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봄 Oct 01. 2020

6. 월드컵과 도서관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오 필승 코리아~"


나는 402번 버스를 타고 있었다. 그 차는 강남을 출발해 시청을 지나 광화문에서 회귀했다. 남산 도서관에서 귀가할 때 타곤 했다. 터덜터덜 대중교통에 올랐다. 멍하니 자리에 앉아 귀에 이어폰을 꼽았다. 4번째 정류장을 통과할 때였다. 바퀴 움직임이 멈췄다. 별일 아닐 거라며 조금 기다리니, 승객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그곳에 나 혼자 남게 되자 그제야 상황 파악에 나섰다. 이어폰을 뽑으니 다시 귀를 막고 싶었다. 전쟁을 알리는 나팔(부부젤라), 땅을 울리는 북, 대형 스피커로 퍼지는 가요, 박자를 맞춘 손뼉, 고함 같은 응원 소리가 한대 어우러졌다. 시간이 촉박하지 않아 다시 음악을 들었는데, 결국 내릴 수밖에 없었다.


차창 밖에는 두세 명이 우리 버스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커진 눈으로 앞서가는 차량을 살피니, 몇몇 청년이 대중교통 지붕에서 뛰어올랐다. 시청 주변은 버스는커녕 사람 한 명 지나갈 공간도 없어 보였다. 광장 안 대형 TV에서는 중계방송이 나왔다. 관중은 '우~', '아~', '와~'소리로 합창을 불렀다. 한국 선수가 골을 몰고 가다 슈팅이 빗나가면 '와~~ 아~!' 탄식했고, 상대가 골대로 공을 차면 '우~'하면서 야유를 했다. 돌림 노래 같았다. 아마도 대한민국 4강이나 8강이었는데, 그것도 집에서 뉴스를 보고 알았다. 원치 않게 2킬로 정도 걷게 돼 투덜거리며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대학교 3학년, 휴학을 하자 학교에 갈 수 없었다. 당시 용산에 살았는데 가까운 도서관이 남산이었다. 그곳 시설은 노후했지만 자주 갔다. 시립이라 책이 다양했고, 밥은 별로였지만 라면이 쫄깃해 맛났으며, 대부분 사용료가 무료 거나 저럼 했다. 그중 제일은 문을 지나 마주하는 자연이었다. 출입구를 나와 건물을 끼고 우측으로 돌면 벤치가 서너 개 있었다. 책을 보다 하품이 나오면 그곳에 갔다. 앉아서 산책하는 사람과 지나가는 버스를 봤고, 인적이 없을 땐 단잠을 청했다. 가끔은 남산 타워에 걸어갔다. 계단을 오르다 연인이 지나가면 시샘하며 도망치듯 종종걸음을 쳤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빛 밝기에 따라 빈부를 나타냈다. 서울 전체가 조망할 수 있었는데, 강남 불빛이 유독 밝았다. 역삼동에 위치한 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센터)가 잘 보였는다. 그 인근에는 내가 가고 싶은 기업이 많았다.


https://unsplash.com/


내게 도서관은 휴식공간이다. 흔히 말하는 마음의 휴식공간이 아니고, 정말 잠을 잤다.. 나는 이상하게 그곳에서 수면을 취하면 피로가 풀리고 몸도 개운해졌다. 취업 후, 작년까지도 집 근처 공공 도서관을 들렀다. 피곤하거나 갈 곳이 없으면 발걸음을 떼었다. 책을 빌려 몇 장 펼치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엎드렸다. 예전에는 시선을 의식해 고개를 꾸벅이면 나가서 기지개를 켰는데, 낯짝이 두꺼워졌다. 문제는 공공기관 특성상 의자가 나무라 딱딱했다. 불편해 오래 잘 수가 없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몰입하는 사람 사이에서 숙면을 취한 게 부끄럽고 미안했다. 삼면이 막혔음에도 코는 골지 않았을지 신경 쓰였다. 몽롱했던 정신이 되돌아오고 타인의 눈길을 의식할 때쯤, 머리도 몸도 차분해졌다. 보통 점심을 먹고 도착하면 폐관까지 있었다. 책 한 권 정도를 봤다. 도서관을 나오며 계단에 서면 뿌듯한 감정이 들었다. 오늘 하루도 알차게 보냈다며 나 자신을 칭찬했다.


내가 가벼운 마음으로 그곳에 가듯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즐겁게 방문했다. 책을 보라고 강요치 않는다. 최근엔 도서관에 갈 수 없어 아쉽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대부분 휴관을 했고, 개관을 해도 금세 닫곤 했다. 아이와 책을 빌리기도 하고 문화강좌를 들었는데, 가본 지 7개월이 지났다. 커피숍을 대안으로 삼곤 하지만 소음은 방도가 없다. 도서관이 내게 휴식처이듯, 아이에게는 놀이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5. 아이와 함께한 무인도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