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국제정세 속 비즈니스 기회
운송주선업체 방문후기
서울 강서구에는 운송주선 서비스를 주업으로 하는 회사들이 많다. 최근 한 달 사이, 세 차례나 운송주선업체에 방문을 했다. 참 특이한 경험이다.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고, 관심도 없었는데, 저절로 호기심이 생길 지경이다. [복합 국제물류 운송주선업]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해서, 이번 기회에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알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운송주선업자는 화주의 대리인으로, 적절한 운송수단을 선택해 운송에 따르는 일체의 부대업무를 처리하고, 운송이 완료되면, 화주로부터 용역비를 받는다. 용역비는 운송비용과 서비스 수수료로 구성된다.
국내로만 한정해서 본다면, 이는 특별한 비즈니스가 아니다. 애플리케이션만 있으면, 화주가 쉽게 직접 운송업체와 컨택하기 쉽기 때문이다. 플랫폼이 일상화되다 보니, 중간 플랫폼들이 많이 사라졌다. 가격 거품이 빠지고, 업무흐름이 간결화되니, 특별한 역량과 기술력 없는 중간 유통업체(운송주선업체 포함)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 거다.
그런데, 국제 화물운송 주선업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배(해운회사) 또는 비행기(항공회사)를 섭외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복합 운송시스템 하에서는 컨테이너 등을 취급할 수 있는 장소와 운송설비를 갖추고, 집화/분배업무 서비스까지 제공할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이 경우에는 대규모 자금이 선투자되어야 하니, 진입장벽도 높다. 만만치 않은 항공/해운 운송비를 먼저 지급할 수 있는 자금력, 국내외 인적/물적 네트워크 구축이 사업성공의 핵심 요소다.
오늘 만난 J 대표 역시, 해당 사업 분야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베테랑이었다. 그는 중국(청도), 중동(캄보디아) 지역 무역 주재원으로 근무한 경력을 토대로, 10여 년 전 캄보디아에서 포워딩 업체를 설립했다.
캄보디아에서 생산한 다양한 의류제품을 미국 의류 제조기업들에게 운송하는 사업이었다. 아이템도 좋았고, 경쟁자 수도 많지 않아 사업은 순조로웠다.
캄보디아의 옷은 미국으로 이동해 수십 배 가치(가격)가 더해져, 소비자들에게 최종 판매되었다. 하긴, J 대표에게 그런 과정 전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그저 배와 항공기에 실려진 의류들이 무사히 미국에 도착하고, 미국의 제조회사들로부터 약속한 날짜에 운송비와 수수료가 잘 입금되기만 하면 족했다.
사업이 커지니, 운송물량과 운송비도 크게 증가했다. 운송비 결제를 잘해주니, 해운 운송업체로부터 우수 고객으로 인정을 받았다. 자연스레 신규 고객도 늘어났다. 미국 거래처들의 신용도 확인되었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예기치 않게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가 발생했다. 하루아침에 미국이라는 거대 시장이 붕괴해 버린 거다. 설명하기도 힘들고, 잘 보이지 않는 허상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가 마비되었다.
J 대표도 이 파고를 넘지 못했다. 미국 거래처들로부터 대금 결제가 안된 것이다. 문제는, J 회사는 이미 운송비를 선지급했다는 점이다. 수십만 달러가 고스란히 손실로 남았다. 결국, 그는 머나먼 이국 땅에서 실패의 쓰라림만을 안은채 , 무일푼으로 귀국했다.
그로부터 약 10여 년의 시간이 더 흘러, 그는 지금의 회사를 다시 설립했다. 이번엔, 배우자까지 회사의 경리팀장으로 앉혀, 자금관리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이런 경우엔, 금융부실이 잘 발생하지 않는다는 건, 업계의 불문율이다. 어찌 보면, 재창업/재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응원을 하게 된다.
설립한 지 3년 된 회사인데, 매년 매출액이 들쭉날쭉하다. 원유 가격에 따라, 매출원가(운송료)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배, 비행기는 원유로 움직이는 운송수단, 그 자체 아니던가!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국가 간 교역량이 크게 감소해 회사의 매출이 잘 나올 리 없었다. 전 세계적인 경기부양책, 통화량 확대정책, 저금리 정책이 본격화되고, 코로나 엔데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자, 회사 매출액도 2배가량 급증했다.
[복합 국제물류 운송주선업]에 종사하다 보니, 전 세계적인 경기상황, 원유가격, 국제정세에 밝아질 수밖에 없다. 준비가 되어 있다면, 복잡한 국제정세도 사업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J 대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주목했다. 수소문 끝에, 한국에서 폴란드에 수출하는 항공기와 부속부품, 엔진부품을 운송주선하게 되었다. 아, 이런 비즈니스도 가능하구나! 특이하면서도, 신기했다. 뉴스에서만 들었던, 對 폴란드, 對 우크라이나 '무기수출' 비슷한 상황을, 무심코 방문한 작은 규모의 운송주선업체를 통해 직접 확인하다니.
고유가, 고물가, 전쟁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고통, 고난을 의미한다. 그러나, 소수의 기업가들은 이런 상황도 사업기회로 활용할 줄 안다.
물론, J 대표의 경우, 금액과 횟수 면에서, 큰돈을 벌었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자신의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 접근이 쉽지 않고, 민감도 높은 방산업체와 적극적으로 면담/소통하여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이로 인해, 카타르 항공사도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적극적인 영업력과 과감한 실행력이 발휘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간 쌓아온 이력과 경력, 국제정세를 읽는 능력도 한몫했을 것이다.
현재의 정세를 보고 있노라면, 전쟁지역으로의 항공기 운송, 무기 운송, 각종 소비재 운송, 산업용 필수품 운송 등의 시장은 당분간 꾸준히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J 대표도, 이러한 상황에 맞추어 배, 비행기의 공간을 좀 더 공격적으로 확보하고자, 자금을 신청했다. 시장상황, 국제정세, 운송비 변동가능성 등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내린 결론이다.
지구 한 편에서는,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이 한창이다. 이를 계기로, 서구권(미국 중심)과 동구권(중국 러시아 중심)은 다시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신 냉전의 시대, 다극화 시대가 도래했다. 미국의 영원한 우방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 위안화로 원유대금을 결제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뻔한 이야기지만, 이 세상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중요한 건,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고, 읽을 수 있는 역량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은 무탈하게 살아서는 절대로 탑재하기 힘든 능력이다.
전쟁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나고, 비즈니스는 펼쳐진다.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교과서 밖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사랑과 평화가 교과서 속 세상이라면, 갈등과 경쟁은 교과서 밖 세상이다. 과연, 어느 세상에 성공의 영역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을까. 답은 쉬워 보인다. 다만, 꼭 그렇게까지 하면서 사업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이르면, 말문이 막힌다. 비즈니스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나도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특별한 세상을 살고 싶다. 돈도 많이 벌고 싶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시시비비에 대한 논쟁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거나, 큰 리스크를 짊어지고 싶지는 않다. Low Risk, High Return을 바라는, 영락없는 도둑놈 심보다. 사업은 못 할 것 같다. 당분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과감한 실행력을 갖춘 창의적 기업가들을 발굴해 과감하게 지원하는 것이다.
오늘은 유난히 고민이 깊다. J 대표의 사업이 과연, 내가 생각하는 혁신성, 창의성, 부가가치성에 부합하는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사실, 전쟁 비즈니스에 일조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의 부담감도 든다.
하지만, 곧 직원을 추가로 고용하고, 컨테이너 상품창고도 확장하고, 제3국 상품수출 운송물량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 더 주목하기로 했다. 더구나, 수출입 화물 운송주선업은 고난도의 유망 서비스업 아니던가. 이제 더 이상의 고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언제나처럼, 재창업가의 기업가정신, 도전정신은 박수받을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