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우여곡절 끝에 대학원을 졸업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마지막 관문인 박사학위 논문은 수년간의 고민과 노력이 투영된 최종 결과물이다. 한 가지 주제에 깊이 빠져들면,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지는 경우가 있는데 학위 논문이 딱 그 격이다. 이 주제로 논문을 발표하면, 분명 세상이 깜짝 놀라겠지? 저명한 학회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겠지?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건 쓸데없는 혼자만의 상상에 불과하다.
오랜 실무 경험을 토대로 선정한 주제였던 터라, 나도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관련된 선행 연구도 많이 축적되지 않았던 때라 내가 해당 주제에 관한 선구적 연구자로 기록될지도 모른다는 <착각>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내게 남은 건 첫째가 자괴감, 둘째가 무력감, 마지막이 안도감이었다. 늦깎이 대학원생의 처절한 몸부림을 안타깝게 여겨준 지도교수님의 배려 때문에 간신히 졸업할 수 있었다. 그 덕에 마지막 자리는 안도감이 차지했다. 여러 교수님의 날 선 지도 편달로 인해 "만리장성에 벽돌 하나 쌓기"도 얼마나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세상에 나의 흔적을 남기는 일에는 정성이 필요하다.
논문 주제는 “재기 지원 제도의 필요성”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의 주된 관심 분야는 최고경영자, 즉 CEO의 기업가정신, 경영성과, 사업실패 경험, 그리고 재기·재도전 지원 제도다. 잘 나가는 기업, 성공한 CEO 관련 연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성공 사유는 각양각색이니, 수많은 논문과 베스트셀러가 뒤를 따른다. 예를 들어 “최고경영자의 기업가정신이 경영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라면, 논문을 쓰는 사람도, 그 논문을 심사하는 학자도 일단은 마음이 편하다. 논문이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잃고 헤매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성공 스토리를 주제로 글을 쓰는 것도 기분 좋고, 예상하던 결과가 나올 확률도 높다. 설령 여러 개의 가설 중 한두 가지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다른 변수를 첨가하면, 경영성과가 개선되리라는 희망 섞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논문이 신선하지는 않겠지만, 신선함을 추구하는 건 의욕만 넘치는 초보자이거나 해당 분야의 거장뿐일 테니, 무난함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업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면 사정이 꽤 다르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는 글도 물론 차고 넘친다. 그러나, 모두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일뿐이다. 실패를 미연에 방지하는 보고서, 결정적인 순간 일의 중단(stop)을 주장하는 논문은 찾기 어렵다. 미래를 예측하는 건 전통적 의미에서 학문의 영역도 아니다. AI나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과거 데이터의 도움으로 경영 의사결정에 참고는 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사업은 불투명한 환경에서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사업은 일단 시작하면, 무조건 실패 확률이 높은 게임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만은 예외일 거란 확신으로,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긍정의 힘으로, 지금도 누군가는 첫 번째 펭귄(First Penguin)이 되어 바닷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기업의 실패와 성공을 가르는 제1의 요인은 누가 뭐래도 CEO의 역량과 의지다.
실패한 CEO들을 대상으로 논문을 쓰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인터뷰도, 설문조사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소수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운 좋게 100명의 전직 CEO를 만나 그들에게 실패의 원인을 묻는다 치면, 아마 100가지 이상의 답이 도출될 것이다. 사연은 제각각이다. 자기 객관화도 쉽지 않다. 본인에게서 실패의 원인을 찾으려는 CEO는 많지 않다. 현직에서 경험해 본 결과, 실제로도 사업 실패의 원인은 다채롭다. 하나의 회사, 한 명의 CEO마다 대하소설 1편이다. 어쩌면, 기업경영은 논문과 보고서가 아니라, 수필과 소설의 영역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러니, 사업 실패를 전제로 하는 재기 지원 제도에 대한 논문을 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데이터, 즉, 재무제표상의 숫자나 CEO의 성별, 나이, 경력, 업종 등을 주요 변수로 두고 수백 번 통계를 돌린다고 해도, 내가 생각했던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부도가 난 회사에 다시 한번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임은 굳이 통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상식과 직관의 영역이다. 당연하게도, 야심 차게 시작된 나의 논문 프로젝트는 인터뷰, 설문조사, 통계분석 어느 하나 원활하지 않았다. 학문적 성과도 보잘것없었다. 단지, 시행착오(Trial and Error)의 노력만 인정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독일 등 자본주의가 성숙하게 자리 잡은 선진국에도 재기 지원 제도는 활성화되어 있다. 창업이 성공하기 어려움은 주지의 사실이다. 차라리 실패가 정답에 가깝다. 그러나, 기업은 경제와 사회발전의 토대다. 창업과 재창업이 계속되지 않으면, 그곳은 죽은 시인의 사회다. 따라서, 예기치 못한 이유로 곤경에 처한, 성실한 실패자를 위한 재기 지원 제도의 필요성은 힘을 얻는다. 설령 밑이 빠진 독이라 해도, 물을 부어야 할 필요성이 인정된다.
즉, CEO의 재기·재도전을 돕는 일은 생산성·효율성·효과성과 같은 재무적 성과가 아니라, 필요성·당위성·의의 같은 비재무적 성과로 접근하는, 철학과 복지의 영역에 가깝다. 베트남, 태국, 몽골도 대한민국의 제도를 배워가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재기 지원 제도는 국격과 이데올로기, 종교와 정파를 모두 초월하는 지구촌의 필수재인 셈이다.
1993년, 그룹 부활은 <사랑할수록>을 발표했다. 3집 앨범 기억상실의 타이틀곡이다. 당연하게도 리더 김태원이 멜로디와 가사를 모두 썼다. 김태원은 이 노래의 대성공으로 이름처럼 부활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팬과 음악인들은 부활 최고의 곡, 상징(Signature)적인 곡으로 이 노래를 뽑는 데 주저함이 없다. 나 역시 그러하다. <사랑할수록>은 들을 때마다 상념에 빠질 수밖에 없는, 복잡 미묘한 노래다.
이승철과 결별한 김태원은 수년간 침체의 시간을 보냈다. 삶은 고통과 권태의 반복이라는데, 오직 고통만이 함께할 뿐이었다. 그는 독특한 자아를 가진 예인이지만,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타인에 대한 시기·질투 등이 한데 어우러져 그 시절 심연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 기억나지 않는 시간, <기억을 걷는 시간>이었기에 앨범 명도 <기억상실> 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방황하던 그를 다시 잡아 준 것도, 음악으로의 회귀를 이끌어 준 것도, 결국엔 사람이었다. 누구든 사람에 상처받고, 사람으로 치유받는다.
친구의 소개로 무명의 보컬리스트 김재기를 알게 된 김태원은 교회에서 그가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재기를 결심했다. 김재기의 성량이 마이크를 쓰지 않고도 예배당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게 할 정도로 엄청났기 때문이다. 우수 어린 허스키한 음색, 저음과 고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보컬 스타일도 김태원이 추구하는 음악과 잘 어울렸다. 김재기가 보컬리스트의 산실인 부활의 보컬로 영입되는 순간이었다.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고 있던 <두 사람>이 만났으니, 이제 비상할 일만 남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공교롭게도! 이름마저도, 재기와 부활이니, 그들의 만남은 운명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사실, 앨범에 수록된 <사랑할수록>은 정식으로 녹음되지 않은 가이드 녹음 곡이다. 아직은 수정과 보완이 필요한, 한 번에 녹음한 원-테이크(One take) 연습곡이었다. 그러나, 결국 연습곡이 그대로 앨범에 실렸다. 까다롭기로 둘째 가면 서러워할 김태원이 프로듀싱한 곡임에도 말이다. 보컬 김재기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 고작 스물다섯이었다. 슬픔에 빠진 김태원은 이때의 심경을 “재기가 바람으로 떠났다.”라고 표현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재기가 떠난 자리에는 그를 빼닮은 동생 재희가 있었다.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결국, 동생이 형을 대신해 부활의 보컬리스트 자리를 이어받았다.
처음 몇 개월은 반응이 없었다. 방송국과 라디오 PD들도 노래가 지나치게 쳐진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또다시 실패인가. 반쯤 기대를 접은 어느 날, 우연히 이대 앞에 들른 김태원은 커피숍에서 <사랑할수록>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을 듣는다. 절망이 희망으로 전복(顚覆)되는 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때부터 <사랑할수록>은 바람을 타고 세상에 퍼졌다. 명곡은 언젠가 진가를 발휘하기 마련이지만, 이 곡만큼은 한동안 잠잠하던 바람이 도움을 준 게 확실하다.
부활은 마이너 발라드곡으로 메이저 방송사인 KBS 가요톱 10에서 몇 주간 1위를 차지했다. 앨범도 100만 장 이상 팔렸고, 이 노래의 유튜브 조회 수는 1,800만 뷰가 훌쩍 넘는다. 지금도 후배 음악인들은 이 곡을 연주하고, 재해석하며떠나간 원곡자를 소환한다. 어느 평론가는 <사랑할수록>에 대해 “마이너와 메이저, 엇박을 오가는 특유의 변칙적인 구성과 그 안에서 뽑아낸 죽이는 멜로디, 비와 소녀, 주체와 객체의 모호함 등으로 대변되는 김태원식 서정의 가사, 그리고 음색만으로 슬픈 마초 자체였던 김태기의 보컬”이라는 멋진 표현으로 찬사를 보냈다. 김태원도 김재기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부활은 없다고 단언한다. 여러모로 <사랑할수록>은 부활의 오늘을 있게 한 보석 같은 곡이다.
2002년, 김태원과 다시 만난 이승철은 콘서트와 방송에서 여러 차례 <사랑할수록>을 불렀다. 인천방송에서의 라이브는 컨디션 때문인지 음정이 불안하고 힘겨워 보인다. 그러나, 빨간 등산복 차림으로 노래한 부활 콘서트에서의 <사랑할수록>은 지금도 전설의 라이브로 회자될 정도로 환상적이다. 누가 역대 최고의 부활 보컬리스트인지에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현실 세계에서 김태원과 이승철의 만남은 실현 가능하기에, 이 곡의 댓글 창에는 유독 둘의 재결합을 바라는 글들이 많다. 그러나, 대한민국 최고 남성 보컬리스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승철마저도 부활과 가장 어울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아닌 김재기를 꼽았다. 동감한다. 확실히 부활의 음악은 비와 바람을 닮았다.
김재기는 바람처럼 떠났지만, 그를 지지하는 재기 지원 제도는 계속되고 있다. 지금의 양자역학, 인공 지능, 융복합 기술로는 그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도, 그의 목소리를 입혀 부활의 다른 명곡과 선배 가수 이승철의 노래를 듣는 것도 가능하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했다. 떠난 것처럼 보여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떠난 이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반야심경에 이어 아인슈타인의 논문을 빌리자면, 이별한 모든 것들은 우주 속 어딘가에 또 다른 에너지로 존재한다. 그 에너지는 실패한 음악인, 그리고 기업가의 재기를 지원한다. 앞서 재기 지원 제도는 국가와 이데올로기를 초월한다고 했다. 정정한다. 시간과 공간도 넘어선다. 지금은 바야흐로 재기(Born Again)의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