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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봄 Sep 29. 2020

5. 아이와 함께한 무인도 여행

아이와 무인도 체험

사승봉도는 인천에 있는 수많은 섬들 중 하나다.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 1박 2일 등의 촬영 장소가 되기도 했다. 인천항에서 배를 두 번 타고 3시간여를 가야 도착한다. 2019년 8월 사승봉도에 약 30여 명의 사람들과 표류했다. 아빠와 아이들의 긴장 속에서 2박 3일 무인도 체험이 돛을 올렸다. 무인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다. 탐험이 가능한 무인도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사승봉도는 그러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첫째는 식수다. 해수를 담수화하거나 여과를 통해 물을 구할 수는 있지만, 그 양은 아이가 갈증을 해소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두 번째는 언덕이다. 서해는 조수간만의 차로 해안에서 잠을 자게 되면 밀물을 조심해야 하고 우천 시에는 특히나 위험하다. 마지막은 식량조달 가능 여부이다.


무인도에 가면 모두 아이가 된다. 문명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원시적인 삶은 익숙한 행동들을 낯설게 만든다. 밥을 해 먹는 것부터 문제다. 전날 일본군이 철광석을 캤다던 동굴에서 2L의 담수를 퍼 왔는데, 그 물로 밥을 짓는다. 쌀은 대충 헹구기만 한다. 가스버너에 불을 켜고 묵직한 돌을 뚜껑에 올리고 밥이 되길 기다린다. 반찬은 밥보다 더 큰 난관이다. 갯바위에서 따온 보말과 홍합을 삶아 껍질을 분리했다. 식사시간은 단출하다. 코펠 뚜껑에는 삶아진 조갯살들이, 코펠 안에는 흰쌀밥 김이 올라온다. 젓가락은 없다. 숟가락은 페트병 윗부분을 잘라 만든 조악하기 그지없는 도구로 밥을 퍼먹는다. 밥을 잘 안 먹는 사람도 이곳에 오면 식욕이 왕성하지만, 우리 집 아이는 예외다. 그곳에서 나는 나의 아들이 선천적으로 식탐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까지 억지로 밥을 먹인 나날들이 떠올랐다.


외딴섬에는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였다. 혼자였다면 도전해볼 엄두도 나지 않았을 체험이었다. 낮에는 35도가 넘나드는 더위로 땀 꽤나 흘렸다. 구름 없는 하늘의 작열하는 태양은 우리를 괴롭혔다. 아지랑이가 올라오는 백사장은 나의 의지를 꺾기에 충분했다. 해가 지평선에 걸리면 모기들이 극성이었다. 모기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를 빨았지만 밤에 더 활개를 쳤다. 출발일 두 달 전부터 준비를 했다. 꼼꼼하게 준비한다고는 했지만 먼저 다녀온 선배가 '긴 바지를 입어야 할걸'이란 말을 흘려들은 게 실수였다. 반바지를 입은 아이의 종아리는 매일 밤마다 벌집이 되고. 내 다리도 잘 차려진 밥상이나 다름없었다. 한동안 모기 물린 자국과 가려움 때문에 고생이 심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신났다. 함께 뛰놀 친구가, 더우면 뛰어들 바다가 있었고, 부모의 잔소리가, 누군가 시키는 해야 할 일이 없었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은 서로가 의지하게 만든다. 회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은 오롯이 상대를 바라보게 해 준다. 나와 아이는 온종일 붙어 있었다. 아들이 7살이 되기 전까지 2박 3일을 아이와 단둘이 있긴 처음이었다. 그만큼 어색했다. 일거수일투족이 신경 쓰였고, 먹고 자는 것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외부로 도망칠 수 없는 공간에 있으니 끈끈한 우정이 생겼다. 아빠들도 가까워지긴 마찬가지였다. 지역도, 나이도, 성격도 다른 아저씨들이라 초반에는 어색했지만 짧은 시간에 친밀해졌다. 서로를 의지해야 살아갈 수 있었다.



그곳을 떠나기 전날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마지막 날은 뗏목을 직접 만들어 탈출하는 체험이 진행됐다. 아이들은 들떠있었다. 엄마를 그리워했고, 맛있는 음식과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했다. 다시 인천항에 발을 디뎠다. 3일 동안 씻지 못해 행색은 초라하고 꼬질꼬질했지만 마음만은 그렇지 않았다. 다녀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이와 함께 가 아니었다면 도전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아이가 힘들어할 때는 미안했지만 그래도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엔 계곡이건 바다건 어디에서나 나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무인도에서 배운 생활력으로 버너와 냄비만 있으면 라면을 끓이기 때문이다. 밖에서 먹는 라면은 언제나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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