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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크림빵 May 26. 2021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까봐 꺼려져요]

심리학자와 최신 연구 읽기 - 5

 Photo by Enza Brunero on Unsplash


  A씨는 현재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입니다. 성실하고 모범적으로 공부해왔고 지금도 규칙적으로 연구실에 출퇴근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면접이나 발표가 있으면 긴장이 되긴 하지만 망치고 내려온 적은 없습니다. 대개 혼자서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보냅니다. 특별히 모날 것 없어 보이는 A씨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어서 상담실에 찾아왔을까요?


  A씨는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다는 증상 때문에 상담실에 왔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A씨는 한 번도 자신의 괴로움이나 갈등에 대해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적이 없습니다. 혼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아주 가까운 친구들과도 대부분 카카오톡으로 연락할 뿐 만나는 일은 드뭅니다. 내 마음을 다 털어놓고 싶지만, 무리에 속하고 싶지만, A씨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연구실에 가면 자신이 '적절하게 행동하고 있는지', '내가 제대로 행동하고 있는지'를 살피기 바빠 쉽게 피로해집니다. '사는 이유가 뭘까?' 삶이 무료하고 공허합니다. 정체 모를 불안이 며칠씩 지속되기도 합니다.


  이 사례는 '회피성 성격장애 Avoidant Personality Disorder'로 고통받는 내담자의 모습들을 재구성한 것인데요. 성실하고 지적인 잠재력이 있는 A가 자신에게 편안한 환경, 즉 혼자 실험하고 논문을 쓰는 환경을 선택했기 때문에 일상생활의 어려움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하지만 여전히 그의 삶은 단조롭고 해소되지 않은 불안과 무기력이 계속됩니다. 오늘은 회피성 성격장애로 진단받은 이들이 경험하는 내적인 경험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인간이기 위한 투쟁


  미국정신의학회의 진단체계에 따르면 회피성 성격장애는 '사회적 억제, 스스로에 대한 부적절감, 부정적 평가에 대한 예민성'이 만연해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지속되는 특성을 띕니다. 하지만 진단은 이들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단순화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회피성 성격장애로 진단받은 이들은 과연 어떤 내적인 경험을 할까요? 2019년 1월 Journal of clinical psychology에는 노르웨이에서 진행된 질적인 연구가 실렸는데요. 회피성 성격장애로 진단받은 15명의 내담자들을 2차례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이들에게 중요한 내적인 주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인터뷰 내용에 대해 현상학적-해석적 분석을 실시한 결과, 이들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는 '인간이기 위한 투쟁 struggling to be a person'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사람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죠. 왜 이들은 타인들처럼 살아가기 위해서 그토록 항상 긴장하며 노력해야 할까요? 연구자들은 관계적인 측면과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의 측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1) 관계에 대한 공포와 열망 fear and longing, 그리고 2) 의심하는 자기 a doubting self


  1) 먼저 관계적인 측면에서, 관계를 맺고 싶지만 가까워지는 게 두려운 상황에 '갇혀 있다'라고 느낍니다.


  이들은 타인과 연결되고 싶고 깊은 교류를 하고 싶어 합니다. 가까워지기 위해,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사회적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정상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마치 진짜 나, 별로인 나를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대인관계 상황은 대비해야 하는 일이 되고 부자연스러워집니다.


   한편 타인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기대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워집니다.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가까워지는 게 두려워지는 거죠. '이상적인 모습에 대한 통제'와 '타인의 부정적인 평가에 대한 두려움'은 외롭지만 차라리 자유로운 혼자만의 생활을 지속하게 합니다. 그리고 고립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원치 않는 생각이나 감정으로부터 거리 두기 위해 즐거운 기억이나 상상에 몰두합니다.


   2)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의 측면에서, 스스로에게 결함이 있다고 느낍니다.


  다른 사람들은 안정되고 유능하게 일상을 보내는데 나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자신을 믿기가 어렵습니다.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나의 부정적인 모습이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자신의 사회적 행동이나 판단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쉽게 수치심을 경험합니다. 실제 대인관계 상황에서도 불안정감, 고립감을 다루느라 그 상황에 집중하기 어렵게 됩니다.


  '별로인 나', '적절한 나'를 가늠하기 바쁘기 때문에 그때그때 느껴지는 감정과 생각에 연결되지 못하고 그 속에 '진정한 나'는 없게 됩니다. 나의 행동과 느낌이 적절한가에 몰두하느라 실제 사회적 상황에서 감정, 의도, 신념 등을 공유하지 못하면, 사회적 상황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인식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는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에 대한 자신감을 갖기 어렵게 하고 무기력해지기 쉽습니다. 상황에 맞춰서 나를 꾸며내야 하는 일상 속에서는 무얼 할 때 즐겁고 슬픈지는 알 겨를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A씨의 사례로 돌아가 보면,


  A씨는 자기에게 장점이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나를 타인이 부정적으로 바라볼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부적절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타인과 세상이 별로인 나를 알아차리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느낍니다. '별로인 나'의 모습을 감추고 사회적인 사람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외롭고 동떨어진 느낌이 무기력하고 불안하게 만들지만, '진짜 나'를 알게 되면 떠나갈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거리를 두고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특별한 스트레스 사건은 없지만 외롭고 불안한 나날들이 계속됩니다.


  그렇다면 진퇴양난의 줄타기를 하고 있는 A씨는 흔히 알려진 사회공포증(사회불안장애)와 과연 구분될 수 있을까요? 이들에게 어떤 치료적 개입이 적절할까요?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 Sørensen, K. D., Råbu, M., Wilberg, T., & Berthelsen, E. (2019). Struggling to be a person: Lived experience of avoidant personality disorder. Journal of clinical psychology, 75(4), 664-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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