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활동가로서 나의 마을 고민
[2020 프로젝트] 도시소수자정치연구모임(이하 ‘도소정연’)은 도시 공간을 바탕으로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과 정치를 고민하는 지역활동가들의 연구모임입니다. 3명의 지역활동가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며, 소수자·약자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일상 속 운동의 가능성을 공유하며, 삶과 정치의 관계 맺기를 꾀합니다.
<얼굴 없던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도소정연 구성원들의 문제의식을 풀어내는 사유의 장입니다. 책「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를 읽고 나눈 대담의 공유를 끝으로 도소정연의 활동을 마무리합니다.
▶ 이야기하는 얼굴들 (가나다순)
신원 : 어쩌다 사람을 좋아하여 지역에서 활동합니다. 일상 속 소수자의 정치를 고민합니다. 주로는 청소년•청년들과 만납니다.
태환 : 세상 모든 청년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기 바라는 연구활동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도 일합니다.
이응 : 커피 분쇄와 고양이 털 냄새를 좋아하고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럼에도 모든 고양이가 고양이로서 살아가고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한 안전하고 평화로운 내 삶의 터전을 위해서 동네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나가려 합니다.
태환 제가 하는 연구에서 커뮤니티의 정의를 찾아보니까, ‘일정한 지리적 영역 안에서 공동의 유대감을 바탕으로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래요. 다르게 보면 지리적 영역만 해당하는 개념은 아니잖아요. 가령 온라인에서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이응 온라인에서도 충분히 유대감을 만들 수 있고, 이젠 다들 온라인 친구도 많잖아요.
신원 많아요?
이응 아니 나는 원래 친구가 없지만,,, 온라인에서 만난 유대감만으로도 서로 친구가 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굳이 오프라인에서 시작하거나 오프라인 만남을 염두에 둔 관계가 아니더라도요. 오프라인의 필요성이 절대적이지도 않고.
태환 왜냐하면 익명 커뮤니티 같은 경우 네임드(편집 주: 오프라인 또는 온라인에서 실력이 검증되어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도 있고, 닉네임으로 소통하거나 가상 이력도 추가하니까요. 보통 공동의 유대감 하면 잘 안 와닿는데 공동의 관심사나 취미도 그렇고요. 상호작용도 없잖아요.
이응 유대감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방식이 네이버/다음카페잖아요. 구체적인 취향 공동체로서 주기적으로 오프모임을 염두에 두는 ‘카페’는 기본 사고가 오프라인에 기반을 두었기에 그 공통감각에서 지리적으로 연결된 유대감이 생겼죠.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강력한 유대감보다는 불특정인이 나의 글에 반응하면서 관계를 맺으며 쉽게 연결될 수 있는 SNS가 요즘 더 떠오르는 것 같아요. 불특정 다수 대상, 우연성, 얕은 연결감, 넓은 확장성이 중요한 개념이죠.
초기 SNS는 오프라인에서 알던 사람들끼리 마치 땡땡 향우회처럼 오프라인 관계를 기반으로 했던 것과는 차이점이 있죠. 지리적 경계 여부를 넘어서, 각 SNS에서 통용되는 유대감이란 것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태환 카페가 특성이 그렇죠. 공동의 목표가 분명하고 주제나 관심사도 딱 있고요. 카페에 게시판도 있어서, 게시판 유형에 따라 올리는 글들도 각기 다르게 정해져 있고요.
신원 트위터 같은 경우에는 유대감이나 친밀감이 있어 보여요. 오프라인이 아닌 소셜미디어에서 만난 사람들이라고 해도 서로 말을 놓고 수다도 떠는데, 다만 이런 관계들이 공동체로 묶일 수 있느냐는 고민이에요. 개별적으로 형성된 관계, 플랫폼으로서의 유대감 정도로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근에 당근마켓(편집 주: 지역 기반 중고거래 온라인 플랫폼)을 되게 열심히 하거든요. 구매도 하고 판매도 하고, 너무 재밌어서. 당근마켓 보면서 생각했던 것이, 사회적경제 운동이 하려는 단기적 목표를 사실 당근마켓이 이미 이룬 것은 아닌가였어요. 동네 소식 나누고, 경제적으로 유의미한 관계망이 형성되고, 그 기반 안에서 이윤과 자원이 돌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근마켓으로 형성된 관계망이 공동체로 묶이느냐, 실질적으로 깊이 있는 관계망일 수 있느냐와는 다른 문제 같아요. 그냥 이웃의 느낌 정도? 뭔가 더 얹어주려는 분위기? 그런데 플랫폼 자체가 어떤 변화를 도모하기라기보단, 그냥 사람들이 모이는 수단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이응 근데 당근마켓은 보면 서비스 초창기부터 소소함이나 이웃과의 정, 이웃 간의 소통을 중시하는 이미지를 보여주는데요. 제가 볼 때는 모든 사업모델이 그렇듯이, 이용자층이 다양해지고 규모가 커지면 에어비앤비처럼 전문성/사업성을 띤 이용자와 단순 이용자가 분리되고 그걸 중심으로 더 활성화될 것 같아요. (편집 주: 현재 당근마켓은 ‘지역광고’라는 이름으로 사업성 이용자가 분리되어 있음) 당근마켓 기획자의 입장에서 수익 창출로 이어지는 비즈니스모델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어요.
유튜브(편집 주: 구글이 서비스하는 전세계 최대 규모의 동영상 공유 플랫폼)도 처음엔 아마추어가 홈비디오를 웹에 올리는, 누구나 쉽게 참여하는 가벼운 방법으로 시작했잖아요. 그런데 점점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전문성을 띠는 유저가 영상 제작을 사업화를 하게 되었고 더 많은 사람이 단순 시청자가 되는 구도 속에서 수익이 창출되는 거잖아요. 당근마켓도 그러지 않을까.
그런데 신원 혹시 네고왕(편집 주: 기업주를 직접 만나서 기업의 불만사항을 전달하고 개선방향을 협상하는 유튜브 채널 / 주로 단기간 가격할인 이벤트를 협상하여 기업광고에 높은 효과를 봄) 봤어요?
신원 네! (웃음) 그전에도 당근 마켓에 관해 관심은 있었는데 그렇게 말을 하는 걸 보니까 이 사람들 엄청나게 넓히는걸 지향하는구나 싶었어요. 개인 유저들의 관계망에서는 ‘이건 사회적기업 마인드인데?’ 싶기도 했고요.
갈등 없는 마을, 탈정치화된 마을
태환 책에서의 공통적인 문제제기는 마을에 갈등이 없거나, 탈정치화되었다는 점?
책을 읽고 나서 감상의 첫 키워드는 ‘공론장이 없다는 것'이에요. 마을에서 갈등과 문제를 있는 그대로 목격할 수 있는 공론장이 없다는 거였고, 제 경험상에도 없었어요. 마을에서 열리는 공론장에서는 의견 차이를 확인하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토론하고 그러는 모습을 한 번도 볼 수 없었거든요.
그러면 이런 갈등은 어디에서 드러나고 있을까? 분명히 어디에서인가 드러나고 있을 텐데, 그 갈등의 현장에선 누구의 목소리가 가장 우선시 되고 누구의 목소리는 소외되고 있을까? 이런 질문이 이어지더라고요.
두 번째는 ‘정치’와 붙어있는데 공론장에서 갈등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탈정치화된 마을에 대한 책 속 이야기와 연결되는 것 같아요. 제일 인상 깊게 읽었던 건 “정치라는 게 문제해결을 위한 기술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다름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
그걸 보고 ‘아 내가 얼만큼 어떤 마을에서 활동하면서 마을의 주민들과 서로 다름을 확인하고 인정하고 꺼내서 이야기해 봤던 적이 있었나’ 하면 사실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서로가 다르다는 걸 확인하고 아 다르구나 하고 그냥 말을 꺼내지 않았지, 서로가 얼마만큼 불편하고 어떤 게 문제였고 어떤 걸 같이 해결하자는 얘기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렇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이 결국에는 마을이 탈정치화 되어있는 모습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구요.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게 같은 마을이라 불려도 각자가 생각하는 마을이 다 다른 것. 그러면 각자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어떤 식의 활동을 같이 할 수 있지? 마을 공동체라는 게 어떻게 형성될 수 있고 어떻게 형성되어 있지 현재? 그냥 누군가 참고 있는 건가? 누군가가 서로서로 양보하면서 나아가고 있는 건가? 좀 그런 감상이 들더라고요.
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관점이 다르구나. 크게 그렇게 세 가지 키워드가 있고요. 갈등이 없는 공론장, 탈 정치화 그리고 마을에 대한 다른 관점.
책에 구체적으로는 공공기관 이런 것도 나왔길래 제 경험을 공유하자면, 어느 공공기관에서 일하셨던 분한테 갑자기 요청이 와서 재작년 초였나 작년 초에 만났었어요. 마을에 오랜기간 활동하셨던 활동가이시고 당시에 특정 지역을 담당하신다길래 만났거든요. 만났더니 어려움이 없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어려움이 없다고 했죠.
나중에 그분 생각 하는 걸 파악 해보니깐 자기가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거를 생각하고 떠올리고 도와주려는 거였어요. 청년들이 뭘 하고 싶어 하니까. 뭐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필요한 건 없는데. 돈이 없냐고 묻길래 아니 돈 있다, 보조금 사업 많이 따가지고 잘 하고 있다고 했죠.
그런데 팁을 알려주겠다면서 눈먼 돈이 많다, 그래서 돈이 없으면 본인은 보조금 사업 카드 여러개를 가지고 다니면서 돌려가면서 긁는다 뭐 이런 얘기를 꿀팁이라고 하고 있는거에요.
그게 막 너무 막 몸서리가 쳐지는거죠. 그걸 꿀팁이라고 와서 이야기 한다고 하는게, 이게 공공의 영역에서 활동한다고 하는 공무원이 마을에서 활동한다고 하는 청년들한테 해줄 말인가? 이게 정말 공동체를 위한건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게 제 경험담으로 떠올랐어요. 저는 이정돕니다. 나머지는 얘기하면서 나올 것 같아요.
신원 별 관계도 없는 후배한테, 지역운동 선배가 행정의 돈을 어떻게 써먹는지를 도움이랍시고 얘기한다는게 좀 그렇네요.
사실 페북에도 한 번 썼는데, 저는 이 책을 처참한 기분으로 읽게 됐어요. 몇 년 전 처음 읽을 때는 흥분감으로 읽었고 뭔가 해볼 수 있는 것을 상상했다면, 이번에 다시 읽었을 때는 지역에서의 경험치가 축적이 되다 보니 '에라이 아무것도 못하겠네’ 싶은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요. 물론 패배주의적으로만 접근하면 안되지만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라는 명제가 마을에 필요한 명제라는 것을 깨달았던 책이기도 했어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