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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나 Aug 13. 2019

3억원을 쾌척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비밀

그들은 무엇을 믿고 십시일반 돈을 보냈을까?

강원도 산불이 일어나자마자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하루 만에 3억 원을 모아 기부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 커뮤니티뿐만이 아니었다. 대통령 팬카페에서도 3억 원을, 방탄소년단과 엑소 팬카페에서도 1억 원 가까이 모금해 기부했다. 대기업에서나 할법한 일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해낸 것이다. 어떻게 오프라인에서도 하기 어려운 일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해냈을까? 무엇이 이들을 결집시켰을까?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길, 온라인 커뮤니티


온라인 커뮤니티 '소울드레서'에서 3억원을 쾌척했다

지난 4월, 강원도 고성에서 큰불이 일어났다. 한 주유소 맞은편 변압기에서 시작된 불은 바짝 마른 숲으로 옮겨붙었고, 순식간에 시내까지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재난 영화로만 보던 상황이 실제로 펼쳐진 것이다. 소방청은 최고 수준의 화재 대응을 발령 내렸고, 전국의 소방차를 강원도로 불러모았다. 강한 바람 탓에 진압이 쉽지는 않았지만, 국가 차원의 일사불란한 대응으로 11시간 만에 불길이 잡혔다. 하지만 워낙 화재 규모가 컸던지라 그 피해가 만만치 않았다. 한 달이 지난 아직도 1,200명이 넘는 이재민이 집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고, 2,000억 원 이상의 피해액이 발생했다. 그래도 다행히 곳곳에서 온정의 손길이 더해졌다. 민간 기업은 물론이고, 공공 기관, 시민, 종교 단체, 연예계까지 기부 행렬이 이어졌고, 연신 언론에 기부 내용이 보도되었다.

그 와중에 눈에 띄는 기부 기사가 있었다. 바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기부였다. 대기업에서나 했을 법한 금액인 3억 원을 하루 만에 모금해 기부한 것이다. 산불이 발생하자마자 해당 커뮤니티의 운영진들이 모금 계좌를 열었고, 커뮤니티 일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기부금을 보냈다. 모금을 시작한 지 5시간 만에 1억 원을, 14시간 만에 2억 원을 돌파했다. 커뮤니티 일원들은 운영진으로부터 모금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받으며 ‘아이유드레서(가수 아이유가 기부한 금액인 1억 원을 넘어선 것을 빗댄 용어)’, ‘신한드레서(신한금융지주에서 기부한 금액인 2억 원을 넘어선 것을 빗댄 용어)’라며 모금을 파티처럼 즐기고 자축했다. 3억 원을 달성하자마자 운영진은 바로 모금 통장을 닫아버렸고, 다음날 바로 기부금을 재난구호협회에 전달했다. 게다가 원하는 사람에게 기부금 영수증까지 발급해주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기부였다. 사실 이들의 선한 영향력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5천여만 원을 모금해 기부했고, 구제역 때는 심지어 송아지를 기부했다. 도대체 이들의 화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어떻게 오프라인에서도 하기 어려운 일들을 이들이 해내는 것일까?



온라인 커뮤니티 멤버들 사이의 관계 비결


예전에는 물리적인 공간이 있어야 사람이 모였고,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학교를 다녀야 친구를 사귈 수 있었고, 같은 동네에서 살아야 이웃과 친해질 수 있었다. 사실 바로 친해지는 것도 아니다. 계속해서 만나고, 대화를 나눠야 슬며시 이 사람의 성격, 취향, 가치관 등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만큼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다해 공들여도 친해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온라인에서 나의 관심사나 취향에 따라 관계를 ‘선택’ 한다. 당연히 더 쉽고 빠르게 친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낄수록 더 쉽게 친해지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유사성의 요인 Principle of Similarity’라 부르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사회 심리학자 페스팅거가 이를 실험으로 증명하기도 했다. 6개월간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관계를 맺는 과정을 관찰해보니 처음에는 방이 가까운 학생들끼리 친해지는 듯 보였지만, 점차 태도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끼리 그룹을 만들기 시작했단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유유상종’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이는 자기 생각과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생각이 같거나 비슷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기 생각과 선택이 옳았다고 안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옳았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려 한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생각과 선택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이 때문에 자신과 같은 결정을 내린 사람들을 더 좋아하고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온라인 커뮤니티는 시작부터 플러스 점수를 얻고 가는 관계이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였으니 자연스레 상대방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비록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을지언정 항상 이해받는 관계인 것이다.



이들의 관계가 피보다 진해진 이유


비슷한 취향과 관심으로 친해지기 쉬운 조건이랄지도 아직 3억 원의 화력을 보이기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알게 모르게 이들의 관계의 끈끈함을 더하는 여러 장치가 있다. 바로 가입부터 시작이다.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는 가입 조건을 까다롭게 해 이를 통과한 자들에게 로열티를 선사한다. 2000년 이후 출생자만 가입할 수 있다거나, 매달 1일 저녁 8시부터 2분간만 가입을 받거나, 댓글을 300개 이상 달아야 가입할 수 있는 등 높은 허들이 존재한다. 회원이 된 것만으로도 커뮤니티의 충성심이 높아지고, 멤버로서의 로열티가 저절로 생긴다. 이러한 회원가입의 까다로움이 오히려 커뮤니티 멤버들에게 ‘우리들끼리의 공간’이라는 소속감을 더하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할 수 있다는 점 또한 그들 사이를 떼어놓을 수 없게 만든다. 우체국에서 번호표를 뽑고 내 번호가 불릴 때까지 기다릴 때도, 커피숍에서 주문한 커피가 나오는 순간에도, 심지어 화장실에 간 친구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해 커뮤니티 멤버들과 만난다. 다른 사람들이 올린 이야기를 읽고, 공감하며, 댓글을 달아 살금살금 관계를 쌓아 나간다. 심지어 친구보다, 가족보다 더 자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렇게 그들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자주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점점 커뮤니티에 몰입해간다.

더군다나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존재하는 나름의 규칙과 문화는 그들 사이의 끈끈함을 더한다. 특유의 말투를 사용하거나, 커뮤니티 멤버들만 아는 은어를 말하기도 하며, 심지어 커뮤니티 내에서 일어난 사건·사고를 회상하며 추억하기도 한다. 커뮤니티마다 공유하는 가치관도 다르다. 이 때문에 같은 글을 올려도 커뮤니티마다 다른 반응이 나온다. 그래서 ‘어느 커뮤니티’ 출신인지에 따라 상대방의 가치관을 판단하기도 한다. 이렇게 커뮤니티 멤버들은 그 특유 문화에 젖어 들면서 소속감과 서로 간의 동지애를 더해간다. 

가입부터 커뮤니티 로열티를 더해준 데다가 자주 만나고, 추억거리도 있으니 서로 간의 끈끈함이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가 없다. 심지어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한 유저가 ‘저 암이래요’라며 작별을 고하는 글을 올리자 다른 멤버들이 수술비를 모금해 전달한 덕분에 완치한 일화도 있다. 내 커뮤니티 멤버가 도움을 요청하면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우며, 이후 소식을 궁금해한다. 보이지 않지만 피보다 진한 우정이다.



보이지 않는 관계가 더 끈끈한 요즘 시대


관계를 맺는 방법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한 공간에 모여 시간을 들이고 숙성시켜 관계를 형성했다면, 요즘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선택한다. 끼리끼리 모인 그들은 서로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와 무한 신뢰로 정을 쌓는다.

얼굴 한번 본 적 없이 얼마나 친해지겠나 생각하겠지만 그들의 끈끈함은 당신의 상상 이상이다. 오프라인에서 만난 친구보다 더 자주 만나고, 나름의 추억 속에 진한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게다가 커뮤니티 로열티와 그들만의 문화에 젖어 들어 생겨난 소속감이 그들의 화력을 무서울 정도로 키운다. 그리고 그 화력은 오프라인까지 강력하게 영향력을 미친다.

더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화력에 놀라지 말자. 예전처럼 오프라인에서만 관계를 맺고, 큰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시대가 아니다. 온라인의 보이지 않는 관계가 더 끈끈하고, 단단한 시대이다. 




참고문헌


국민일보, 2019. 04. 06. 여성카페가 강원산불 모금 5시간 만에 모은 돈.

김유정 (2005). 인터넷 연구를 위한 심리학적 접근. 정보화정책, 12(1). 

류석진, 조희정, 이헌아. 공동체의 오늘, 온라인 커뮤니티. 미래인.

Festinger, L., Schachter, S., & Bach, K. (1950). Social pressures in informal groups. New York: Harper.


우체국 사보 '우체국과 사람들 6월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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