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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봄 Sep 28. 2020

4. 아빠표 쿠킹클래스

"뭐 할 때가 가장 재미있어?"
"음... 난 친구랑 같이 요리하는 게 제일 좋아."
"그래? 왜?"
"친구랑 요리 끝나고 숨바꼭질할 수 있어서"

작년 5월 화요일 오후 6시였다. 나는 짐을 챙겨 서둘러 사무실에서 빠져나왔다. 점심을 거르고 마트에서 재료들을 구입했는데, 장바구니를 들고 버스에 올랐다. 아이들과 피자를 만들기로 한 날이었다. 아이가 친구들과 요리를 하고 싶다고 졸라 잡게 된 일정이었다. 유치원 친구 2명과 우리 아이까지 남자아이 3명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요리보다는 함께 논다는 즐거움으로 아이들은 들떠있었다.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화살이 날아다니고 소리를 지르며 칼싸움이 한창이었다. 한 명은 패잔병처럼 울며 씩씩 거리고, 나머지 두 명은 작전을 짜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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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료를 정리하고, 휴전 협상에 나섰다. 당장 요리를 하지 않으면 숨바꼭질을 할 수 없다는 선전포고였다. 아이들은 수군거리다 협상에 응했다. 학생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자리마다 스케치북을 놓았다. 파프리카, 베이컨, 새우, 버섯, 양파, 마늘 등 재료를 보여주고 원하는 피자를 그리라 일렀다. 재료 준비가 마무리될 무렵 그림을 완성했다며 하나둘 손을 들었다. 쭉 늘어나는 모차렐라 치즈를, 쫀득한 소시지를 듬뿍 넣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 있는 반면, 냄새가 독한 마늘과 물컹한 버섯은 안 넣겠다는 학생까지. 입맛과 취향은 달랐다. 저마다 도화지 같은 도우(dough) 위에 토마토 페이스트를 배경 삼아 토핑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그동안 나는 오븐을 예열시키고 트레이에 종이 포일을 깔았다. 오븐의 '땡~'소리에 맞춰 피자를 넣었다. 180도 20분으로 다이얼을 돌리고 피자를 굽기 시작했다.

집안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숨바꼭질을 하기 위해 거실과 각 방의 불을 껐다. 술래는 거의 아빠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20까지만 센다 알았지?" 쿵쿵 거리며 여기저기 발소리가 들리더니, 쑥덕쑥덕 야단이다.

"자, 이제 찾는다~" 일순간 정적이 감돈다.

"어디 숨었지? 모르겠네?" 하며 오븐으로 간다. 피자 반죽 위에 치즈가 부풀어 올라 노릇하고, 베이컨과 소시지가 지글거리며 익고 있다. 뒤돌아서서 다시 외친다.

"아~ 못 찾겠네? 어디 갔지? 냉장고 안으로 들어갔나?" 하면 옷장 속 아이들은 키득거리며 웃는다. 불 꺼진 방안을 돌아다니며 못 찾겠다고 광고한다. 10여 분이 지나면 항복을 선언한다.

"못! 찾! 겠! 다~ 꾀꼬리~" 아이들은 무효라며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숨바꼭질이 끝나갈 때쯤. 오븐은 빵 익는 고소함 과 토핑의 달금한 냄새로 조리가 끝났음을 알린다. 우유와 함께 피자 조각을 맛있게 먹고 아이들은 귀가한다. 시곗바늘은 밤 9시 반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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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단둘이 요리를 한건 4살 무렵이다. 횟수는 대략 100회, 연간 25번 정도를 했다. 절반은 어린이 회관에서, 나머지는 내가 직접 진행했다. 식탐이 없는 아이의 식습관 개선을 위해서였다. 음식을 조리하면 자연스레 먹게 되고, 식재료에도 관심을 가지면 골고루 섭취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였다. 이웃사촌을 갑자기 불러 요리를 하기도 하고, 친구네 가족을 초대해 간단한 베이킹을 하기도 했다. 최근엔 예년보다 빈도가 줄었지만 월 2회 정도 하고 있다. 요리를 하고 자랑삼아 다른 아빠들과 수다를 떨기도 하는데, 힘이 된다. 서로 응원하고 격려한다.

아이와 요리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나만의 결론은, 요리를 '놀이'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놀이에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그중 하나는 재미이다. 지속성을 유지하려면 체험한 기억의 잔상이 긍정적이어야 하는데, 그래야 경험이 되풀이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유쾌함이 잔상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놀이의 특징은 혼자 노는 것보다 함께 놀면 흥미를 더한다는 점이다.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했고, 아빠는 육아 동지들과 함께 했다. 이렇게 좋은 감정이 반복적으로 쌓이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은 '흐름(리듬)'이 생긴다. 그런 흐름은 지속력을 강화시켜준다. 나는 한때 작심삼일을 이틀에 한번 했다. 무언가 일을 벌이고 포기할 때면 내 '의지력'을 탓했다. 하지만 의지만으로 모든 일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의지는 배터리 같아서 쓰다 보면 고갈된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다 보면 언젠간 탈이 난다. 그런 의미에서 지속력은 자발성과 닮아있다. 내가 하고 싶어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도 아이와 요리를 했다. 아니, 놀이를 했다. 모차렐라와 고추냉이를 넣은 치즈볼이었는데, 고추냉이는 언제나 아빠 몫이었다. 아이는 아빠가 알싸한 치즈볼을 먹는 것을 보며 배꼽을 잡았다. 의외로 맛있다는 아빠의 반응에 자기도 한입 도전했다. 그렇게 먹어본 적 없는 또 하나의 음식을 아이는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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