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빠의 일기장 Aug 30. 2018

[단편소설] 아이 부처

얼굴없는 스님의 체육관 법회에는 수천명이 몰렸다

 “우와~”

 깜깜했던 체육관 무대 위에 조명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무대 한가운데 설치된 하얀 천 뒤에서 강렬한 핀 조명이 발사됐다. ‘그’의 실루엣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오천 명의 입에서 터져 나온 함성이 공기를 뒤흔들었다.

 “안녕하세요.”

 ‘그’가 인사를 하자, 청중 모두가 유치원 어린이들처럼 일제히 “안녕하세요”라고 응답했다.

 “나무관세음보살.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땡중, 지견입니다.”

 하얀 천 옆에 설치된 커다란 프로젝터 화면에 ‘지견(知見) 스님’이란 네 글자가 떴다. 

 “엄마, 저 스님 되게 잘 생겼을 것 같지 않아?”

 반듯한 실루엣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정아는 같이 온 엄마에게 말했다.

 “어쩜 목소리가 저리 젊어 보이는데, 큰 스님이 되셨다니...”

 “엄마 쉿, 이제 시작하려나 보다.”

 지견 스님의 강연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도와 함께 시작됐다. 화면에는 ‘1분 기원’이란 글자가 떴다.

 “우리 모두 마음의 안정과 가정의 화목, 그리고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해 마음 속으로 기도합시다.”

 정아는 이제 곧 초등학생이 되는 아들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여느 때보다 기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듯 했다.

 “자, 여러분 어떤 기도를 하셨나요? 혹시 제가 하라고 한 기도 중에서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는 생략하고 개인과 가정을 위한 기도만 하셨나요?” 

 정아는 뜨끔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아는 ‘나만 그런 건 아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럼 다시 기도합시다. 이번에는 나와 가족 말고 더 큰 공동체를 위해 기도해보세요.”

 화면에 또다시 ‘1분 기원’이란 글자가 떴다.

 정아는 이번에는 남북이 영원히 평온할 수 있도록, 또 세계 여러 나라가 반목하지 않고 평화 속에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마음이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번 강의를 안 들으신 분 있으신가요? 손 좀 들어 주세요.”

 셀 수 없이 많은 손이 동그란 통 속에 빽빽이 들어찬 이쑤시개마냥 쑥쑥 올라갔다. 

 “제가 짧게 설명해 드리고 오늘의 강의로 넘어갈게요.”

 지견 스님의 강연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앞서 같은 체육관에서 한 달 씩 차이를 두고 ‘석가모니와 10대 제자’, ‘예수와 12제자’에 대한 강연을 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리다보니 첫 강연 때는 수천 명이 강연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섰다. 

 원래 무료였던 강의를 주최측은 두 번째 부터 삼 만원 유료로 바꿨다. 인터넷·모바일 티켓구매 사이트에는 ‘강연 진행을 위해 필요한 비용을 제외한 수익금 전액은 불우이웃돕기에 환원됩니다’란 배너가 떴다. 

 정아는 티켓구매 시간 오 분 전부터 기다렸다가 ‘광클’ 끝에 구매를 했다. 채 삼 분이 지나지 않아 ‘매진’이란 빨간 글씨가 떴다. 

 ‘얼마나 훌륭한 강연이길래...’

 하지만 지견 스님의 지난 두 차례 강연에 대한 요약은 점점 지루해 졌다. 자애와 사랑, 누가 봐도 따듯하고 형이상학적인 단어들이 나열되는 종교학 수업 같았다. 

 ‘박학다식하신 것은 같은데... 너무 지루하네.’

 정아는 슬쩍 옆자리 엄마 얼굴을 봤다. 엄마도 반쯤 감긴 눈으로 하품을 하고 있었다.


 지견스님은 SNS 대스타였다.

 사 년 전, SNS에서 지견 스님의 짧은 글귀들이 하나둘 유행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삶은 전쟁이다. 부상과 죽음이 없다면, 인류가 만든 모든 행위 중에 가장 재미있는 게 전쟁이다. 그 재미있는 삶 속에서 상처도 입고, 때로는 죽을 만큼 괴롭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자비와 사랑을 실천한다고 생각조차 하지 말라. 우리는 성인(聖人)이 아니다. 그냥 남에게 조그만 피해라도 주지 않는 삶을 산다면 그게 바로 부처고, 예수의 삶이다.’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행복해져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라.’

 그 즈음 아이디 ‘파괘사’란 사람이 SNS에 떠도는 지견 스님 글귀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모았다. 파괘사는 좋은 책을 소개하는 화려한 글들로 파워블로거가 돼 꽤 영향력이 있었다.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그의 블로그는 지견 스님의 팬 카페로 변했다. 파괘사는 블로그 문패도 ‘지견 스님을 따르는 사람들(지견 따사)’로 다시 달았다.

 지견 스님의 글귀마다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에요’ ‘답답할 때 읽으면 앞이 탁 트입니다’ 같은 댓글들이 수만 개씩 달렸다. 정확히 일주일에 한 번 씩 매주 월요일마다 보낸다는 지견 스님의 글귀가 올라 올 때마다, ‘지견 따사’ 블로그의 하루 조회 수가 오십만 클릭을 넘었다.

 이 년 전에는 대통령이 처음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자리에서 지견스님의 글귀를 여러 번 인용했다. 이후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들이 ‘지견 따사’에 우르르 몰리면서 하루 조회 수가 백만 클릭을 넘기 시작했다. 

 <얼굴없는 스님, 지견 신드롬>

 신문에서도 지견 스님에 대한 기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견 따사’ 블로그 문지기인 파워블로거 파괘사의 이력도 화제가 됐다. 

 한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재미교포인 그는 미국 MIT공대를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을 운영하다가 지금은 전업 주식투자자로 일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독실한 불교 신자인 그는 지견 스님 글들이 좋아 하나씩 모으다가 수소문 끝에 지견 스님을 직접 만났다고 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 지견 스님이 자신에게 문자로 전해오는 글들을 블로그에 올린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견 따사’ 블로그에는 지견 스님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글들이 무수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음이 너무너무 괴로워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드는데, 지견 스님의 따스한 말 한마디로 치유받고 싶어요.’

 ‘좋은 글 남기시는 만큼 강연도 잘 하실 것 같은데, 파괘사 님이 공개적인 자리 좀 만들어주세요.’

 파괘사는 고민 끝에 지견 스님께 건의 드려 보겠다는 공지를 블로그에 올렸다.

 그리고 한 달 뒤, 많은 사람들의 바램과는 다른 내용의 공지가 ‘지견 따사’ 블로그에 떴다.

 ‘지견 스님의 다음과 같은 글을 전합니다. <아직 대중 앞에 설만큼 수행이 부족하니, 앞으로 1년간 더 수행한 다음에 뵙기로 했습니다. 수행에만 전념하려 하오니 1년간은 제 글도 보내지 않겠습니다. 수행이 다 된 뒤에 여러분 앞에 서겠습니다. -떠돌이 땡중 지견>’

 어느덧 이백만명이 넘은 ‘지견 따사’ 회원들은 일 년 동안 각자의 방식대로 지견 스님을 따르기 시작했다.

 자유게시판에는 지견 스님의 과거 글귀 때문에 자신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고백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는 ‘선플’들이 수 천 개씩 달렸다. 언론은 ‘지견 따사’에 올라온 글들을 인용하며 지견 신드롬을 보도했다.

 <자살하려던 젊은이 지견 팬 카페에서 삶의 희망을 찾다>

 <포털 뉴스엔 악플 가득, 지견 스님 블로그엔 선플만> 

 <지견 스님 신드롬, 팬 카페 회원만 200만 명>

 그리고 ‘지견 따사’ 회원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일 년이 지났다. 

 파괘사는 지견 스님의 첫 강연 공지를 ‘지견 따사’ 블로그에 올렸다. 

 처음과 두 번째 강연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첫 강연이 끝난 뒤 모든 신문에 지견 스님 강연 기사가 실렸다. 첫 번째 만큼은 아니지만 두 번째도 비슷했다. 


 호기심에 ‘지견 따사’에 가입했던 정아가 불교 신자인 어머니를 모시고 세 번째 강연을 들으러 온 계기는 인터넷 포털에 나온 <아이 부처, 5000명 영혼을 맑게 하다>란 기사에 실린 에피소드 때문이었다. 자신과 처지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고, 남편은 절에 거의 다니지 않는 불교 신자인데 절대 개종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이가 종교를 갖고 싶다고 하는 데 어디로 가야할까요.”

 “남편 분이 절에 별로 안 다닌다는 점에선 저랑 똑같군요. (청중들 큰 웃음) 저도 북적이는 절보다는 제 집인 산 속 암자가 좋습니다. 간단히 질문 하나 드리면… 혹시 아이가 교회나 절에 가 본 적이 있나요?”

 “전혀 없습니다.”

 “아이가 절에 다니면 본인은 반대하실 겁니까?”

 “마음은 좀 불편하겠지만, 아이 의견을 존중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생각이 바뀌어 교회에 다니면 제 입장에선 더 좋겠지만요.”

 “이미 현명한 결론을 갖고 계시는 군요.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나 모두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시고, 아이의 영혼을 잘 보살펴주실 겁니다. 아이의 마음이 가는 쪽으로 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두 번의 강연에서 하이라이트는 이같은 즉문즉답 시간이었다. 사회자가 딱 열 개의 질문을 받았다. 지견 스님은 단 한 번의 막힘이 없이 술술 대답을 풀어나갔다. 청중들은 늘 큰 박수를 보냈다. 

 특히 열에 여덟 번은 질문에 대한 답을 ‘여러분께서 영혼이 맑은 어린아이가 됐다고 생각해 봅시다’라고 시작했다. 특유의 젊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묘하게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이후 ‘아이 부처’란 말이 지견 스님에게 가장 많이 붙는 수식어가 됐다.

 정아가 아이 부처와 관련된 과거 기사를 하나씩 머릿속에 떠올리는 사이, 지견 스님은 지난 두 번의 강연 요약을 끝냈다. 지루해 하던 정아는 세 번째 주제인 ‘공자, 맹자, 주자’ 강연이 재미있기를 마음속으로 바랐다.

 프로젝터 화면에 ‘공자의 도(道)’란 글자가 떴다.

 “공자도 부처님, 하느님과 같은 얘기를 한 것 아시나요? 공자는 평생을 ‘어떻게 해야 올바른 도를 실현할 수 있는가’, 그리고 ‘도가 실현된 올바른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공자의 화두가 도였던 셈이죠…”

 정아는 다시 졸립기 시작했다.

 ‘스님께서 왜 예수님이랑 공자, 맹자 얘기를 하지? 그나저나 젊은 나이에 공부는 참 많이도 하셨네.’

 정아는 딴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옆자리에 앉은 엄마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정아야, 무슨 얘기인지 이해 잘 되니?”

 “뭐, 대충만 그래. 엄마, 근데 솔직히 재미는 별루 없다.”

 “큰 스님의 좋은 말씀인데, 잘 새겨들어. 내 친구들은 내가 여기 티켓 구했다고 엄청 부러워하더라. 스님이랑 셀카 사진이라도 좀 찍고 오라고.”

 “엄마, 저 분 얼굴 없는 스님인 거 몰랐어? 사진 못 찍어.”

 “뭐, 왜? 왜 얼굴이 없어?”

 “저 하얀 천 뒤에서 강연하시고 바로 자리 뜨신데. 낯을 가리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몰라도 지금까지 얼굴 본 사람이 없다는데.”

 “아이, 참. 사진 찍어서 올려야하는데. 얼굴 없는 스님이란 건 첨 알았네. 모두 아이 부처, 아이 부처 하길래 얼마나 고운 얼굴인지 보려 했는데.”

 기대했던 즉문즉답 시간이 시작됐다. 프로젝터 화면에 ‘즉문즉답(卽問卽答)’이란 단어가 뜨자, 정아와 엄마의 잡담도 멈췄다.


 강연 다음날 아침.

 정아가 휴대폰을 들고 포털 앱을 열자 뉴스 검색 1~3위에 ‘지견 스님’ ‘아이 부처’ ‘김신’이 올라 있었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 김신이 세 번째 강연 즉문즉답의 질문자로 나섰던 것이다. 

 “저는 여배우 김신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스스로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깊은 산 속으로 숨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포털에서 제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지 않으면 더 불행해질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있는 깊은 산 속에 한 달 만 머물다 가실래요? (청중들 웃음) 여배우가 어떤 삶을 사는 지, 저는 모릅니다. TV를 아예 못 보거든요. (큰 웃음) 당신은 평소에 어떤 때가 가장 행복합니까?”

 “바쁘게 드라마 찍다가 한두 시간 대기하는 중에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행복을 찾으셨는데요. (청중들 큰 웃음) 산 속에서 마시는 커피나 이 곳서 마시는 커피나 브랜드만 같으면 맛은 똑같습니다. 행복이란 것, 멀리 산 속에서 찾을 필요 없습니다. 다 똑같은 행복입니다.” 

 “아, 그렇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체육관이 떠나갈 만큼 큰 박수소리가 들렸다. 정아는 드라마와 달리 진짜로 행복한 웃음을 짓던 여배우의 얼굴을 한참이나 쳐다봤다.

 저녁 TV뉴스에서도 지견 스님의 강연 장면이 연이어 나왔다. <얼굴없는 큰 스님 ‘아이 부처’ 지견 스님>이란 타이틀과 함께. 

 밤이 돼서는 포털에 별별 뉴스들이 다 나오기 시작했다.

 <톱 탤런트 김신, ‘아이 부처’와 깊은 산 속으로 갈까>

 <“행복하지 않다” 말 한 김신, 얼굴 없는 스님 찾은 까닭은>

 <‘아이 부처’ 지견 스님, 목소리 분석해보니 30대 초반>

 정아는 ‘참 쓸데 없는 기사들도 다 있다’면서도 자꾸 호기심이 생겼다. 기사들을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정아의 눈에 가장 띄었던 기사는 ‘아이 부처’의 정체를 파헤친 기사였다. 댓글만 수천 개가 달릴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얼굴없는 큰 스님 ‘아이 부처’ 지견 스님은 조계종 소속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 탐사취재팀이 한달 여 조계종 소속 승가대나 승가대학원, 그리고 지방 사찰을 탐문한 결과 ‘지견’이란 법명을 가진 승려 3명 가운데 아이 부처의 목소리와 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 부처를 직접 만난 것으로 알려진 아이디 ‘파괘사’란 파워블로거도 “어느 종단 소속인지는 모른다”고 확인했다. 다만 그는 아이 부처의 구체적인 과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며 “바람처럼 흘러왔다가, 소리 없이 흘러간다고만 말해주신다”고 대답했다.>

 정아는 어제 강연 즉문즉답에 앞서 지견 스님이 자신과 관련한 질문은 절대 하지 말아달라고 했었던 게 떠올랐다. 

 ‘얼굴 없는 스님의 정체는 뭘까. 그가 산다는 깊은 산 속은 어디일까. 나만 이렇게 궁금한 건 아닐 텐데.’

 정아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견 스님의 네 번째 강연은 엉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부처, 니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주제 강연에서 한 즉문즉답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나이가 젊어 보이는 한 남성이 “스님은 부처님을 믿지만, 예수님의 존재도 긍정 하십니까”란 질문을 했다. 지견 스님은 “부처가 예수고, 예수가 부처입니다. 자비행과 사랑의 실천으로, 부처가 될 수도 있고 예수가 될 수 있습니다. 나와 예수와 부처가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부처가 예수고, 예수가 부처’란 말의 파장은 조그만 연못에 바위를 던진 듯 했다.

 다음날부터 TV에서는 ‘전문가 패널’이라는 사람들이 떼 지어 등장해 지견 스님의 의중을 제 멋대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직업은 변호사, 정치인, 전직 기자였다.

 “종교의 틀을 벗어나라는 화두로 보입니다. 교회 다닌다고 모두 다른 사람 돕고 사는 거 아니고, 부처님 말씀으로 장사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아요? 지견 스님이 종교의 형식을 벗어나 ‘착하게 사는 게 제일’이라는 점을 강조한 겁니다.”

 “부처의 자비행과 예수의 사랑은 결국 위선을 벗고 진심으로 선행을 하고 살라는 말입니다. 지견 스님처럼 고귀한 큰 스님들은 모두 같은 얘기를 하셨지요.” 

 “신약성서에 보면 예수님이 서른 살이 될 때까지 행적이 없죠? 어떤 종교학자들은 예수님이 이 기간 동쪽으로 가서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왔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물 위를 걷고, 제자 한 명이 부처를 배반하고, 뭐 이런 내용이 불경에도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예수가 부처고, 부처가 예수란 건 두 분이 같은 고대 종파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물론 저는 믿지 않지만요.”

 정아는 더 보고 있기 힘들었다. TV 채널을 돌리다 온통 지견 스님 얘기만 나오는 걸 확인하고는 TV를 껐다. 

 ‘도대체 지견 스님 말을 그냥 있는 그대로 들으면 안 되는 걸까.’

 며칠 뒤 기독교 내부에서도 이단으로 불리는 한 대형교회에서 신문마다 제일 앞면에 큼지막한 광고를 냈다. 

 <불교 교단에서마저 어느 종단을 따르는 지 확인조차 되지 않는, 정체불명의 떠돌이 스님이 ‘유일신 예수 하나님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안되는 주장을 했습니다.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사이비 언론들은 독실한 불교 신자인 대통령의 의중을 그대로 반영해 ‘부처가 곧 예수’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전혀 여과하지 않은 채로 며칠 째 계속 보도했습니다. 주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님을 모독하는 떠돌이 스님에게 강력 항의합니다. 비슷한 말을 다시 반복할 경우 고소 고발을 통해 진리와 정의를 바로 세울 것임을 엄중히 경고합니다.>

  이 교회를 이끄는 지도목사라는 사람이 TV 저녁 뉴스마다 등장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제 아무리 떠돌이 스님, 그 사람이라도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정아는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우리 엄마 큰 일 났네. 평생 착하게 살아왔는데, 저 사람 말대로라면 부처님 믿으니까 지옥 간다는 거야. 세상에.’

 ‘부처가 예수고, 예수가 부처’라는 주제에 대한 논쟁은 끝도 없이 이어질 듯 했다. 지견 스님이 큰 화두를 던진 셈이었다. 한국 사회가 언제부터 종교에 관해 이토록 다양한 담론을 만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별별 이야기들이 매스컴에 등장했다.

 온 국민이 부처든 예수든 어느 한쪽 편에 설 때쯤 ‘부처가 예수고, 예수가 부처’ 논쟁을 끝낼 ‘바로 그 일’이 벌어졌다.


 몇 달 뒤면 대통령 선거였다. 

 공교롭게도 여당과 야당의 유력한 후보들이 모두 불자였다.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이들은 지견 스님 어록을 하나씩 꺼냈다. 자신이 얼마나 맑은 영혼의 소유자인지, 또 자기 성찰에 뛰어난 사람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지견 스님 어록만큼 대중들에게 ‘잘 먹히는’ 방법이 없었다.

 지견 스님의 다섯 번째 강연에는 여당 한 명, 야당 두 명 등 유력 대선 후보 세 명이 동시에 체육관에 나타났다. 이들의 등장 소식이 미리 다 알려진 까닭에 평소보다 방송국과 신문사 카메라가 네 배는 많이 나타났다. 세 사람 모두 즉문즉답 시간에 손을 들었다. 하지만 사회자는 이들을 쳐다도 보지 않고 일반인들을 지명했다. 

 ‘지견 스님이 일부러 정치인을 피하라고 시켰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 인터넷 뉴스에서 <아이 부처, 때 묻은 정치인을 피하다> <지견 스님, 정치를 일갈하다>같은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양쪽 진영은 모두 파괘사를 비롯해, 지견 스님을 알 만한 사람들을 수소문해 만나고 다녔다. 의도는 뻔했다. 지견 스님을 제일 먼저 친견해 사진이라도 같이 찍든지, 말씀이라도 섞어 뉴스에 나와 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견 스님은 하얀 천 뒤에서 하는 체육관 대중 강연 말고는 일체의 외부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파괘사를 통해 전했다. 그리고 그는 실제 어떤 정치인도 직접 만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파괘사가 한때 야당 유력 후보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았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후 포털에선 <아이 부처, 야당 후보와 ‘아는 사이’> <지견 스님, 야당과 오랫동안 친했다> <아이 부처 어록에 힌트가 있다. ㅇㅇㅇ 후보 과거 멘트와 비슷> 등의 기사가 뒤를 이었다.

 그날 저녁, 대선주자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선 여당 후보가 지견 스님 어록을 인용하면서도 “아이처럼 맑은 우리 지견 스님은 높고 곧은 뜻을 갖고 계셔서 절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으실 분”이라고 선수를 쳤다. 혹시나 지견 스님이 야당 후보와 만난 사진이라도 나올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반면 야당 후보는 가는 곳마다 “지견 스님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그의 말씀을 하루도 빠짐없이 되새기고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여당 후보를 대놓고 밀어주던 ‘일등 신문’에서 <아이 부처, 진짜 정체는 ‘파괘사’였다>란 기사가 나왔다. 밥을 먹다가 무심결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정아는 깜짝 놀라 기사를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조회 수만 삼백만을 넘는 기사였다.

 <‘아이 부처’란 별명으로 더 유명한 지견 스님의 팬 카페를 운영하는 아이디 ‘파괘사’란 인물이 바로 지견 스님이었다. 본지 기자들이 지난 다섯 번의 지견 스님 강연을 추적한 끝에 파괘사는 강연 때마다 현장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체육관 무대 준비를 한 현장 스태프들은 “강연의 마지막 준비는 늘 파괘사 혼자한다. 파괘사만이 지견 스님 실물을 볼 수 있었다. 우리들은 단 한번도 지견 스님을 본 적이 없다”고 똑같이 증언했다. 본지 미국 특파원이 오랜 기간 추적한 끝에 파괘사가 MIT에서 공부를 마친 후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한 절에서 사미계까지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을 창업할 때까지 삼년간 그의 행적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벤처기업 운영 당시에도 미국인 직원들에게 불교 경전에 대한 얘기를 자주하는 등 불교에 심취한 사람으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중략) 이에 대해 수차례 시도 끝에 통화가 된 파괘사는 “내가 지금 실리콘밸리에 있다”며 “한국에 돌아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하며 즉답을 피했다.>

 정아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지견 스님 말씀을 따르려 노력하다면서 온갖 착한 척은 다했던 파괘사가 결국 온 국민을 속인건가.’

 이 뉴스의 파괴력은 컸다. 순식간에 포털 사이트 뉴스 검색 1~5위까지 비슷한 기사들이 도배를 했다. 종합편성채널 TV프로그램마다 파괘사가 누구인지, 아이 부처로 볼 흔적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전문가’들이 나와 하나하나 짚었다.


 다음날에도 대선주자 TV토론회가 있었다.

 정아가 TV를 켰을 때는 여당 후보가 모두발언을 막 끝낸 참이었다. 그리고 파괘사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았다는 야당 후보가 연단 앞으로 가고 있었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분장으로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짙었다. 정치와 경제 공약에 대한 비전을 한참 말하고 난 그가 이초 정도 쉬어가더니, 이윽고 지견 스님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아이 부처’라 불리는 지견 스님이란 분을 단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파괘사란 분이 아파트 같은 동에 살고 있는 지도 최근에서야 알았습니다. 최근 지견 스님을 한번 뵙고 싶어서 아는 사람을 통해 파괘사를 한번 만나게 됐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가 ‘지견 스님을 꼭 뵙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가 파괘사가 곧 지견 스님이란 사실을 알았다면 그런 부탁을 했겠습니까.”

 모두 발언이 끝나고 이어진 난상토론 시간에서 이 후보는 집중 공격을 받았다.

 “파괘사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사시는 것은 맞지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만나서 얘기를 나눈 것은 지견 스님 뵙게 해달라고 부탁할 때 한 번 뿐입니다. 그때 처음 인사했습니다.”

 “두 분이 엘리베이터에서 함께 내리는 것을 여러 번 봤다고 하는 목격자가 있습니다. 한번만 만난 게 아닐 것 같은데요. 거짓말 아닙니까.”

 “파괘사란 분의 존재 자체를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서로 모르고 지내던 시절에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걸 본 것이겠죠.”

 “계속 부인하실 겁니까.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결정적 증거로 여기 CCTV 사진도 확보해서 갖고 나왔습니다. 사진을 보면 두 사람이 서 있고, 파괘사가 후보님 쪽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무슨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니까요. 사진 보시면 파괘사가 저를 보고만 있지, 입을 열지는 않고 있지 않습니까? 그 사진이 무슨 증거라고 하십니까. 그냥 같이 서 있는 사진인데요. 사진 말고 CCTV 동영상을 틀어보세요. 대선 후보나 돼서 죄 없는 사람 무고하지 마십시오.”

 “뭐요? 증거가 이렇게 있는데도 발뺌하십니까? 파괘사의 존재를 알았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계셨던 것 아닙니까? 참 딱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이 거짓말을 일삼으시면 되겠습니까.”

 공격하는 쪽도, 방어하는 쪽도 목소리가 점점 거칠어져 갔다. 

 사회자가 “정책과 관련한 질의를 해달라. 다른 질문을 하면 발언시간을 줄이겠다”고 말했지만 모든 질문이 파괘사 관련된 것들 뿐이었다. 

 정아는 야당 후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괘사가 사기 친 것이지. 저 사람이 무슨 잘못이람.’

 지루한 공방이 계속될 무렵 갑자기 TV화면에 뉴스속보 자막이 떴다.

 <파괘사, 지견 스님 여섯 번째 강연 공지 “진실은 강연장에서 밝히겠다”>

  토론을 진행하던 사회자가 멈칫 하더니 후보들 간의 공방을 중단시켰다.

 “방금 들어온 뉴스 속보 하나를 먼저 말씀드리고 다시 대선후보 토론을 진행하겠습니다. 지견 스님 팬 카페를 운영하는, 아이디 파괘사로 유명한 파워블로거가 내달 10일 지견 스님의 여섯 번째 강연을 개최하겠다고 팬 카페에 공지했습니다. 파괘사는 강연 공지를 하면서 ‘여러분이 제기하는 모든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진실은 지견 스님의 고귀한 말씀을 들으러 오신 수많은 분들 앞에서 반드시 밝혀질 것입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순간 여당 후보의 표정이 보기 딱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집중 공격을 받던 야당 후보는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사회자가 “이제 정책 토론을 시작하자”고 말했다. 모든 후보들이 약속이나 한 듯, 정책에 관한 질문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후 ‘지견’ ‘파괘사’란 단어가 나오지 않았다. 

 정아는 그 후 보름 남은 기간 동안 궁금증이 머릿속에 가득 차 미칠 지경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포털 뉴스를 들여다봤다.

 드디어 지견 스님의 여섯 번째 강연이었다. 

 체육관 밖에 걸린 커다란 플랭카드에는 ‘지견 스님 여섯 번째 말씀 – 영욕견후심공(榮辱遣後心空)’이라 적혀 있었다. 

 정아는 이미 뉴스를 통해 그 어려운 한자들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영욕을 모두 버린 뒤에라야 마음을 비울 수 있다’는 조선 후기 시조를 인용한 말씀이었다. 

 체육관 안에 들어서자 족히 백 개는 될 것 같은 카메라들이 보였다. 수백 명의 경찰들이 무대 앞을 지켰다. 경찰들이 포토라인 뒤로 카메라맨들을 밀어내자 여기저기서 항의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포토라인이 정리될 즈음 갑자기 ‘와~’하는 엄청난 함성이 들려왔다. 경찰 십여 명과 함께 파괘사가 포토라인 앞 무대 맨 앞자리에 등장했다. 지견 스님이 강의하는 지난 다섯 번 동안 단 한 번도 청중들의 눈에 띄지 않았던 그가 보란 듯이 나타난 것이다. 파괘사는 ‘모두가 나를 주목하라’고 웅변하는 듯, 팔을 커다랗게 휘휘 저으며 자리로 당당히 걸어갔다. 

 일초에도 수천 번의 카메라 플래쉬가 터졌다. 무대에서 가까이 앉아있던 정아는 비처럼 쏟아지는 플래쉬 세례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번쩍 번쩍 하얀 빛 속에서 파괘사의 뒷모습이, 마치 지견 스님의 실루엣인 듯, 검게만 보였다.

 이때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

 “잠시 후 지견 스님의 강의가 시작됩니다. 청중 여러분께서는 휴대전화 전원을 꺼주시거나 무음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장내가 정리되는 데로 지견 스님의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하지만 소음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정아도 옆자리에 앉은 엄마에게 소곤거렸다.

 “엄마, 저 사람이 지견 스님 행세를 했다는 파괘사란 사람이야.”

 “야, 그럼 지견 스님이 무대에 안 나타나는 거야?”

 “아니, 저 사람이 지견 스님이 아닌가봐. 기자들이 틀렸어.”

 강의의 시작을 알리는 에밀레 종 소리가 세 번 울렸다.

 “나무관세음보살, 잘 지내셨습니까. 여러분. 땡중 지견입니다.”

 한치의 틀림없이 지견 스님의 목소리였다. 

 순간 카메라들이 일제히 파괘사를 향했고, 수천 번의 플래쉬가 터졌다. 카메라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강연을 이어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저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안고 오신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제 진실이 밝혀졌으니, 모두들 마음을 비우시고 제 강연에 집중해 주십시오.” 

 정아는 도무지 강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파괘사가 몸을 들썩이거나, 손으로 머리를 다듬을 때마다 카메라 플래쉬가 터졌다.

 ‘그러면 지견 스님은 진짜 스님이신 거겠지? 내가 가짜 뉴스에 속았던 건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날 저녁 포털은 지견 스님과 파괘사와 관련한 뉴스 천지였다. 

 정아는, 그 와중에 눈에 띄는, ‘싫어요’를 십 만개 넘게 받은 기사를 읽었다. <아이 부처, 진짜 정체는 '파괘사'였다>란 기사를 썼던 바로 그 ‘일등 신문’이 내보낸 기사였다.

 <지견 스님의 정체는 역시 파괘사였다. ‘아이 부처’란 별명으로 더 유명한 큰 스님 지견의 팬 카페를 운영하는 아이디 ‘파괘사’란 사람이 지견 스님 여섯 번째 강연에서 청중 앞에 등장했다. 마치 ‘내가 지견 스님이란 보도는 틀렸다’고 항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본지 기자들의 취재 결과 이 또한 거짓이었다. 이날 청중 앞에 등장한 사람은 파괘사의 쌍둥이 동생인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 기자들이 확인한 결과 그는 한국에서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세 살 때 동생이 사망한 것으로 서류상 기록돼 있다. 하지만 본지가 파괘사에게 여러 차례 ‘동생 사망’에 대해 문의했지만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날 파괘사는 무대 위에 지견 스님으로 등장하고, 쌍둥이 동생은 무대 아래서 파괘사 연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날 파괘사는 가벼운 인사 정도만 하고 언론 인터뷰에 일체 응하지 않아 의심을 샀다. (이하 생략)>

 정아는 다시 혼란스러웠다.

 ‘이쯤되면 지견 스님이 진짜 등장해야하지 않을까.’


 ‘아이 부처’ 지견 스님의 일곱 번째 강의는 석달 뒤에나 열릴 수 있었다. 지견 스님 건강 상의 문제로 한차례 강의가 연기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포털에 뉴스가 쏟아져 나왔지만 ‘파괘사 쌍둥이 동생 설’과 관련해서는 더 확인된 진실은 없었다. ‘쌍둥이 동생을 봤다’는 증언이 기사에 실렸지만, 진짜 쌍둥이 동생이 TV에 등장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소문이 소문을 낳을 뿐이었다. 언론들은 진짜 뉴스인지, 가짜 뉴스인지 모를 기사들만 무수히 쏟아냈다.

 ‘지견 따사’ 블로그에 이번에는 처음으로 강연을 TV 생중계한다는 공지가 떴다. 정아는 체육관에 가지 않기로 했다. 지견 스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싶은데, 현장에서는 카메라 소리 때문에 어수선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마이크로 들리는, 지견 스님의 깔끔한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지견 스님이 나름 좋은 말씀을 하시는데 왜 사람들은 더 이상 그 말씀에는 집중하지 않을까.’

 강의 시작 이십 분 전부터 TV에서는 앵커가 나와 떠들어대고 있었다.

 지견 스님의 어록과 ‘아이 부처’란 별명을 얻은 배경, 그리고 파괘사와 지견 스님의 관계에 대한 소문까지 하나하나 짚었다. 종교학 교수란 사람이 나와서 마치 축구 해설위원처럼 간간이 불교 용어를 풀어줬다. 

 이번에도 요란한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파괘사가 무대 앞에 등장했다. TV에 얼핏 비친 카메라 수가 지난번 보다 더 많아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얀 천에 조명이 켜진 뒤에 지견 스님 쪽을 향한 카메라는 십 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나무관세음보살, 잘 지내셨습니까. 여러분. 땡중 지견입니다.”

 지견 스님이 여느 때와 같은 맑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정아는 마음 속으로 ‘나무관세음보살’을 외쳤다.

 프로젝터 화면에 오늘의 주제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가 떴다. 전에 비해 쉬운 주제로 보여서인지 정아는 오늘의 강의에 많은 기대를 했다.

 “여러분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가 기억나십니까. 저는 기억이 납니다.(일제히 웃음) 어느 날 갑자기 환해지더니 세상이 제 눈앞에 쑥하고 나타났습니다. 만물이 이미 있고, 저는 그냥 그 속에 점 하나로 등장한 겁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죽을 때도 상상이 됩니다. 세상은 언제나처럼 바쁘게 돌아가고, 저는 그냥 점 하나로 사라질 겁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입니다.”

 프로젝터 화면에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란 다섯 글자가 떴다.

 “본래무일물은…”

 갑자기 지견 스님이 말을 잇지 못했다. 십여 초가 지났다.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대 앞에 앉아있던 파괘사가 갑자기 무대 옆 계단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일제히 카메라 플래쉬가 터졌다. 플래쉬가 너무 밝아서 그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그가 무대 위 하얀 천 뒤로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TV 화면 속에는 번쩍 번쩍하는 카메라 불빛들만 보였다.

 “지견이 나이고 내가 곧 지견입니다. 지견이 나이고 내가 곧 지견입니다. 지견이 나이고 내가 곧 지견입니다…”

 지견 스님이, 마치 녹음기를 튼 듯, 같은 톤으로 똑같은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어디 편찮으신가.’

 그때였다. 프로젝터 화면에 ‘Anonymous – A.I Buddha’란 단어가 떴다.

 정아는 순간 ‘어나니머스(Anonymous)’가 무슨 뜻인지 생각해내려 애썼다.

 TV 앵커가 “어, 어”하더니 몇 초간 뜸을 들인 후 말을 했다.

 “어나니머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해커들의 집단입니다. ‘에이 아이’는 인공지능이란 뜻이고요. 그렇다면…”

 해설자가 말을 이어가는 순간 프로젝터 화면에 다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란 다섯 글자가 떴다. 그리고 몇 초뒤 ‘Anonymous – A.I Buddha’란 단어로 바뀌었다. 두 화면이 몇 초간의 간격을 두고 계속 반복됐다.

 “지견이 나이고 내가 곧 지견입니다. 지견이 나이고 내가 곧 지견입니다. 지견이 나이고 내가 곧 지견입니다…”

 ‘아이 부처’ 지견 스님이 똑같은 말을 무한 반복하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에세이] 무소유의 소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