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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원 Jul 31. 2018

안은미가 다시 쓰는 한국성

무대에 선 당사자, 한국인의 재발견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Young-mo Choi


 친할머니가 무용극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에 참여한 적이 있다. 할머니 출연자를 모집한다는 공지를 보고 막연히 제안했을 때 좋아하던 표정이 떠오른다. 당신의 삶에서 애환을 풀던 유일한 수단이 막춤이란 이야기도 신나하며 들려주었다. 평소에 보던 독불장군 같은 모습 뒤로 마주한, 무대 위에서 마음껏 펼쳐진 할머니의 춤은 이 땅에서 고통스러운 근현대를 악착같이 견뎌내었을 그를 평소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고, 공감하며, 뭉클한 마음을 갖게 했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를 기획한 <안은미 컴퍼니>는 안무가 안은미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단체로, ‘사심없는 땐쓰’ ‘쓰리 쓰리랑’ ‘안심땐쓰’ ‘대심땐쓰’ 등의 공연을 기획해왔다. 안은미 컴퍼니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한국인의 몸과 움직임’이라는 주제를 집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의 ‘한국’은 전통적인 한국의 이미지와 문화로는 온전히 설명되기 어려워 보인다. 그가 드러내고 싶은 ‘한국인’은 누구일까. 그에게 ‘한국’은, ‘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


<사심없는 땐스> ⓒYoung-mo Choi


 안은미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한국인’이라고 할 때 떠오르는 존재들은 아니다. 그는 거친 역사를 온몸으로 뚫어낸 여성 노인의 인생을, 현재의 삶이 유예 당하는 청소년의 처지를, 자녀가 군에서 희생된 부모의 한을, 시각 장애와 저신장 장애를 지닌 몸을 무대 위로 불러낸다. 다시 말하면,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이름’ 한번 제대로 불리어 본 적 없는 자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들의 정체성이 일상과 구조 속에서 빚어내는 몸짓들은 당사자에 의해 춤의 형태로 재현되고 말해진다.


 중년남성의 몸을 주제로 한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쓰’, 최근까지 화제가 되었던 신작 ‘안은미의 북한춤’도 이러한 연장선 위에 있다. 시국과 기막히게 맞물린 ‘안은미의 북한춤’은 위의 작품들처럼 당사자가 직접 참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지 못해온 북한춤의 재해석을 통해, 북한의 문화적 특징과 행동양식을 안은미 고유의 감각으로 풀어냈다. ‘무책임한 땐스’의 경우, 공적영역의 존재인 ‘중년/남성’이 사적영역에 머물러있던 자신의 ‘몸’에 집중하는 모습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스> 출처 대전 예술의 전당


 안은미 컴퍼니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이 존재들이 작품의 대상으로 그치지 않고, 극의 주체이자 예술의 행위자로서 무대 위에 선다는 점이다. 무용수들은 해당 서사에 대한 해석을 자신들의 춤으로 보여주는 한편 당사자가 발 딛고 있는 사회를 스스로의 몸짓으로 충실히 표현하도록 돕는다. 그리하여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을 넘어, ‘존재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을 중심으로 무대가 펼쳐진다. 예술로 무엇을 말할 것인가, 누구를 예술의 주체로 상정할 것인가는 예술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여기에 안은미는 그들의 이야기를 ‘그들이 말하게 하라’고 답하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한국성’은 그저 허상에 불과하다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이와 다르게 안은미는 무엇을 한국의 모습으로 보여줄지에 있어, 그동안 터부시되어온 '어떤' 한국인들과 그들의 몸짓을 드러낸다. 그는 민족주의적인 접근에서 한발 나아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기획으로 '한국성'의 내용을 채우고 또 해체한다.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았을 목소리를 몸으로 말하는 과정을 통해,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한국적인 정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담아낸다.”는 세간의 평가를 넘어, 안은미는 ‘한국성’ 자체를 다시 쓰고 있다.


<안은미의 북한춤>을 선보이고 있는 안무가 안은미 - 출처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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