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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나 Aug 13. 2019

아, 괜찮아요. 혼자 볼게요.

요즘 기업들은 고객에게 '덜' 관심을 가지려 노력중이다

물건을 사러 간 매장에서 너무나도 적극적인 점원의 서비스가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직원이 멀리 떨어져 있을지언정 언제든 부르면 달려올 기세가 부담스럽지는 않았는지. 나를 항상 지켜보고 있는 직원의 관심에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하고 서둘러 쇼핑을 마치고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나 보다. 최근 많은 기업에서 오히려 고객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언택트 마케팅’을 펼치기 시작한 것을 보면 말이다. 



이미 제품에 대한 척척박사라 직원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는 고객들


 지나가는 길에 유튜브의 유명 뷰티 블로거가 극찬한 아이섀도를 파는 매장을 발견했다. 구경이나 할까 싶어 매장에 들어갔다. 찾던 아이섀도를 발견하고 테스트를 해보려는 순간, 직원이 ‘그 제품 찾으셨냐’며 말을 걸어온다. 그러더니 그 아이섀도와 함께 사용하면 예쁠 아이섀도 이것 저것과 립 제품까지 자신의 손등에 테스트해주며 권한다. 아이섀도만 테스트하고 나가려 했는데 아무래도 잘못 걸린 것 같다. 결국 뷰티 블로거가 추천한 아이섀도우 말고도 이 것 저 것을 사게 되었다.   

 당신도 한 번쯤 겪어봤을 터.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직원의 반가운 인사가 영업의 신호탄 같이 느껴진 경험. 예전에는 직원의 해박한 제품 지식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나 언뜻언뜻 흘려주는 세일 정보에 가슴 설레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러한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쌔고 쌨다. 유튜브, 블로그에 제품명을 검색하면 제품 리뷰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고, 심지어 타브랜드 제품과 비교까지 해주니 더할나위 없이 친절한 느낌이다. 매장 직원이 주는 안내보다 훠얼씬 자세하고, 많고, 믿음직스럽다. 이렇게 인터넷으로 제품에 대해 박사 학위를 취득해도 될 정도로 공부하고 매장에 들어서니 직원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을 수 밖에. 심지어 매장 안에서도 궁금한 것은 직원에게 물어보기보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게다가 사람과 말을 나누는 것 자체를 조금 껄끄러워하는 요즘 사람들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4명 중 1명은 면대면으로 대화를 나누거나 전화를 하는 것보다 문자나 메신저를 통한 대화를 더 편안하게 여긴단다. 휴대폰 사용에 길들여진 나머지 대면보다는 메신저나 문자처럼 서로 대면하지않고 소통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그러니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직원과의 대화보다 온라인의 뷰티 블로거 글을 ‘검색’해보는 것을 더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그럼 저희도 관심 끄겠습니다. 언택트 마케팅

 이 때문에 최근 여러 기업에서 고객에게 관심을 덜 갖는 ‘언택트 마케팅 Untact marketing’을 펼치는 추세이다(세상에, 고객에게 관심을 덜 갖는 날이 오다니!). 언택트 마케팅이란 접촉을 뜻하는 ‘콘택트 Contact’에 부정의 의미를 담은 접두사 ‘언 Un’을 붙여 ‘접촉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진 신조어이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고객에게 말을 걸어 상품을 제안해보라고 교육했지만, 요즘 사람들에게 그러한 마케팅 방법이 안 통한다는 것을 안다. 이미 고객은 똑똑하고, 직원과 말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말이다.

 기업들도 오히려 이러한 추세를 반기는 기색이다. 고객과 대면하는 일이 줄기 때문에 고객 안내를 위한 매장 직원 수를 줄일 수 있다. 인건비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는 기업들에는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직원이 해주던 서비스는 첨단 기술이 대신한다. 증강현실을 이용한 가상 피팅 서비스로 어울리는 옷을 골라주고, 인공지능 상담원이 빅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제품을 제안해준다. 결제는 계산원 없이 고객 스스로 상품 바코드를 찍은 후 간편결제 앱으로 마무리한다. 제품을 구매하는데 사람과 접촉할 필요가 없다. 진정한 언택트 시대이다. 



고객에게 관심을 끄는 방법

이니스프리의 '혼자 볼게요'와 '도움이 필요해요' 바구니

 해외의 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한 국내 화장품 로드샵 매장 사진이 화제를 모았다. ‘혼자 볼게요’와 ‘도움이 필요해요’ 바구니 사진이다. 혼자 천천히 구경하고 싶을 경우, ‘혼자 볼게요’ 바구니를, 직원에게 도움받기를 원할 경우, ‘도움이 필요해요’ 바구니를 들면 된다. 쇼핑 바구니에 메시지를 써 놓음으로써 고객이 편하게 매장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하고, 매장 직원도 도움을 원하는 고객에게만 집중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 오히려 매출도, 고객 만족도도 늘었다고 한다. 

 로드샵뿐만이 아니다. 그 친절한 백화점도 언택트 마케팅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롯데, 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에서 매장 직원 대신 ‘쇼핑 도우미 로봇’을 채용했다. 롯데백화점 쇼핑 도우미 로봇인 ‘엘봇’은 고객이 옷을 입은 모습을 가상 피팅기로 보여주기도 하고, 픽업 데스크 이용법을 안내해주기도 한다. 심지어 현대 백화점은 통역이 가능한 안내용 로봇을 채용했다. 국내에 관광을 온 중국인과 일본인 관광객을 잡기 위함이다. 더는 외국어가 가능한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하기 위해 안간힘을 힘쓰지 않아도 된다.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언택트 마케팅은 바로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서비스 ‘아마존’에서 오픈한 식품매장 ‘아마존 고 Amazon Go’이다. 아마존 고는 술을 살 때 신분증을 확인하는 직원과 신선식품 조리, 재고를 관리하는 직원 등을 빼고는 계산대에도, 시식코너에도 직원이 없다. 고객들은 스마트폰에 앱을 내려받고 매장에 들어가 상품을 골라 그대로 매장을 나오기만 하면 된다. 나중에 보면 앱에 연결된 신용카드로 자동 청구되어 있다. 매장에 있는 CCTV, 카메라 센서 등 첨단 기술로 고객이 어떤 상품을 가지고 나왔는지 귀신같이 체크한다. 

스타벅스는 이미 ‘사이렌 오더 Siren Order’로 언택트 마케팅을 펼친지 오래이다. 모바일 앱으로 원하는 음료를 선택해 주문과 결제를 하면 매장에서 음료만 찾아가면 된다. 주문하려고 줄을 서거나 매장 직원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된다. 2014년 한국에서 개발된 서비스인 사이렌 오더는 그 성공에 힘입어 미국까지 진출했다. 언택트 마케팅의 선진국이다.

 언택트 마케팅이 제일 반가운 곳은 바로 ‘택시’이다. 타자마자 호구조사를 시작하는 다른 택시와 달리 택시 서비스 ‘타다'는 기본적으로 손님이 먼저 말을 걸기 전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목적지도 타기 전에 이미 앱으로 지정해놓은 상태라 어디로 가달라고 말할 필요도 없고, 결제도 앱에 연결된 카드로 진행되어 정말 타고 내리기만 하면 된다. 기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데 오히려 친절한 느낌이다. 이제 더는 음악을 듣지도 않는 데 이어폰을 꽂지 않아도 된다. 



무관심을 친절이라 생각하는 요즘 사람들


기업이 고객과 만나는 15초 동안이 고객을 평생 단골로 만들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진실의 순간(MOT/Moment of Truth)’이다.

- 스칸디나비아 항공 사장, 킨 얀 칼슨 Jan Carlzon


 마케팅 교과서에도 나오는 기법인 MOT는 브랜드와 기업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고객이 제품/서비스에 접촉하는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특히나 오프라인 매장 위주인 유통 업계에서는 MOT를 만들 수 있는 이들이 주로 매장 직원이기 때문에 최대한 고객에게 먼저, 자주 접근해 제품에 대한 설명과 권유를 하라고 교육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요즘 사람들은 오히려 무관심을 친절하다고 생각한다. 매장에서 혼자 물건을 골라 계산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인터넷에 검색하거나 매장 내에 있는 로봇에게 물어본다. 직원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도움을 요청하는 고객만 응대 한다. 그런데도 오히려 고객의 만족도가 점점 높아진다.‘불편한 소통’ 대신 ‘편리한 단절’을 선택하며 조용한 소비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무조건적으로 도와주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원할 때 도와주는 ‘선택적 친절함'을 원하는 시대이다. 




참고문헌

경향신문, “웬만하면 말 걸지 맙시다”…‘언택트 마케팅’ 뜨는 이유. 2017.12.0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712030857011

매일경제, 퍼져가는 `언택트(untact) 마케팅`-`혼자 볼게요” 대세…무인주문·결제 봇물. 2019.03.25

https://www.mk.co.kr/news/business/view/2019/03/178377/

Adobe Digital Dialogue. 접촉 없는 ‘언택트 마케팅’이 뜬다!

https://blogs.adobe.com/digitaldialogue/customer-experience-ko/booming-un-tact-marketing/

두산백과, MOT 마케팅.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398021&cid=40942&categoryId=31915 


방위사업청 사보 '청아람 96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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