 연관이 있지?  

    그럼 마음챙김은 위빠사나보다 사마타와 더 관련이 있어보이네  

    음 그러니까 마음챙김이 위빠사나보다 사마타와 더 관련이 있는거야?  

    다시 설명해줄래?  

    근데 위빠사나는 스승이 필요하잖아  

    위빠사나의 스승이 질문이 cbt의 소크라테스 질문법과 유사해보이네? 그런건가?  

    차이점은 뭐야?  

    그럼 위빠사나 스승의 질문은 길잡이식 발견과도 비슷해보이네  

    그럼 차이점은 뭘까?  

    그럼 유사성이 차이점보다 큰걸까?  

    그래? 나는 차이점이 더 커보이는데  

    그렇구나 그럼 소크라테스식 질문보다 길잡이식 발견이 위빠사나와 더 비슷하네  

    소크라테스식 질문보다 길잡이식 발견이 위빠사나와 더 비슷한게 맞아?  

    다른 개념이더라도 소크라테스식 질문법보다 길잡이식 발견이 위빠사다와 더 유사한게 맞아?  

    재밌다  

    위빠사나가 주로 숨 쉬기, 몸의 감각, 마음의 상태 등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명심하는 방식으로 집중을 강화하는데, 스승이랑 대화한다는 건 다른 이야기 아니야?  

    무슨 말이야? 스승과의 대화와 인지적 탐구가 위빠사나 명상이라며  

    그럼 위빠사나 명상이 사마타 명상과의 차이가 모호하게 느껴지는데?  

    위빠사나가 내면의 깨달음을 찾고 사마타가 정적인 집중을 추구하는건 알겠는데, 숨쉬기 관찰처럼 하는 행동이 같다면 실제로 수행할 때는 뭐가 다른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임상심리학자의 2021년 상반기 결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