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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봄 Sep 27. 2020

3. 속풀이 청국장

아침부터 일에 치이는 날이 있다. 부지런히 메일의 전송 버튼을 누르고, 수화기를 들어 여기저기 전화를 돌린다. 용건만 간단히 하고 싶다. 아뿔싸 부재중 전화까지. 급박한 일과 전날 묵혀둔 일들이 문제가 되면서 상황은 더 꼬여버린다. 예민한 성격 탓인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속이 쓰리기 시작한다. 시간은 11시 30분 점심이 다가온다. 이럴 땐 굶고 엎드려 잘 때도 있지만, 꼬르륵 소리가 들린다. 



점심으로 가끔 들르는 청국장집이 있다. 골목 안 후미진 곳에 위치하는데 허름하다. 주로 들르는 손님은 연세가 지긋하시거나 아저씨들이다. 할머니 두 분이 운영을 해서 그런지 메뉴는 단출하다. 자리에 앉으면 주인은 "청국장이죠? 밥은 뭐 드릴까요? 쌀밥 보리밥?"라며 묻는다. 난 까끌까끌한 보리밥을 주문한다. 



조금 기다리면 움푹 파인 스테인리스 통에 보리와 쌀이 섞인 숭늉을 건네고. 콩나물, 빨간 무생채, 가지나물, 취나물 무침이 사각형 모양의 반찬통에 분할되어 나온다. 반찬은 계절별로 한두 종류가 바뀌기도 한다. 참기름을 두른 스테인리스 대접을 주는데, 보리밥과 4가지 반찬을 고루 섞어 비빈다. 청국장은 검정 뚝배기에 나온다. 깍둑썰기를 한 두부, 얇게 잘린 무, 식감을 살려주는 애호박과 팽이버섯이 들어가 있다. 고린내가 나는 콩은 야채들 사이에 빼꼼히 숨어 있다. 그 외에 계란 프라이, 생선구이를 내어주시는데. 난 이 집의 별미는 배추 겉절이라 생각한다. 아삭함이 살아있고, 고춧가루는 묵은 냄새가 나지 않으며 배추의 달금함과 젓갈의 비릿한 맛이 잘 어우러져 밍밍한 청국장과 잘 어울린다. 



큰 대접에 보리밥, 반찬, 계란을 섞어 청국장을 한 수저 슥슥 비벼 먹다 보면 속이 든든하다. 소화가 잘 되도록 만든 콩 음식이기도 하거니와 영양소도 풍부하다. 하지만 자주 먹지는 못한다. 발 냄새를 매일 풍기며, 사람들의 눈총을 피할 자신은 없기 때문이다. 쓰린 속은 청국장을 먹으면 차분히 가라앉는다. 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어지고 여유가 생긴다. 어쩌면 내 마음은 '위'나 '장'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화가 나고 마음이 안 좋은가 보다. 잘 먹자. 내 마음을 위해!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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