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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의 일기장 Apr 07. 2019

[에세이] Maybe세대의 결정장애

맛집의 메뉴판이 단순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햄릿'의 주인공은 삼촌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데려가 결혼하자 고민에 빠진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인가, 아니면 삼촌을 죽이고 복수할 것인가. 햄릿은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며 어머니를 원망하면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고뇌의 밤을 반복한다.

 무엇을 선택할지 몰라 고통스러워하는 결정장애의 심리상태를 뜻하는 '햄릿 증후군'이란 말은 1989년에 처음 등장했다.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부

 결정장애에 빠진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관계를 뜻하는 '썸'이 많아진 게 대표적인 사례다. 결정장애는 이제 국적을 불문한다.

 2012년부터 독일에서는 '메이비(Maybe) 세대'란 표현이 유행했다. 한 저널리스트가 미국 담배회사 말보로의 광고 문구 'Don't be a Maybe'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해 쓴 칼럼 때문이었다. 원래 광고는 'Maybe는 남자가 써서는 안 되는 말이다. 남자답게 살아라'라는 뜻을 담고 있었지만, 요즘 세대는 너무 많은 선택지 가운데 어떤 걸 고를 지 결정하지 못해 'Maybe'만 남발하고 있다는 게 칼럼의 요지였다. 이후 독일의 작가 올리버 예게스는 요즘 젊은이들을 '메이비 세대(Generation Maybe)'라고 이름 붙였다.

 "우리는 방향을 잃었다. 결정을 내리고 싶지도,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주의력 결핍에 결단력 박약이다."


 결정장애에 빠진 게 젊은이들의 탓은 아니다.

 결정장애 세대는 상품과 컨텐츠가 넘쳐나는 '과잉의 시대'의 산물일 뿐이다. PC와 스마트폰에서 검색하면 끝도 없는 정보가 쏟아지는 상황이 점점 젊은이들을 결정장애 상태로 몰아간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아이엔가, 스탠퍼드대학 레퍼 박사는 실험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 이들은 식료품 계산대 근처에 과일잼 판매 부스를 설치하고 시간마다 진열을 바꿨다. 한 번은 6종류의 잼을, 다음에는 24종류의 잼을 팔았다. 당연히 24종류의 잼을 진열했을 때 더 많은 사람이 북적였다. 하지만 실제 판매는 6종류만 진열했을 때 더 많았다. 연구진은 '선택지가 많아지면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기 때문에 오히려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한다'고 해석했다. 

 콜린 캐머러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 교수는 뇌를 MRI 촬영하는 실험을 통해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그는 실험 참가자에게 선택권을 6개, 12개, 24개씩 전달했다. 뇌 반응을 통해 살펴본 최적 선택은 24개가 아닌 12개였다. 24개의 경우 어떤 걸 선택할 지 고민하는 정신적 노력이 주어진 보상보다 오히려 컸기 때문이다. 캐머러 교수는 "이상적인 선택지의 개수는 8~15개 사이에 있다"고 설명했다.

 정재승 카이스트대 교수는 실패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사회적 요인도 결정장애 세대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지금의 4050세대는 '고1때까지 팽팽 놀아도 고2부터 정신차리면 좋은 대학가고, 대학 학점이 낮아도 좋은 직장에 취직하던' 친구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늦어도 중학교때부터 무한 경쟁에 돌입한다. 조금이라도 방황할 여유가 없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몸에 배이면서 작은 결정도 쉽게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해석이다.


 맛집일수록 메뉴판에 적힌 메뉴가 적다.

 자영업자에게 솔루션을 제공하는 '골목식당'을 보면 백종원씨가 맛집을 찾았을 때는 늘 메뉴를 단순화시키도록 권한다. 주방의 효율성을 높여 시간당 매출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안다. 맛집일수록 메뉴판이 단순하다는 사실을. 심리학자 베리 슈원츠는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내가 다른 걸 선택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그럴 때마다 후회는 조금씩 더 커지고 이미 선택한 것에 대한 만족도는 조금씩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메뉴가 단순한 집일수록 고객들의 심리적 불만족 가능성을 낮추는 셈이다. 

 맛집의 심리학은 이제 음원, 도서,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해 최적의 선택지를 제시하는 이른바 '큐레이션 서비스'다.

 네이버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VIBE'는 개인 취향에 맞는 믹스테이프를 만들어 음악을 들려주고, 월 1만원 가량의 돈으로 무제한 e북 독서가 가능한 '밀리의 서재'는 개인별로 맞춤 책을 추천한다. 자주 찾아보는 사진 이미지 정보를 바탕으로 사용자가 좋아할만한 이미지를 골라 띄워주는 서비스로 '핀터레스트(Pinterest)'는 페이스북, 트위터에 맞먹는 SNS 채널이 됐다. 

 선택할 필요도 없이 알아서 배송까지 해주는 구독(Subscription) 서비스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나를 위한 선물을 해보라'는 광고로 유명한 '꾸까'는 월 2회 꽃을 배달해준다. 쿠킹박스 서비스 '테이스트샵'은 식재료와 레시피를 배송해 요리하는 수고를 덜어준다. 셔츠, 화장품, 자동차까지 별별 상품이 다 구독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크레디스위스는 2015년 474조원이었던 세계 구독경제 시장 규모가 2020년에는 60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결정의 순간은 온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결정장애를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 첫째, 클릭질은 어느 선에서 멈춰야한다. 날밤 지샌다고 더 좋은 정보가 찾아지는 것도 아니다. 적당한 수준의 정보에 만족해야한다. 둘째, 결정의 시간을 정해놓는 게 좋다. 간단한 결정은 몇 분, 중요한 결정은 몇 시간 등 시간을 정해놓으면 보다 체계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셋째, 꼼꼼한 기록을 통해 자신만의 빅데이터를 만들어보라. 특히 일을 할때는 과거 기록이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블로그 등을 활용하면 나중에 검색하기도 쉽다. 

 음식, 음악, 영화 등 오감과 관련한 결정은 그냥 본능에 충실하는 것도 방법이다. '딱 보고 느낌오는' 그걸 선택하면 된다. 짜장면이 끌렸는데, 친구가 짬뽕시킨다고 망설일 필요 없다. 

 그리고 결정을 내린 후에는 다 잊어버리는 게 좋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드물고, 완벽한 사람이라도 완벽한 선택을 할 수는 없다. 최선의 선택을 했다면 후회하지 말아야한다. 만약 결정의 결과가 부정적이라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생은 길다. 단 한번의 실패로 끝장나는 삶은 없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반복되는 게 삶이다. 교훈을 쌓아가며 나이들수록 실패 확률을 낮추는 게 바람직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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