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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나 May 21. 2019

이기적인 기부, 퍼네이션 Funation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기부할 수 있는 방법


설마 어디에 기부금을 전달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기부한 돈이 혹시라도 엉뚱한 곳에 쓰일까봐 기부를 망설이고 있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보자. 불우한 이웃에게 기부할 돈으로 ‘내가’ 맛있는 것을 먹고, ‘내가’ 즐겁고 싶은 것은 아닌지. 이러한 당신을 위해 새로운 기부 방식을 준비했다. 바로 ‘퍼네이션 Funation’이다. 



아프리카 어린이의 눈망울이 부담스러워요

 세상 곳곳에는 아직도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케이블 방송을 보면 광고에 연달아 큰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고인 아프리카 어린이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병원에서 힘겹게 숨 쉬는 환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줄을 잇는다. 광고가 모두 엇비슷해 어느 단체 광고인지 기억도 안 나는 것이 함정이지만, 모두 한 번만 커피를 안 마시면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기부하지 않는 내가 야박한 사람인 것처럼 죄책감을 느껴진다.  

 하지만 나도 ‘불우한 이웃’이긴 마찬가지란 말이다. 온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다가 겨우 커피 한 잔 마시려 하는데 그 커피값 아껴 남을 위해 ‘착한 마음’으로 희생하라고 하니. 어디 남을 위한 ‘착한 마음’이 나를 위한 ‘착한 마음’보다 커지기가 쉽나. 게다가 가끔 들려오는 기부금 횡령 사건 소식에 의구심이 끊이질 않는다. 기부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자선 단체를 통한 후원 방식인데 이러한 뉴스가 들려올 때마다 후원 신청을 망설이게 된다. 선한 마음을 가지기가 이렇게나 어렵다니.

 부끄러운 이 마음을 숨기고 있었는데 ‘기부포비아’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부’와 공포증을 뜻하는 ‘포비아 Phobia’의 합성어로 기부를 꺼려하는 마음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나보다. 통계청의 조사에서도 기부포비아가 여실히 들어난다. 한해 동안 `기부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2011년 36.4%에서 2017년 26.7%로 뚝 떨어졌다. 이러한 사회 인식에 매년 연말 시내 곳곳에 종소리와 함께 있는 구세군 냄비에도 예년만큼 기부금이 가득하지 않고, 광화문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도 따뜻하지 않았다.



놀아라! 쇼핑하라! 그들도 함께 웃을지니, 퍼네이션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읽었는지 기부의 새로운 방식이 등장했다. 바로 ‘퍼네이션 Funation’이다. 퍼네이션이란 재미 Fun와 기부 Donation의 합성어로 번거롭고, 부담스러운 기부가 아닌 쉽고, 재미있는 기부 방식이다. 기부자가 부담스러운 마음을 갖기는 커녕 기부가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만든다. 

 특히 퍼네이션은 ‘얼마’를 기부하는가’보다는 ‘어떻게 기부할까’에 초점을 둔다. 기부의 결과에서 오는 뿌듯함보다 기부의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즐거움을 통해 ‘기부’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을 덜어내고, 기부 행위에 대한 장벽을 낮춰 나도 모르게 기부하게 만든다. 게으른 나의 착한 마음을 위한 기부 방식이다.


내가 즐거웠는데 나도 모르게 기부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가고 싶은 제주도에 그 잘생긴 배우 유연석과 손호준이 직접 커피를 내리고 음식을 만들어주는 카페가 생겼단다. 심지어 음식값도 정해져 있지 않다. 비행기 티켓을 끊기 일보 직전, 케이블방송 tvN의 ‘커피 프렌즈’에서 퍼네이션을 위해 일시적으로 운영한 카페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훈훈함에 취해 나도 모르게 한 기부금이 이 만큼이나 모였다

 ‘커피 프렌즈’는 배우들이 직접 카페를 운영하며, 특별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고, 서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퍼네이션 예능 방송이다. 물론 그들의 얼굴만 봐도 즐겁지만, 그들의 훈훈함에 취해 흔쾌히 기부금을 투척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훈훈해지는 방송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주연 배우였던 유연석도 늘 마시는 커피 한 잔으로 즐겁게 기부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유연석과 손호준의 얼굴을 보면 기부금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오를새도 없이 자연스레 지갑에서 꺼내게 될 것 같다.

 커피 프렌즈가 아니더라도 이미 여러 프로그램에서 퍼네이션이 등장해 익숙하게 다가온다. MBC 간판 예능인 ‘무한도전’과 ‘나 혼자 산다’에서는 매년 직접 촬영·제작한 달력을 판매해 기부금을 모집한다. 이를 사는 사람들은 특별히 ‘기부를 한다’는 마음가짐보다는 방송에 나온 달력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구입한다. 이러한 마음을 알게 모르게 모아 MBC는 여태까지 총 63억원이나 기부했다.

수지와 마리몬드 / 품절 사태를 일으켰다

 연예인의 공항 패션 아이템을 따라 사는 바람에 기부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바로 ‘마리몬드’다. 휴대폰 케이스와 에코백 등 패션잡화를 판매하는 브랜드인데, 제품 판매 수익금 중 일부를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기부한다. 이 때문에 누군가 ‘I MARYMOND YOU’가 새겨진 상품을 지니고 있는 것만을 보고도 사람들이 그 착한 마음을 읽는다. 


SNS에서 자랑했는데 나도 모르게 기부하고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이야기하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익숙하다. 그래서 퍼네이션도 온라인을 적극 이용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이스버킷 챌린지’이다. 루게릭 환자들을 위한 기부 릴레이로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인증 영상과 함께 다른 사람을 지목하면, 그들도 똑같이 얼음물을 뒤집어 쓰는 영상을 올리거나 100달러를 기부하는 방식이다. 일반인들은 물론 빌 게이츠, 팀 쿡 같은 유명인들도 루게릭 환자들을 위한 운동에 참여하고자 자기 머리 위에 얼음물을 통째로 쏟는 것을 감수했다. 덕분에 전무후무한 기부금이 모였다.


청소 Before-After 인증샷을 찍는 #trashtag

 아이스버킷 챌린지 이후 온라인에서 기부가 또 하나의 트렌디한 놀이로 자리 잡았다. 요즘에는 산, 바다 등 쓰레기가 가득한 곳의 청소 하기 전과 직접 청소한 후의 비교 사진을 올리는 ‘트래시태그 #trashtag 챌린지’가 유행이다. 이미 7만 3천 건의 해시태그가 생겨날 정도로 인기다. 쉽고 간단하면서 보람도 느낄 수 있으니 전세계가 청소에 쓰레기 치우기에 열광이다. 

해시태그로 헤어스타일을 완성해주는 #Hair Tag Project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을 잃거나 삭발을 한 여성 암환자들에게 해시태그로 멋진 헤어스타일을 완성해주는 #Hair Tag Project도 센세이션이었다. 머리카 락을 잃은 여성들의 사진에 여러 친구들을 태그해 마치 그녀의 머리카락인 듯한 모양을 만들어주면 된다. 헤어스타일이 완성되면 여성 암환자에게 실제 로 가발을 선물한다. 캠페인 기간동안 600kg이 넘는 머리카락 기부 성과를 달성했다. 금전적으로 따로 모금하지 않고, 인스타그램의 해시태그 기능만 이용했는데 말이다.



기부는 아무쪼록 즐겁다

 기부. 나의 가진 것을 희생해 어려운 이웃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의 일부라도 그들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나보다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착한 마음’이다. 그러나 ‘착한 사람 코스프레’는 오래가지 않는다. 기부포비아가 등장한 이유는 기부자의 물질적, 시간적 희생이 있어야만 기부가 가능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퍼네이션은 기꺼이 나눔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 방법을 몰랐던 사람들이나 기존의 기부 방식에 회의를 느낀 사람들이 기부에 좀 더 편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주로 즐기 수 있는 것들을 이용한다. 기부를 하나의 ‘놀이’로 인식하게 한다. 

 이러한 퍼네이션에 맛들린 요즘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올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기부를 공유하기도 한다. 기부 행위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 자신이 기부하고 있음을 인증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는 ‘스펜트 Spent’라는 책을 통해 사람들의 ‘기부’가 다른 사람을 위하며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결국 자신의 사회적 평판을 획득하기 위해 돕는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온라인으로 옮겨간 퍼네이션은 그러한 의미에서 기부자의 ‘이기주의’를 돕는다.

 어찌 됐든 즐겨라!  당신의 욕구를 막을 생각은 없다. 당신이 즐기는 만큼 불우한 이웃들도 춤출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서비스들이 속속들이 당신의 ‘착한 마음’을 도울 것이다.



<참고문헌>

월드미터. https://www.worldometers.info/

WEUS. [새로운 기부문화 ①] 퍼네이션, 기부를 즐기다. 2018. 07. 03         

WEUS. [새로운 기부문화 ③] 퍼네이션일까 슬랙티비즘일까…新기부문화 바라보는 상반된 시선. 2018. 07. 03

한국일보. 주머니 가볍지만 착한 지출엔 기꺼이… 청년들의 ‘소신 소비’. 2019. 03. 16

제프리 밀러. 스펜트. 동녘사이언스.



방위청 사보 '청아람 95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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