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야

영화 '퍼펙트 데이즈'로 보는 지금-여기(here and now)

by 심리탐정 정지

12월은 바쁜 일정과 미션들이 하나둘 정리되어 가는 시간이다. 이제부터 프리랜서로서의 나의 일상은 ‘잉여로움의 시간’으로 접어든다. 때로는 만족스러운 하루를 영위해 나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숙제가 될 때가 있다. 기상 시간이 흐트러지지 않고, 적당한 운동과 집안일, 미래를 위한 지적 활동들...꽤 여러 해 동안 나는 이 시간을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뭔가를 하고 있는데도 ‘열심히 살지 않는 듯한’ 감각이 어느 순간 패배감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


기쁨과 성취감, 만족스러운 느낌으로 가득 찬 하루가 그리워지던 순간, 나는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를 보았다. 올드팝을 좋아하는 화장실 청소부의 이야기. 영화는 꽤 잔잔하다. 지루할걸 알면서도, 금세 빠져들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지나가는 주인공 아저씨는 운전을 하고, 자전거를 타며 도쿄의 아침과 밤을 성실히 내게 선물해 준다. 문득 지난 일본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삿포로에서 시속 20km 전차를 타고 한 시간을 그저 창문 밖 세상을 바라보던 때. 눈으로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을 그야말로 비판단적으로 바라보았던, 그 순간들이 함께 떠올랐다.

코칭에서는 알아차림(awareness)을 꽤 중시한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경험을 판단 없이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 코칭 이전에 <프리츠 펄스>가 이야기한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


주인공 아저씨의 일상은 단조롭다. 누군가의 빗질 소리에 잠을 깨고, 이불을 갠다. 양치를 하고, 수염을 깎고, 작업복을 입고, 집을 나선다. 자판기 캔커피로 목을 축이고, 테이프를 플레이한다. 올드팝이 화면 가득 흐르는데, 벨벳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가 흘러나오는 순간 나는 벅차올랐고, 아저씨와 함께 도쿄 시부야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저절로 미소가 새어 나왔다. 아저씨와 나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알아차림'을 경험하는 순간들이다.


능숙한 손씨로 청소를 하는 아저씨. 동료가 묻는다. “청소일 뿐인데,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 이 질문에 ‘일의 의미’를 읊었다면, 그건 내가 기대한 아저씨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저씨는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준다. 그의 말없음과 무심한 표정, 그저 청소일 그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딱 내가 원하던 모습이었다.


“하루하루가 똑같다”는 건 거짓말이다. 아저씨의 일상은 매일 똑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일터에서 만나는 이웃도 있고, 조카가 방문하면 불편한 잠도 감내한다. 달리 보면 하루하루 일어나는 것들은 하나의 거대한 이벤트다. 쉬는 시간에 늘 올려다보는 나무 위 하늘을 필름카메라로 담는다. 그가 집에 차곡차곡 모아둔 ‘나무 위 하늘’의 이미지들이 그래서 더 깊은 가치를 갖는지도 모르겠다.


조카는 삼촌에게 묻는다.

“바다는 언제 갈 거야?”
“다음에.”
“다음, 언제?”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말없는 아저씨의 인생관이 묻어나는 대사다.


언제, 무엇을 할 것이냐.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를, 혹은 주변을 들들 볶으며 사는지.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라’고까지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버티고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는 식의 위로도 아니다. 다만, 지금을 관조하듯 사는 것. 어쩌면 나의 별일 없는 잉여로운 하루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이 영화가 깨닫게 해줬다.


우리는 흔히 과거와 미래에 빠져 사는 경험을 한다. 이미 지나간 것들을 아쉬워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한다. 그럴 때 지금-여기(here and now)에서의 알아차림이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의 사적 경험’에 집중할 때, 통찰은 절로 따라온다.

아저씨는 돌아가면서 또 음악을 듣는다. 그러다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눈물을 흘린다.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감사함인지, 별일 없는 일상에 대한 지루함인지, 지난날들에 대한 회한인지, 아니면 그저 음악이 주는 벅차오름인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아마도 그 순간 내가 품고 있던, 정의되지 않은 여러 감정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별일 없이 지나가길 바라면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쉬운 순간들이 있지만, 그런 나를 향해 괜찮다고 말해주는 영화. 참 따뜻하고 깊이가 있다.


톨스토이의 단편 「세 가지 질문」에도 비슷한 메시지가 나온다.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


그렇다면 나의 퍼펙트 데이즈는 어떻게 채워져야 할까.

지금, 옆에 있는 아들에게 “시험 보느라 수고했다” 한마디 하고 등을 토닥이는 것. 그걸로 만족이다. 나의 방학은 잉여로움이 아닌 여유로움 그 자체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퍼펙트 데이즈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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