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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크림빵 Mar 06. 2021

임상심리 수련과정에서 일어난 변화들

Photo by Vadim Sadovski on Unsplash


  임상심리학자로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나면 1년 혹은 3년의 병원수련 경험을 거쳐 전문 자격을 취득하게 됩니다. 심리치료와 심리평가의 특성상 지식뿐만 아니라 임상 경험과 연구 활동이 꼭 필요하기 때문인데요. 오늘은 도대체 3년간의 임상심리 레지던트 과정에서 무얼 경험하고 배우는지 기억나는 대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1. 지식과 경험, 2. 전문가로서 임상심리학자, 3. 심리평가와 연구논문의 가치


1. 지식과 경험


  석사과정에서 글로 배우고 대학(원)생들과 상담을 하면서 임상가 practitionor로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면, 병원 수련에서는 슈퍼바이저의 지도감독 하에 더 넓은 스펙트럼의 정신병리를 공부하고 실제 심리평가와 심리치료를 진행하는 경험으로 확장됩니다. 전공서적과 논문을 발표하며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자신의 심리평가와 심리치료 사례를 발표하고 논의하면서 보이지 않았던 지점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쏟아지는 지식들과 경험들 속에서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사계절이 훌쩍 지나있곤 했어요.


  임상심리학자가 하는 일은 크게 심리평가, 심리치료, 연구까지 3가지 영역이 있는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업무는 심리평가입니다. 심리평가는 '당사자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어떤 기제를 통해 발생하고 지속되어 왔는가, 그리고 이후에는 어떤 예후를 나타낼 가능성 있고 어떤 치료적 개입이 필요할 것인가' 하는 질문들에 대해 근거를 가지고 답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신 병리뿐만 아니라 성격에 대한 이해, 그것들을 측정하기 위한 여러 심리검사의 특성에 대한 지식, 실제 심리평가 결과에 대해서 수많은 가설을 통해 결론을 내리는 과학자 scientist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심리치료의 경우에는 석사과정에서 만났던 대학(원)생들에 비해 다양한 내담자를 만나게 됩니다. 약물치료가 꼭 필요한 사례, 부모가 개입되어 있는 소아청소년의 사례, '하라고 하니까' 억지로 오는 사례까지, 다양한 분들을 만났습니다. 슈퍼바이저 선생님의 지도감독 하에 다시 심리치료와 상담의 기본을 다지고 나아가 사례개념화와 치료기법들을 활용해나갑니다.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결국 심리치료에서 중요한 건 내담자에 대한 따뜻한 호기심과 공감이라는 점도 되새길 수 있었어요.


2. 전문가로서 임상심리학자


 소아청소년용 지능검사 WISC의 한국어 버전 K-WISC가 새롭게 개정되면서 이 개정판에 대해서 심리실에서 함께 논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국어판 K-WISC에서는 점수의 기준이 되는 샘플 자료들의 특성을 공개하지 않고 있었는데, 슈퍼바이저 선생님께서 '이거는 우리가 검사 기계 밖에 안되는 거 아니냐'라며 아쉬워하셨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요. 검사를 실시하고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변환점수만을 사용한다면 검사 특성을 제대로 알기보다는 그 변환된 점수의 의미를 단편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짧은 한 마디였지만 임상심리학자의 전문성이 단지 검사 실시와 보고서 작성에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지식과 검사 자료들이 말하고 있는 메시지를 이해하고 통합하는 과정에 있다'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게으른 검사자가 아니라 임상심리학자로서 지식과 자료를 비판적으로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3. 심리평가와 연구논문의 가치


  사실 석사 과정 때까지만 해도 심리평가와 연구논문보다는 심리치료와 상담에 관심이 치우쳐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혹은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연구논문은 어렵기까지 하니까요. 그런데 병원 동기가 연구를 위해 환자들의 지능검사 점수들을 엑셀로 전부 입력하면서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초통계학에서는 자료가 어느 정도 모이게 되면 정규분포를 이루게 된다는 '중심극한정리'가 있는데, 웬걸 동기가 입력한 점수들을 종합해보니 정말로 정규분포를 이루고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수학적인 통계 방법이 신뢰할 수 있고 지식을 생산하는 연구활동이 필요하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마찬가지로 심리평가가 '가능한 객관적인' 결과를 도출한다는 점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검사의 점수뿐만 아니라 면담, 행동 관찰, 여러 종류의 검사 결과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할 때, 그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숱한 가설을 검증하면서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심리평가를 통해 절대적인 진단을 내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심리평가가 '이런 점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므로 이렇게 보완해볼 수 있겠다, 이런 장점을 활용하면 좋겠다'처럼 심리적인 강점과 약점을 이해함으로써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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