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8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30번 수유, 눈물의 스토리

by 정신과의사 감성돔

아기는 둘이었고 우리는 서툴렀다.

조리원에서 퇴소할 때 우리는 간단한 교육을 받았다.


"아기가 울면 기저귀를 먼저 확인하세요. 그리고 배고픈지 확인하시구요."


우리는 배움을 잘 실천했다.

아이가 울면 기저귀를 확인하고, 배고파 보이면 분유를 만들었다.

그래서 도착한 첫날, 분유를 30번이나 먹였다.

아이들은 분유를 조금씩 밖에 먹지 않았고 먹다 남은 젖병이 식탁 위에 쌓여갔다.

무언가 잘못된 거 같았지만, 어디서부터가 문제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동안에는 누군가가 젖병을 설거지해주었기에 몰랐다.

젖병을 설거지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중노동이라는 것을.

'아이 하나에 젖병 4개. 총 8개면 충분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집에 도착한 첫날, 젖병을 12개 추가 주문했다.


분유를 만들고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우는 아이를 달래고, 누군가는 설거지를 하고 소독을 해야 했다. 트림을 한 건지 헷갈렸고, 일찍 내려놓으면 애써 먹여놓은 분유를 토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아이 둘이 동시에 울면 우리는 한 명씩 안아야 했다. 그럴 때면 모든 집안일은 멈췄다. 청소도, 설거지도 할 수가 없었다.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것은 아이의 요구에 반응해 주는 것이다.

아이의 유일한 의사소통 방법은 우는 것 밖에 없기에 우리는 울음소리에 최선을 다해 응답했다.


입주 산후도우미분을 모셨다. 아이들이 왜 우는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도우미분은 능숙하게 아이를 안았다. 그녀의 품에 안기자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울음을 그쳤다. 육아베테랑은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었다.

낮에는 그럭저럭 버텼지만, 밤이 문제였다. 아이들은 낮, 밤 없이 울었다. 한 명이 울면 다른 한 명이 덩달아 울었다. 첫 며칠간은 모두가 잠을 자지 못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선 어른에게도 수면시간이 있어야 했다. 결국 셋이 근무 시간을 나눴다. 군대에서 불침번을 서듯이 교대시간을 정했다. 교대시간에는 꼭 병동 간호사들이 교대하는 것처럼, 우리는 아이들의 수유량과 배변 상황을 인계했다.


나는 특히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일을 해야 했기에 나는 출근을 했다. 일을 모두 그만둔 아내는 육아만 해야 했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봤다. 나도 아내도 점점 지쳐갔다.


당연히 힘들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힘든지는 몰랐다.

교과서만 봐서는 현실의 고통을 알 수가 없었다.

이론 속에 답이 있을까? 나는 정신과의사로서 알고 있는 몇 가지 이론들을 떠올려 보았다.




생후 한 달도 안 된 아기들. 이 아기들에게는 이론적으로 어떤 도움을 줘야 할까

말러는 생후 첫 1개월을 정상자폐단계로 자기 욕구외에 외부 세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보호자의 애정 어린 보살핌이 필요하다.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에 따르면 만 1세까지 '신뢰 대 불신'의 단계를 거친다. 양육자로부터 일관되고 민감한 보살핌을 받으면 세상이 안전하다는 믿음을 형성한다는 말이다. 애착이론으로 보더라도 안정되고 지속적인 반응과 양육이 중요하다. 울면 달려가 반응하고 배고프면 밥 주고, 안아주고 달래줘야 한다.

한 줄로 요약하면 '나는 죽었다.'라고 생각하고 몸으로 때워야 한다는 것이다.



20210131_140836.jpg 인계 노트. 쌓여가는 젖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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