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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나 Aug 13. 2019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의 '뇌'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의 '뇌'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의 뇌는 늘 ‘처리 중’인 상태이다. 쉴새없이 인터넷에 접속해 다양한 정보를 확인하는 것에 더해 원하던 원치않던 나를 둘러싼 주변에서 주어지는 자극을 처리하느라 바쁘다. 나의 눈, 코, 입, 귀, 피부는 물론, 뇌까지 지쳐가는 중이다. 오죽하면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할까. 쌓여가기만 하는 피로를 풀고 싶은 요즘 사람들이 쉴만한 물가를 찾아 헤매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오직 한 가지 일만 집중한다는 건 기적이다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면서도 중간중간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을 확인하는 우리.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있을 때도 친구 A와 카톡을 하다가 B와 문자를 보내고, 웹툰을 보다가 쇼핑몰을 구경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일하다가도, TV를 보다가도, 화장실에서도, 심지어 운전하는 와중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새로 고침을 누르며 정보를 확인한다. 오죽하면 2011년 미국인이 하루에 처리하는 정보량이 30년 전인 1981년에 비해 다섯 배나 증가했단다. 통계상으로 드러날 정도로 요즘 사람들의 뇌가 처리하는 정보량은 상상 이상이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자극은 또 어떻고. 밤거리의 현란한 네온사인과 매장마다 크게 틀어놓은 음악 소리가 머릿속으로 강제 진입하고, 샘플이라며 뿌려주는 진한 향수 냄새가 코를 아찔하게 한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양한 자극이 대량 생산되어 눈, 코, 입, 귀, 피부로 떠밀려온다.  

이처럼 24시간, 365일 끊임없이 들어오는 정보를 요즘 사람들은 멀티태스킹으로 능숙하게 처리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인간이라는 동물은 멀티태스킹에 능한 존재가 아니다. 말이 멀티태스킹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멀티태스킹처럼 다양한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을 처리하다가 빠르게 다른 일로 전환하는 뇌의 속임일 뿐이다. 게다가 빠른 일 전환을 하려면 자연스레 인지적 비용이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멀티태스킹을 하면 할수록 중요한 정보를 식별하는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2013년 미국 유타대학교의 데이비드 스트레이어 교수 연구진은 학부생 310명을 대상으로 멀티태스킹 능력을 실험했다. 그랬더니 ‘멀티태스킹에 소질이 있다’고 대답한 70퍼센트의 학생 대부분이 평균 이하의 처리 능력을 보였다. 오히려 그들은 낮은 집중력과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 때문에 한 가지 일을 오래하지 못했다. 관심이 자주 바뀌는 것을 멀티태스킹을 잘한다고 오해한 것이었다. 멀티태스킹 능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참가자는 오히려 한 가지 일에 끈기있게 매달리는 사람들이었다. 

멀티태스킹은 뇌의 감정 조절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멀티태스킹을 하는 동안 받는 끊임없는 자극이 인지 기능과 감정 조절 기능을 담당하는 회백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정신없는 시대에 우리의 머리와 마음 모두가 지쳐가고 있다.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우리는 항상 이런 상태 아닐까?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안 하고 싶다.’ 카드사 광고 카피로 쓰일 정도로 유명해진 이 인터넷 유행어는 정말 손하나 까딱 안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쓰인다. 오죽하면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을까.

 그만큼 우리는 요즘 세상에 시달리고 있다. 업데이트된 정보를 시시각각 체크하고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눈, 코, 입, 귀, 촉각 모두를 활짝 열어놓은 채, 항상 무언가 ‘처리 중’인 상태로 지낸다. 심지어 새로운 정보를 확인하는 순간, 우리의 뇌에서는 도파민 호르몬이 분비되어 흥분을 느낀다. 도파민으로 인한 흥분이 가라앉으면 지루함이 밀려와 금세 금단증세가 생겨 정보에 대한 거짓 갈증을 느끼며 또다시 ‘새로 고침’을 누른다. 우리의 뇌는 아직도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보낸 선사시대의 수렵, 채집 생활에 머물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기까지 아직 천년만년이 필요한데, 이놈의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 덕분에 뇌가 처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처리해내야만 한다.  

사실 우리의 뇌가 한 번에 저장하고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제한되어 있다. 항상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일이 더 많으면 문제가 생긴다. 문제는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어 너무 많은 정보가 제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요령 있게 정보를 잘 처리하는 우리 뇌, 하지만 끊임없이 생산되는 정보와 휘황찬란한 정보의 홍수 속에 현대인의 뇌는 휴식을 원하고 있다. 



우리도 싸움을 쉴 장소가 필요하다


케렌시아는 투우장에서 싸움소가 본능적으로 집으로 삼는 장소로, 싸움소는 그곳에서 어떤 것도 침범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든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오후의 죽음’


투우장의 싸움소처럼 생사를 가를 급은 아니지만, 요즘 사람들도 외부와 차단되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자신만의 케렌시아 Querencia를 마련한다. 거실을 카페처럼 꾸미기도 하고, 완전히 숨겨진 방을 만들어 조용하게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도 한다. 집뿐만이 아니다. 카페, 취미 공방, 수면 카페, 요가원 등 몸과 마음을 편히 놓을 수 있는 단골집을 찾는다. 이러한 요즘 사람들의 특성에 점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돕는 공간 비즈니스보다는 개인적 안정감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독립된 공간 서비스가 늘어난다. 

휴가마저도 어디론가 멀리 떠나기보다 집에 머물거나, 가까운 곳에서 휴식을 즐기는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을 선택한다. 옛날 같으면 ‘방콕’ 이라며 방에 처박혀 혼자 휴가를 즐긴다고 했겠으나, 이제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라는 요즘 사람들의 대세 휴가 방법으로 자리잡았다. ‘더 격렬하게’ 느리게,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단계로 진화한 것이다.



잠시 뇌를 끄겠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잠시라도 디지털 세상과 떨어지기 위해 외부로부터 차단될 수 있는 격리된 공간을 찾아 헤맨다. 이들을 위해 독일의 한 호텔은 ‘궁극의 럭셔리’라는 작은 스위치를 침대 옆에 부착했다. 이 스위치를 누르면 그 즉시 무선 인터넷이 차단된다. 독일뿐만이 아니다. 아일랜드의 한 호텔은 한술 더 떠 투숙하는 동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아예 금고에 넣고 잠그도록 한다. 혹시나 심심할까 걱정하지 말라. 투숙객들을 위해 각종 보드게임 도구와 나무 심기 키트, 숙소 주변 산책 할만한 곳을 안내하는 종이 지도까지 준비해두었다. 스마트폰만 없을 뿐 즐길 것은 많다.

굳이 특정 공간을 찾아 헤매지 않고도 디지털 세상에서 벗어날 방법은 있다. 스마트폰의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서비스를 이용해 인터넷 세상으로부터 차단당하면 된다. ‘소셜 네트워크 리미터Social Network Limiter’ 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의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앱이다. 접속 시간을 초과할 경우 아예 인터넷을 차단해버려 더 들어갈 수 없게 해버린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사용을 줄이고 싶지만, 의지가 약해 자꾸 스마트폰에 손을 뻗는 사용자들을 위한 디지털 디톡스 보조제이다. 

스마트하기를 거부하는 휴대폰인 ‘라이트 폰’도 등장했다. 라이트 폰은 연결이 아니라 단절을 지향한다. 정말 급할 때를 대비해 전화 통화는 할 수 있지만 그 외에 문자나 SNS는 아예 사용할 수 없다. 불편할 것 같지만 오히려 복잡한 디지털 세상에서 멀리 떠나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쉴만한 물가를 찾아 헤매는 요즘 사람들

우리의 뇌에도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 목욕탕에 앉아 멍 때리며 사우나를 즐기던 아르키메데스도, 사과나무 아래서 멍 때리던 뉴턴도 뇌가 휴식하는 순간에 놀라운 발견을 하지 않았던가? 실제로 워싱턴대학교의 신경학과 교수인 마커스 레이클은 종종 우리의 뇌가 ‘초기화’ 를 위해 멍 때리기를 펼친다는 것을 밝혀냈다. 멍 때릴 때 오히려 활성화되는 뇌의 부분에서 멍 때리는 동안 불필요한 정보를 정리하여 저장 공간을 늘린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레이클 교수는 만약 사람들이 전혀 멍 때리지 않으면, 불필요한 정보를 정리하지 못하고, 뇌의 저장 공간이 줄어 결국 기억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기술의 발전이 우리에게 ‘정보 처리’라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노동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멀티태스킹’을 펼친다. 하지만 멀티태스킹에 적합하게 태어나지는 못한 탓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인 디지털 시대의 뇌는 지칠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일하느라 피로한 우리의 뇌는, 복잡하고 디지털화된 현실을 벗어나 낭만적 세상으로의 도피를 꿈꾸고 있다. 




참고

강한나, 김보름. 마이크로 트렌드 심리학. 미래의 창.

The Science Times, 2013. 02. 14. 멀티태스킹 강자? 대부분 거짓말.

뉴스페이퍼, 2019. 07. 09. 나 홀로 즐기는 휴식 ‘케렌시아’ 즐기는 ‘홈루덴스’족 뜬다

비즈니스포스트, 2015. 07. 24. 여름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 ‘스테케이션’ 인기

과학동아, 2012. 7. 잡생각 많은 당신, 걱정하지 마세요

소셜 네트워크 리미터. http://socialnetworklimiter.com/


우체국 사보 '우체국과 사람들 8월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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