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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의 일기장 Oct 04. 2018

[에세이]한반도에 철도 르네상스가 오고 있다

손기정 선수는 서울역서 기차를 타고 베를린까지 갔다. 다시 그날이...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1970·80년대생들은 어린시절 추억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은하철도 999' 주제가를 저절로 흥얼거릴 지 모른다. 행성을 돌아다니며 모험을 하는 메텔과 철이를 보며 '나도 언젠가 저렇게 멋진 기차여행을 해야지'란 생각을 한번 쯤 해봤을 것이다. 서기 2221년을 배경으로 '기계의 인간지배', '문명 발달과 소외된 삶' 처럼 회마다 매우 철학적인 주제를 다뤘다는 사실은 다 큰 후에야 깨달은 사람들이 많았을 터. 어린 시절에는 철로도 없이 우주를 날아가는 999호의 모습에서 묘한 희망의 기운을 느꼈을 법 하다.

 반대로 영화 '설국열차'에서 기차는 억압적인 오래된 지배 체제를 상징했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위해 뿌린 화학물질 때문에 찾아온 대빙하기로 지구의 운명이 종말로 치닫는 상황. 마지막 인류가 모인 기차는 칸마다 삶이 철저히 다른 계급사회였다. 바퀴벌레를 녹여 만든 에너지바를 먹는 꼬리칸 사람들이 일으킨 반란마저, 지배자가 인구 조절을 위해 만든 철저한 '기획 쿠데타'였다는 결말. 억압을 끝내기 위한 선택은 결국 열차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영원히 운행될 것 같던 열차는 폭발음 때문에 발생한 거대한 눈사태에 파묻히며 멈춰선다.


 1814년 영국의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이후 인류에게 철도는 꿈과 희망, 그리고 상징과 은유의 대상이었다.

 19세기 중반, 미국인은 드넓은 황야에 철도를 놓으며 서부 개척이라는 꿈을 키웠다. 당시 뉴욕증권거래소에서는 철도주식을 둘러싼 '작전'이 수많은 사람의 주머니를 노리기도 했다. 대박의 희망도, 쪽박의 운명도 모두 철도에서 비롯됐다. 19세기 후반부터 아시아 각국에 생겨난 철도는 식민제국주의 '수탈'의 상징이기도 했다. 한국도 경부선, 경의선을 통해 일본으로 간 곡식 때문에 수많은 하층민들이 굶주려야했다. 이후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콰이강의 다리' 같은 영화에서 철도는 억압을 은유했다.

 20세기 중반이후 세계 각국에 고속도로가 깔리며 시작된 자동차의 시대, 그리고 1980년대 냉전 종식으로 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시작된 항공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철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철도는 꿋꿋이 살아남아 이제 부활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 시대에 친환경 대량수송이라는 장점이 부각된 것이다. 특히 고속철 기술의 발달로 비행기 못지 않은 속도와 비행기가 갖지 못한 도심 접근성이 장점이 됐다.


 몇년전부터 철도는 전세계인의 관심을 뜨겁게 받고 있다.

 지난 2009년 '투자 귀재' 워렌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이 인생 최대 베팅을 강행한 것도 미국 제2의 철도회사 벌링턴노던산타페(BNSF)였다. 당시 그는 "바야흐로 철도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자평했다. 실제 2000년대 들어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철도 공사가 벌어졌다. 미국, 유럽 등은 노후화된 기존 철도를 고속철로 바꾸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중국이나 브라질 같은 신흥국은 신속한 대규모 물류 수단으로 고속철을 새로 깔았다. 

 한국에서도 KTX에 이어 2016년 12월 SRT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복수 고속철 사업자 시대가 열렸다. 서비스는 좋아지고, 가격은 내려갔다. 

 게다가 올해 4·27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선언'에서 철도 연결이 주요 과제로 언급되고, 이후 북한이 남한의 국제철도협력기구 가입에 동의하면서 '한반도 철도 르네상스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철도가 한반도에서는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상징이 되고 있는 셈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스포츠계의 전설 손기정 선수는 그 당시 베를린에 어떻게 갔을까.

 많은 사람들이 배를 이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정답은 철도다. 당시 그는 부산~서울~신의주~하얼빈~모스크바를 거쳐 독일 베를린에 도착했다. 당시 경성역(지금의 서울역)은 국제선과 국내선이 따로 있던 국제철도역이었다.

 손기정 선수가 갔던 바로 그 철길을 다시 연결하는 사업이 시작된다. 벌써 남북 당국은 경의선과 동해선 현장 점검을 마쳤다. 경의선은 이미 2007년에 연결이 끝나 1년간 222회나 화물열차가 다닌 바 있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사건으로 운행이 중단되긴 했지만 조금만 손을 보면 당장 달릴 수 있는 수준이다. 북한의 비핵화 속도에 따라 미국·유엔의 대북제재가 풀리면 가장 먼저 철도 운행이 시작될 수도 있다.

 동해선은 남한 고성 제진~북한 감호까지 구간은 2007년에 연결됐다. 그러나 남측 구간인 강릉~제진 110.2km 구간은 당시 정권말 분위기 때문에 건설 공사 예산 편성이 안됐다. 수조원의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보여 앞으로 동해선 완공에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남북 철도 연결은 손기정 시대를 재현하는 셈이다.

 북한의 철도는 중국·러시아와 연결돼 있다. 남북 철도 연결이 마무리되면 부산역은 유라시아 횡단철도의 종착역이자 시작역이 될 수 있다.

 경의선 운행이 재개 되면 서울에서 평양·신의주를 거쳐 중국 횡단철도(TCR)를 타고 중국 베이징까지 갈 수 있게 된다. 또 북한 평라선을 거치면 러시아로 향하는 동해선과도 연결된다. 만약 동해선 강릉~제진 구간이 완성되면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동해안을 따라 올라간 후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통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를 거쳐 유럽까지 갈 수 있다.

 물론 경의선이 바로 운행을 시작한다해도 해결해야할 숙제는 많이 남아있다. 북한 철로가 무척 낙후돼 있는 데다, 전력 사정이 나빠 1시간에 30~40km 정도만 갈 수 있다는 게 큰 문제다. 전력망 확충과 함께 철로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에서는 국제컨소시엄 형태로 경의선 고속철을 새로 까는 방안도 물밑 검토중이라고 한다.

 바야흐로 한반도에 철도 르네상스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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