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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원 Aug 13. 2020

노인의 일상을 위협해온 것

도소정연 연속기고 <얼굴 없던 이야기> ①

도시소수자정치연구모임(이하 도소정연)은 도시 공간을 바탕으로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과 정치를 고민하는 지역활동가들의 연구모임입니다. 연속기고 <얼굴 없던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도소정연 구성원들의 문제의식을 풀어내는 사유의 장입니다. 소수자•약자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일상 속 운동의 가능성을 공유하며, 삶과 정치의 관계맺기를 꾀합니다.


할머니가 오늘자 신문이 이상하다고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있던 방송편성표가 없다고 한다. 살펴보니 정말이다. SBS KBS MBC가 상부에 가로로 놓인 표에, 아래로는 방송시간과 프로그램명이 세로로 빼곡히 인쇄되어 있어야 하는데 오늘은 없다. 혹시나 표가 삽인 된 면만 없어졌을까 싶어 신문 위에 적힌 숫자를 거꾸로 세어본다. 40, 39, 38… 빠진 면은 없었다. 해당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이유를 물으니, 앞으로는 실지 않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전화를 끊고 할머니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당황하는 할머니. 오늘 하루 치 편성표는 각 방송사 홈페이지에서 인쇄하여 해결했다. 하지만 매일같이 방송편성표를 인쇄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전날까지만 해도 신문을 보면 텔레비전에서 그날 하루 무엇이 방영되는지 알 수 있었다. 앞으로는 뭐가 나오는지를 알려면 TV 화면을 마냥 쳐다보고 있어야 한다. 할머니에게 그런 어제와 오늘은 분명 다르다. 4년째 새로운 스마트폰에 익숙해지지 못한 그의 일상에, 의지와 상관없이 익숙해져야만 하는 것이 하나 더 늘었다.


『방송편성표』예시 ⓒ조선일보


코로나 시기 무엇이 변했을까. 셀 수 없는 답변들이 예상된다. 질문을 바꿔본다. 코로나 시기로 인해,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게 된 것들이 있는가. 개인적으로는 퇴직 후에 계획했다가 포기하게 된 일본 여행이 먼저 떠오른다. 매주 즐겨 가던 미술관도 출입이 막혔다. 등허리 통증 때문에 격일로 가는 헬스장도 언제 다시 휴관령이 떨어질지 모른다. 사람들이 붐비던 PC방, 노래방도 이제는 가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중 노인정은 가장 빠르게 문이 닫힌 경우다. 모든 노인이 가지는 않지만, 찾는 이들은 대부분의 일상을 그곳에서 보냈다. 점심과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단체체조 같은 운동도 한다. 바둑을 두거나 종종 화투도 친다. 담소를 나누며 여가를 보내는 이들에게는 단순한 취미활동의 의미를 넘어서는 공간이다. 할머니에게도 그랬다. 가족보다 노인정이 더 편한 사람도 있다고 전해 들으니, 그들에게 닥친 일상의 공백을 감히 가늠하기 어렵다.


모두에게 익숙지 않은 변화이자 낯선 시기지만, 삶의 형태와 조건에 따라 불편함의 정도는 분명 다르다. 스마트폰에 익숙한가. 가족 친구 이웃 등의 사회적 관계망을 가지고 있는가. 경제적인 여건은 넉넉한가. 나이는 어떻게 되는가. 누군가는 오히려 들뜨는 상황, 다른 누군가는 그다지 크지 않은 불편함, 또 다른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중되는 고통으로서 코로나를 마주하고 있다. 각기 다르게 발생하는 불편의 근본적인 원인이 코로나일 수는 없다. 던져진 질문들이 의미하는 일상이 어떤 모습과 감각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바이러스는 그저 명징하게 보여줄 뿐이다.


신문, TV, 노인정은 할머니가 타인과 소통하고 자신을 드러내며 세상과 만나는 수단이었다. 유튜브로 1일 3깡 이상을 하는 동안, 누군가는 맥도날드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 방법을 몰라 쩔쩔매고 있다. 사회와의 소통창구들이 하나씩 단절되어 노인 세대의 고립감이 심화되는 상황의 원인을 코로나에만 돌릴 수 있는가. 혹은 개개인 노인들이 알아서 책임질 문제인가.


ⓒ연합뉴스 TV


최근 미술관 도서관 나아가 노인정을 포함한 공공시설들이 다시 문을 열고 있다. 공감하는 조치이지만, 방역 조치의 완화로는 충분하지 않다. 노인정 문은 언제든지 다시 닫힐 수 있기 때문이다. 방역에 대비된 대안적인 놀이시설이나 소통공간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노인을 배제하는 사회적 조건을 돌아봐야 한다. 가령 복지시설 뿐만 아니라 어떤 편의시설에서든 고령층을 포함한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일상을 살아가며 알고 싶고 사용하고 싶고 즐기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노인도 장벽 없이 누려야 모두가 누릴 수 있다.


코로나에 더욱 취약하다고 알려진 후 노인에 대한 경계가 강화되었다. 하지만 이전부터 이들의 일상을 위협해온 현실은 정작 변함없다. 보호의 대상으로만 규정짓는 이면에는 노인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없게 하는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노인정 안에 일상을 두고 나온 사람들처럼, 이 시기에 더욱 고립된 존재들이 누구이며 어떻게 고립이 발생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TV편성표에서 노인정 혹은 그 너머까지, ‘인간다운 일상을 어떻게 보장해야하는가’라는 기본적이지만 오래된 질문은 포스트 코로나에 주요한 정책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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