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중부유럽 여행기-2. 한국은 한밤중이지만 부다페스트는 대낮이다.
2. 한국은 한밤중이지만 부다페스트는 대낮이다.
비행기에서 빠르게 내려 입국심사장으로 이동했다. 검색을 통해 한국여권 소지자는 자동출입국 시스템으로 입국심사가 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권에 도장을 받고 싶은 마음에 줄을 섰다. 자동출입국 줄에 아무도 서지 않자 공항 직원이 우리 쪽으로 와서 자동출입국 쪽으로 가도 된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니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 자동출입국 줄로 들어갔다. 여권을 스캔하고 나오니 직원이 한 번 더 확인하고 도장을 쾅!
짐을 빠르게 찾고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했다.
실외로 나오니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오후 5시였지만 해는 높이 솟아 있어 유럽에 왔다는 게 실감 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미리 설치한 부다페스트GO 어플을 통해 공항버스 티켓을 구입하고 난 후 공항버스를 타고 부다페스트 시내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어느 정도 지나니 건물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서유럽의 모습들과는 조금 다른 어렸을 때 TV로 보던 공산권 유럽의 삭막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부다페스트의 중심부로 들어오니 활기찬 모습만 가득했다.
데악 페렌츠 광장(Deák Ferenc tér)에 내려 패션 스트리트를 지나 숙소로 향했다. 이번 부다페스트에서는 야경이 중요했기 때문에 도나우 강 바로 앞 '부다페스트 메리어트 호텔'의 부다왕궁이 보이는 방으로 숙소를 잡았다. 체크인을 하며 직원과 간단한 스몰토크를 하는데, 스몰토크 끝에서 직원이 부다왕궁이 보이는 좋은 방으로 준비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방이 업그레이드되었나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숙소로 들어갔지만 우리가 예약한 그 방이었다. 괜히 설렜네.
여행의 첫날, 호텔방에서만 있을 수는 없기에 간단히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숙소를 나섰다. 도나우 강을 옆에 두고 천천히 산책하고 어부의 요새에 가서 야경을 보고 오는 것이 목표였다. 숙소를 나오니 도나우 강과 노란 트램 그리고 건물들이 만들어 내는 부다페스트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세체니 다리를 건너 부다페스트 야경의 중심 국회의사당 건너편으로 향했다. 토요일 저녁이어서 그런지 관광객뿐만 아니라 헝가리 사람들도 곳곳에 앉아 햇살과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국회의사당이 바로 보이는 곳에 앉아 그 풍경을 그대로 느꼈다. 평화로웠다.
설렘과 행복함 그리고 평화로움이 가득했지만, 시차로 인한 피곤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야경을 포기할 수는 없어 졸음을 참으며 기다렸다. 일몰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노을이 남아있고, 국회의사당의 불빛도 켜지기 전이라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궁금해하던 찰나,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우르르 내리는 것을 보고 '이제 곧 켜지겠구나'하는 희망이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9시가 되자 하나 둘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고 저녁 어스름과 불 켜진 국회의사당이 만나 아름다운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뽐내기 시작했다. '우와'하는 감탄사만 가득한 상태에서 야경을 감상했다. 부다페스트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국회의사당을 뒤로하고 천천히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피곤함 이슈로 인해 어부의 요새는 내일을 기약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주황빛으로 가득한 도나우 강, 세체니 다리, 부다 왕궁을 보며 낮과는 다른 따듯한 부다페스트를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부다페스트는 야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