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1
철사 끝에 꽃불이 피어오른다.
이리저리 휘두르면 허공 위에 잔상이 남고, 얼마 못 가 사라져 버린다.
자기가 죽는 길인줄도 모르고 바쁘게 타오르는 불꽃,
점멸하다 한순간 끝나버리는 여름밤의 불꽃이 눈물 날 것처럼 아름다워서,
나는 사람들이 폭죽을 태우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곤 했다.
할머니는 동해 바닷가에서 폭죽 장사를 하셨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아빠는 돈을 버느라 여러 지역을 전전했다.
이 모습이 아이의 정서에 안 좋다고 생각하셨던 할머니가 여섯 살 때부터 나를 데려와 키우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지만,
할머니가 해주시는 이야기들로 할아버지의 대부분을 알 수 있었다.
특히나 내 짙은 눈썹이 할아버지를 꼭 빼닮았다는 얘기를 질리지도 않고 매번 하셨다.
할머니의 수레 안에는 갖가지 폭죽들을 담겨져 있었다.
'스파클라'라는 이름의 철사로 된 폭죽이 제일 잘 팔렸고,
하늘로 불꽃을 쏘아 올리는 막대형 폭죽인 '로망캔들'도 많이 팔렸다.
사람들은 항상 폭죽을 모래에 꽂아두고 터트렸는데,
나는 왜인지 모르게 폭죽이 그곳에 꽂히길 결심해서 꽂힌 거라고 생각했다.
폭죽이 온갖 색을 내뿜으며 터질 때에는 그 주변에 행복만이 가득했다.
마치 행복을 뿜어내는 것처럼 환하고 아름다운 모습들.
그리고 모든 행복을 소진하고 나면, 사람들은 사라지고 공허함만이 남는다.
그 공허함은 대개 나의 몫이었고, 그즈음에 공허함이 실은 울림이 크단 것을 알았다.
폭죽의 폭음 따위보다 훨씬 더.
그렇게 나는 장사를 하시느라 바쁘신 할머니의 소홀한 사랑과 모래사장의 공허함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설렘보단 두려움이 앞섰다.
아빠를 따라 이곳저곳 옮겨 다녔던 게 생각보다 아픈 기억이었던 것일까,
그저 할머니의 수레 옆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학교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하하 호호 웃고 떠들면 나는 시끄러워 귀를 막아버렸다.
사실 매일 듣는 폭죽의 굉음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소음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끄럽다기보단 부러웠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체감상 일 년 같았던 한 달의 시간을 보내고 여느 때와 같이 책상에 앉아 멍하니 혼자 있는데,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야, 너는 왜 맨날 혼자 있어?"
검은색 짧은 머리에 하얀 피부, 그리고 우주를 닮은 눈을 가진 여자아이.
또래보다 키가 훨씬 큰 그 아이를 보고 나는 지레 겁을 먹어버렸다.
폭죽 중에서도 불량인 폭죽은 불꽃이 픽픽 새어 나오다 꺼지길 마련인데,
마치 그런 불량품 폭죽처럼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다 말았다.
"너 바보야?"
그녀가 되물었다.
그렇다, 나는 바보였다.
하지만 죽는 것보다 바보가 되는 게 싫은 그 나이대 아이처럼,
나 역시 바보가 되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그리하여 나는 분노에 찬 한마디를 겨우 뱉을 수 있었다.
"바.. 바보 아니거든?"
"바보 아니면, 같이 놀자."
그것이 파도와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