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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봄 Sep 25. 2020

2. 고기는 역시 불 맛

나는 무언가에 빠지면 과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그중 하나가 고기 굽기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근 10년간의 경험을 풀어본다. 내가 생각하는 잘 구운 고기란. 검붉은 숯에 불의 향기가 배어있고 표면은 노릇하니 기름기가 쏙 빠진 것이다. 한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면 겉은 바삭해 식감은 살아있고 안쪽은 부드러워 입 안 가득 풍미가 전해져야 한다. 잘 익힌 고기를 받아먹을 땐 몰랐다. 고기를 굽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처음엔 재료를 탓했다. 한우와 가격이 비슷한 제주 흑돼지를 사다 구웠지만, 검댕이가 되어버린 삼겹살 3근은 갈 곳을 잃었다. 고기가 좋으면 대충 구워도 될 줄 알았으나 오산이었다. 재료만큼 굽는데도 기술이 필요했다. 프라이팬에 익히면 불 맛이 안 나고, 숯불에 올리면 고기는 탄내만이 가득했다. 난 육즙이 살아있는 고기를 먹길 원했다. 사람들에게 그런 고기를 대접하고 싶었다. 난망했다.


다음은 연장을 나무랐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육류가 안타까워 구이용 장비를 40만 원어치나 사들였다. 택배가 하나 둘 도착했다. 장대한 포부를 품고 다시 불 앞에 섰지만! 실패였다. 숯이 화근이었다. 숯 공장을 수소문해 국내산 참숯과 인도네시아산 비장탄을 받았는데, 불이 안 붙었다. 탄소 덩어리와 30여 분을 실랑이하다 포기했다. '언제 고기를 먹게 해주는 거야'라는 허기짐에 볼멘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돈은 돈대로 쓰고, 다시 프라이팬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 분했다. 비장탄은 고온에 구워진 숯이라 일반 토치로는 불이 안 붙는다. 보통은 차콜 스타더라는 걸 쓴다. 지금은 장작을 덧대기도 하고 화력이 강한 토치로 20여 분이면 불이 붙지만, 요령이 없었다. 불이 잘 붙은 숯은 열기가 상당하다. 한 곳에 화력을 집중하는 가스레인지와는 다르게 표면적이 넓은 숯은 고기를 골고루 익혀 준다.     


unsplash.com

숯 이야기를 좀 더 보태본다. 요리로 사용되는 숯은 미네랄, 살균, 잡내 제거 효과가 알려지면서 이용이 늘고 있다. 숯은 바둑처럼 검탄과 백탄으로 나뉜다. 나는 백탄을 좋아한다. 착화에 인내가 필지만,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하얗게 자신을 오롯이 태우는 모습은 숭고하다. 뜨겁게 타오르는 모습에서는 열정이, 은은한 온기를 전할 때는 다정함이, 공허한 대기를 매개체 삼아 진심을 전해온다. 숯이 전하는 열기를 마주하면, 나의 진솔함이 재가 되기 전에 전달되기를 소망해 본다.     


나는 요리로 상대가 특별하다는 것을 표현하기도 한다. 집착으로 이루어진 나만의 숯불구이는 호평을 받기도 하는데, 아이들의 반응은 즉각적이다. 오래 씹지 않도록 작고 바삭하게 구워주면 아이들은 과자 같다며 좋아한다. 어른들도 성별, 연령에 따라 선호하는 식감과 크기가 제각각이다. 보통은 모르고 넘어가지만, 그 사람을 위한 관심을 알아채면 더 고맙고 힘이 난다. 소중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요리에 담는다.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며 웃고 떠들 수 있는 자리. 그런 풍경이 좋아, 난 오늘도 불 맛 나는 고기로 내 본심을 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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