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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레미 Oct 31. 2024

돈 많은 백수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차 안에서 남편이 큰딸에게 한마디 했다. “돈 많은 백수가 좋겠다는 건 좀 아니지 않냐?” 남편은 큰딸이 자주 돈과 물질적인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 듯했다. 왜 우리 큰딸은 돈 이야기를 많이 하고, 돈 많은 사람은 성격도 좋을 거라고 생각할까? 남편은 우리 아이가 돈을 동경하고, 물질적인 풍요가 사람의 가치를 대변할 것처럼 여기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나도 그런 문제의식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남편에게 조용히 말했다. “우리 아이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건, 우리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는 부모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우리가 어쩌면 모르게 물질적 성취를 중요한 가치로 보여준 건 아니었을까? 



점심을 먹으며 큰딸에게 한마디 건넸다. “엄마 아빠가 컸던 시절에는 어쩔 수 없이 돈과 공부가 중요한 시대였어. 돈을 벌지 못하면 생존이 어려웠고, 가정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얻는 게 우선이었지. 부모님이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기 위해 공부를 하며 스스로를 희생하기도 했고. 우리 시대는 그렇게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살아가는 게 당연했단다.” 큰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경청했다. 



“하지만 너희 시대는 다르지 않아? 엄마 아빠가 너한테 물려주고 싶은 건, 누구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 스스로가 기뻐하고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라는 거야. 그렇게 해야 네가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엄마는 한참을 살아오고 나서야 그걸 깨달았단다.” 



큰딸이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는 사이, 나는 마음 한편으로 바라는 게 있었다. 아이가 돈이나 성공에 휘둘리지 않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는다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물론 현실에서 돈이 중요한 건 사실이야. 돈이 없으면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도 맞고, 삶에 여러 제약이 생길 수 있지. 그렇지만, 그게 네 인생의 목표가 될 필요는 없어. ‘돈이 많은 사람은 행복할 거야, 성격도 좋을 거야’라고 무작정 생각하는 것도 한편으론 위험하단다. 정작 남들 눈에 성공한 사람들이 의외로 행복하지 못한 경우도 많고, 각자의 어려움이 있다는 걸 엄마는 살아오면서 알게 됐거든.” 



딸에겐 들리지 않을 수 있다.  엄마인 나부터 그런 삶을 살아야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어 한마디를 보탰다.  “엄마 아빠도 한때는 돈을 버는 일이 중요했고, 스스로에게 그만큼 가혹하게 살았던 것 같아. ‘더 성공해야 해, 남들만큼은 해야 해’라는 마음이 컸거든. 그래서 네가 우리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비슷한 기준을 갖게 된 것도 이해가 돼. 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조금 다른 길도 열려 있지 않니?” 내가 미소를 지으며 이어서 말했다.



 “지금 이 시대의 너는 남들 기준에 맞추기보다, 너 자신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목표를 찾을 기회가 많아졌어. 남들이 부러워할 ‘성공’을 목표로 하다 보면 너의 기쁨과 무관한 걸 좇게 될 수도 있어. 대신 네가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는 게 뭔지, 너다운 가치를 찾아가면서 그걸 삶 속에 담아보면 어떨까? 그러면 나중에 너 자신에게도 후회가 없을 거야.” 딸은 조용히 내 말을 받아들였다. 



우리 시대에는 생존과 사회적 성공이 절실했지만, 지금은 더 개인적이고도 내면적인 성취에 집중할 수 있는 시대라는 걸, 우리 아이가 더 잘 이해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남들이 원하는 걸 이루었을 때가 아니라, 자기 마음에 진짜 충만함을 느낄 수 있을 때 진정으로 행복하다는 걸 우리 딸도 조금씩 느끼게 되길 바랐다.



나는 딸이 우리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남편은 평소 성실과 책임을 중요하게 여기며,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선 노력과 준비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돈과 물질적 성공을 쉽게 동경하는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노력 없이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태도가 불안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저녁에 남편에게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먼저 딸에게 자아를 찾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할 것 같아. 꼭 눈에 보이는 성공이 아니더라도,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말이야.”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딸이 물질적 성취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나도 살면서 조금씩 더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할 때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낙천적인 소리로 들릴까 봐 조심스럽다. 아마 딸 역시 우리 말이 조금은 혼란스럽게 느껴질지 모른다. 현실 속에서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애쓰는 게 익숙해진 우리 가정이기에, 삶의 방향을 조정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누군가는 작은 각도라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화살을 쏘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가정부터 그렇게 해 보자.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일이 더 큰 힘이 될 테니 말이다. 오늘의 긴 잔소리가 그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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