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본격적인 시작.
"조리원 있을 때가 좋을 때야."
모두가 입을 모아 추앙하는 그곳에 간다.
아이를 낳기 전 우리는 미리 조리원 예약을 했다.
조리원도 검색하다 보니 천차만별이었다. 고급으로 가자면 끝도 없었다.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내색하진 않았다.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고생해온 아내 모습을 봐온 나로서는 아내에게 선택을 맡기고 싶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내는 실속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약간 낡았지만 저렴하고, 밥은 맛있으며 내 직장과 가까운 적당한 조리원으로 선택했었다.
아내의 선택이 고마웠다.
퇴원수속을 밟은 후 우리는 조리원으로 향했다.
가장 작은 아이들을 태운다는 바구니 카시트를 미리 설치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너무 작아서 바구니 카시트마저 커보여 불안했다.
결국 장인어른과 장모님까지 오셔서 차 두 대로 수송작전을 펼쳤다. 일부러 차량통행이 적은 도로를 골라 살얼음 위를 운전하듯 갔다.
긴장 끝에 무사히 도착한 조리원.
아이들을 맡기고 방을 배정받았다. 창궐하던 코로나 덕에 조리원은 조용했다.
아내와 나는 드디어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출산 전 아내는 모유 수유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모유수유를 하면 마음껏 먹어도 살이 안찐대!"
그렇다. 그녀는 모유수유 다이어트를 꿈꿨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아내는 모유수유가 어려웠고 유축도 잘 되지 않았다.
초유를 먹이고 유축을 몇 번 정도 더 했지만, 양이 적어 결국 분유로 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아쉬워했다. 아이를 안고 직접 모유수유를 하지 못한 아쉬움이었을까? 다이어트를 하지 못해서였을까? 모성애는 후천적으로 생기는 거라고 수십 번 강조했던 아내의 모습을 떠올랐다. 아이를 귀여워하면서도 낯설어하는 것 같아 한편으론 걱정이 되었다.
짧은 출산휴가를 마치고 출근을 했다. 퇴근후에는 조리원에서 아내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유리창 너머로 아이들을 만났다. 천사같이 자고 있는 아이들.
잘 접힌 속싸개 안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있었다.
귀여운 아이들을 보니 행복했다. 고통 없는 쾌락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낮동안 아내는 무료한 일상을 보냈다.
조리원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축소운영되었다. 조리원에서는 다들 동기들과 친해져서 모임도 한다던데 코로나 덕에 대부분 방에만 있는 모습이었다.
아내는 마치 군만두만 먹던 올드보이 최민식처럼 방에서 식사만 하고 TV와 핸드폰만 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아내는 괜히 2주를 계약했다며 투덜댔다.
"시간이 안가. 답답해!"
하지만 나는 푹 쉬며 2주를 보냈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밥을 제때 먹을 수 있다니, 잠을 이렇게 오래 잘 수 있다니!'
시국 때문에 조리원에서 외출도 어려웠다. 하지만 조리원 말미에 우리는 밖에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마지막 자유. 우리는 양꼬치를 먹으며 서로의 노고를 달랬다.
그리고 진짜 육아를 앞두고 동지로서 결의를 다졌다.
2주가 쏜살같이 지나고 퇴소 날이 다가왔다.
아내는 드디어 출소라며 기뻐했다.
이제 진정한 육아의 시작이다.
걱정이 앞섰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우리 가족은 넷이 되어, 정말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