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노트 33
휴직을 위해 상담을 연달아 종결하며 내담자들과 지나온 계절을 복기했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정리된 게 있다면 무엇인지, 처음과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리고 상담 관계에서 불편하거나 어려웠던 점은 없었는지를요. 내담자들은 이제 솔직했습니다. 특히 ‘바로 지금’의 감정이나 생각은 어떤지 묻는 제 질문들이 처음에는 무척 낯설고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들 앞에서, 제가 얄미울 때가 있었다는 고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믿고 있었습니다. 타인이나 상황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낯선 시간이, 자기 안의 자원을 발견하는 따뜻하고 강력한 경험이라는 사실을요. 어떤 내담자는 구체적인 가이드나 제안 없이 내담자의 속도를 그대로 따라가는 방식이 새로웠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상담에서는 가이드를 제안하거나 과제를 고안하지만, 또 어떤 상담에서는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이드가 필요했을 시기도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본인이 원하는 것을 정리하고 실천해 나가고 있어 보였어요." 그때 내담자는 안도하고 스스로의 힘을 믿을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또 누군가는 '나에게는 답이 없다'고 믿었기에 번번이 좌절했는데, 상담자는 '당신 안에 답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기에 지치지 않고 질문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신뢰 속에서 내담자들은 각자 단단한 변화를 일궈냈습니다. 아버지라는 거대한 그림자에서 빠져나와 어느새 현실에 좀 더 충실해져 있었습니다. 가족 앞에서 괜찮은 척 애쓰기보다, 그리움과 슬픔을 용기 있게 드러내어 그것들을 삶의 일부로 통합해냈습니다. 누군가는 『데미안』을 통해 나다움을 찾아가는 불안을 깊이 이해받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여섯 밤의 애도』가 회피하던 슬픔조차 괜찮다고 말해주는 위로였습니다. 그 고백들은 제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상담자인 저 역시도 취약해질 때면 우울과 불안에 휘말립니다. 그럴 땐 그저 힘들 뿐이고 때로는 문제를 마주하기보다 회피하게 됩니다. 저는 상담실에서 "그래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말과 행동, 그 어떤 방식으로든 전하고 싶었습니다. 상담에 온 것만으로 내담자는 이미 스스로를 돌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상담자 혹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의지할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의지하는 법을 배우며,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다시 일어섭니다.
내담자들은 앞으로 어떤 의도를 품고 지낼지 스스로 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혼자 해보겠다"며 용기 있는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번 상담은 끝나지만, 힘든 순간이 오면 '이럴 때 상담사는 뭐라고 말할까'를 떠올려보겠다는 말은 제게 가장 든든한 약속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건넨 질문과 반응이 내담자의 내면에서 스스로 답을 찾는 목소리로 남았다니, 마음을 나누는 일은 그만큼 저를 채우는 일이 됩니다.
기쁜 마음으로 이들의 독립을 지지하며 기업상담이라는 공간을 잠시 떠납니다. 누군가를 깊이 들여다보며 함께 고민했던 시간은 저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었습니다. 이제는 잠시 기업상담 밖의 세상에서, 저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고 채워가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