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늘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내가 글을 쓰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과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 심지어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믿었던 일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달라지면, 과거 또한 달라진다. 과거를 다르게 해석하면,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와 더 가까워진다.
한 동료가 있었다. 그는 5년 동안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제는 그 기회를 놓친 상실감 때문에 상처가 컸다. 그는 "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했고, 선택의 결과로 겪은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시절의 나를 수용하지 않으면, 지금의 내가 편안해질 수 없어요." 그러나 그 동료는 나를 보고 "인생이 너무 순탄하셨나 보네요?"라고 했다.
그 순간, 반문하고 싶었다. "순탄한 인생이란 과연 존재할까요?" 하지만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마음에 닿지 않은 내 말을 다시 한 번 다듬고 싶었다.
"경험은 언제나 새롭게 해석될 수 있어요. 치유는 바로 그것이죠. 우리가 붙잡고 있던 신념을 놓아버리는 순간,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요."
나 또한 용서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를 가진 적이 있었다. 특히 엄마와의 관계는 매일의 경험이 과거의 상처를 더욱 확고히 했다.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나는 매일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가 더해지며 마음을 딱딱하게 만들어야만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다.
상담 선생님도, 수많은 책의 저자들도 한결같이 말했다. “우주는 당신을 돕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만 고통이 존재하죠.” 나는 그 말에 저항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무기력하게 모든 것을 거부했다.
그 과정에서 시간이 필요했다. 수많은 헛발질도 겪었다.
그런 무용한 시간 속에서, 사랑이란 그런 것임을 배웠다. 사랑은 바로 그 과정을 견디는 것이었다. 거기에서부터 나의 치유가 시작되었다.
머리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고, 필요한 것을 그저 허용했다. 때로는 자기 비난을 하면서도, 큰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서서히 빛이 보였다. 어두운 곳에도 내가 보지 못했던 빛이 있었다.
경험은 언제나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과거를 받아들이고 나면, 그 경험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과거를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현재와 미래의 나는 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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