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탈진중
"잉, 잉"
말똥이가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수유한지도 얼마 안되었고 기저귀도 괜찮았다. 도대체 왜 이러는걸까.
이러저리 둘러보다가 속싸개가 아주 조금 젖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혹시 이것 때문일까?' 새로운 속싸개로 교체를 하니 울음을 그친다.
‘이 정도로 운다고.?’
아이들은 남매둥이였다. 성별이 다른 탓일까? 같은 뱃속에서, 같은 날 태어났지만 서로 달랐다. 사람의 특성을 결정하는데 기질과 성격은 반반이라고 배웠었다. 환경이 다를 수가 없는 쌍둥이. 하지만 태어난지 하루 만에 두 아이의 다른 기질을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들은 대체로 무던했고 딸은 더 예민하고 자주 보챘다.
하루는 정신없이 지나갔다. 나는 끊임없는 두 아이의 세상에 대한 울음에 반응했다. 안아주고, 수유해 주고, 기저귀를 갈았다. 가끔 평화가 찾아오면 보호자 침대에서 정신을 잃고 쪽잠을 잤다.
"오빠, 애들 울어!"
나를 다급히 깨우는 아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때도 있었다. 아내는 힘든 몸을 일으켜 나를 두드려 깨웠다.
아내는 조금씩 기력을 회복해서 도와주기 시작했다. 아직 거동은 하지 못했지만 작은 손길 하나라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날 저녁, 간신히 편의점에 달려가서 음식을 사 왔다. 살기 위해 입안에 욱여넣고 육아를 했다. 둘째 날 밤도 길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울었고 나는 끊임없이 깨야만 했다.
아내는 다행히 회복이 빠른 편이었다. 다른 산모들에 비해 통증도 덜 느꼈고 식사도 잘했다. 다른 산모들이 누워있을 때 아내는 병실을 걷기 시작했다.
수술 2일 뒤 회진 시간. 교수님은 아내의 상태를 살핀 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남편 괜찮아요?"
산모가 아닌 보호자 상태를 걱정해주시다니, 눈물이 났다.
"애들 상태도 좋고 산모도 괜찮은데 일찍 퇴원할까요?"
단순히 상태가 좋아서였을까, 나를 위한 배려였을까, 교수님은 넌지시 퇴원 의사를 물으셨다.
하지만 아내는 병원에 있는 것이 안심이 되었나보다.
"아니오. 불안해서요. 하루 더 있다 갈께요"
'그.. 그래. 불안하면 안되지.' 나는 속으로 몰래 아쉬움을 삼켰다.
열심히 두 아이의 수발을 들던 도중 옆자리 침대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 침대의 부부도 우리와 같은 시기에 출산하고 아기를 돌보고 있던 중이었다.
보호자로 있던 남편이 산모의 어머니와 교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x서방, 고생 많았네. 가서 좀 쉬어.”
“예, 장모님. 가보겠습니다.”
'...? 보호자 교체가.. 가능한 거였어?'
나는 황망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내를 바라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내는 천천히, 그리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오빠가 좋아.“
영화 '엽기적인 그녀' 속 '소나기' 패러디 장면.
전지현은 '자기가 죽거든 사내 애를 같이 묻어달라'는 말을 남겼다.
결국 무덤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차태현이 생각났다.
나도 딱, 그런 느낌이었다.
3박 4일의 입원 기간이 끝나고 퇴원 수속을 밟았다.
친절하고 따뜻하셨던 교수님과 의료진 덕분에, 아내와 두 아이 모두 건강히 퇴원할 수 있었다. 2인실을 사용했는데도 생각보다 의료비가 저렴해 놀랐다. 우리가 받았던 의료진의 노고와 건강보험제도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다시금 들었다.
그와는 별개로, 정말 긴 3박 4일이었다. 그 짧은 기간동안 내 몸무게는 4kg이나 빠져있었다.
원래도 마른 편인 나로서는 충격적인 변화였다. 고생했다. 내 자신.
이제 다음 단계다.
우리는 조리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