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선택

무모한 선택이 기적을 낳는다

by 임요세프

2000년대 초반, 나름대로는 졸업 준비, 취업 준비한다고, 학교 중앙도서관에서 공부한 날들이 있었다. 대학교 1~2학년 때 많이 까먹은(!) 학점을, 복학생이 되어 만회해야 했다. 영어, 경제학, 상식 공부도 병행하며, 남들 보기에 쪽팔리지 않은(!) 직장에 들어가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시절이다. 체면이 전부였던 때였다.

그 시절, 도서관 내 같은 자리를 맡아두고 들락날락거리다 보니, 주변 학생들의 얼굴도 차츰 익숙해졌다.


그중엔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가수 이소은도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녀의 존재를 인지했던 건 아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유독 그녀에게 많이 향했고, 왜들 한 사람에게 주목하는 거지? 하다가, 나도 뒤늦게 알아본 거였다.


여느 고시생, 취업준비생들과는 달리, 영문학 서적을 펼쳐놓고, 열중하던 그녀의 모습이 생생하다. 속이 꽉 찬 느낌이었고, 편견을 깨는 행보였다. 흔히 말하는 연예인 필(Feel)이 나기는커녕, 영락없는 모범생이었다.


물론, 우리(?) 사이엔 아무런 에피소드가 없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했다는 점도, 나만 아는 비밀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특별히 무모한(혹은 과감한) 선택을 하지 않았던 나는, 지금의 모습 이대로다. 우리는 모두 각자 인생의 주인공이라지만, 냉정히 말해서, 평범한 40대 중년의 가장, 회사원, 소시민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굳이 좋게 표현하면, 우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 민주시민, 성실한 납세자로도 불릴 수 있겠으나, 왠지 궁색하다. 무사히 정년으로 퇴직해, 죽을 때까지 연금 받다가, 인생 마감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하기까지 하다. 더 늦기 전 변화, 과감한 선택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 주말,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유퀴즈에 출연한 이소은을 보았다. 불현듯, 20년 전 중앙도서관이 떠올랐다. 분명, 잠시나마 같은 공간을 공유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 우린 너무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내용을 들어보니, 그녀는 가수에서 대학생, 미국 유학생을 거쳐, 마침내 (뉴욕) 변호사가 되었다. 국제단체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 중이고, 가수로서의 꿈도 현재 진행형인 듯하다.

처음엔, 이상한 자격지심도 들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존경할 만한 삶의 여정이다. 그녀는, 중학생 시절, 자신이 만든 노래로 가요제에 참여했다가, 눈여겨보던 뮤지션 윤상의 추천으로 가수로 데뷔했다.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잘 자란 것도 자기 복이고, 윤상/김동률/이승환 같은 당대 최고의 음악인들을 만나, 좋은 결과물(히트곡)을 다수 만들어 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행운이다. 게다가, 명문대생 타이틀까지 얻었으니, 남들이 보기엔, [인생은 OOO처럼!]의 당사자라 보아도 무방할 수준이다.


하지만, 그녀는 무모한 선택을 했다. 가수 생활 10년을 뒤로하고, 미국 유학을 선택한 것이다. 흔히 예상하는 2~3년의 학위과정도 아니고, 변호사 시험이라는, 생뚱맞고 무모한 도전이다. 잘은 모르지만, 한국 가요계에서도 전무후무한 도전,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기록 달성이 아닐까 싶다.




그녀는, 공교롭게도, 무한도전의 아이콘, 유재석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무모했던(!) 도전 스토리를 담담하게 전달했다. TV 화면에서는 그녀가 미국 뉴욕주의 변호사가 되어 열심히 일하는 모습, 국제기구에서 활약하는 모습, 재능기부와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이,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어졌다.


널브러진 자세로 편한 소파에 누워, 두 사람이 나누는 유쾌한 담소와 영상 화면에만 집중하다 보면, 실제로 그녀가 얼마나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 그녀의 시행착오 스토리 이어다. 어려서부터 영어에는 자신감 있었음에도, 법률용어는 전혀 다른 세상의 언어였다.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우고,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이냐며 스스로 후회도 많이 했다. 혹자들은, 아니 어쩌면 많은 이들이, 시기와 질투, 의심의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기도 했다.


결국,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원하는 결과를 내기까지 필요했던 건, 10년의 시간이었다. 긴 세월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가수로 보낸 첫 10년과 비슷한 시간이 걸렸다. 어린 시절의 행운을 실력으로 돌려놓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그녀의 인생은 무모한 선택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성실하고 착실했던 10대 소녀가, 자작곡을 만들어 TV 가요제에 출연한다는 것부터 남다르다. 당초에 1등을 기대했던 것 같지는 않다. 만, 최고 가창력의 가수, 혹은 창의성으로 도드라지는 최고 작곡가만 참석하라는 법은 없다.

다소 부족하더라도, 일단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 하필이면, 그 프로그램을, 뮤지션들의 뮤지션이라고 불리는 윤상이 보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천하의 윤상이, 적극적으로 먼저 연락하는 스타일인 줄은, 또 누가 알았겠는가.


결국, 선택에 선택을 거듭하던 이소은은, 자신의 노래처럼, 변호사가 되는 ‘기적’도 이루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평생을 함께할 ‘서방님’도 만났다. 가수는 노래 제목 따라간다는 말도 맞는 것 같다.


무모한 선택은 이렇게,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는다. 과감한 도전이 열 번, 스무 번 반복되면, 확률적으로도, 무슨 일이든 반드시 생기게 되어 있다.




과감하고 무모한 선택이라면, 오늘 만난 M 대표 역시 만만치 않다. 그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OO자동차에 입사했다. 본인 말로는, 1990년대 후반, 세피아 초기모델을 거의 자기가 세팅했다 한다. 물론, 50대 아재들의 군대 무용담, 직장생활 에피소드는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대기업 입사 후, 누군가 승승장구하는 이야기라면, 여기 브런치에 등장할 이유는 없다. 한 기업가의 역경 극복기가 제격이다. 역시나(?), M 대표가 입사한 지 3년 만에 IMF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회사는 부도 처리되었다.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몇 달간 급여를 받지 못했지만, 젊음과 애사심을 무기로, 사표를 내지 않고 버텼다. 회사에 남고 싶었으나, 퇴직금 포기각서를 쓰라는 제안은, 차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열심히 일했으니, 더 이상의 미련은 없었다. 30대 초반, 뜨거운 심장을 가진 대기업 엔지니어는, 그렇게 [플랜 B] 없이 대기업을 퇴사했다.



세피아 자동차를 설계했다는 이유로, 그를 스카우트 해가는 이는 없었다. 정말, 대기업 퇴사는 무모한 선택이었을까. 그도 사람인지라, 현실이 불안했고, 한 집안 가장으로서의 위신도 말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멀쩡한 M이 실업자로 지내는 걸 보다 못한 친척분이, 작은 규모의 사료 수입업체를 소개해 줬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전공도, 적성도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자존심 센 자동차 엔지니어는, 어느새 동물용 사료 수입과 국내 영업을 담당하는 영업사원이 되어 있었다.


엔지니어가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천생 영업통이었다. 미국, 중국, 이집트 등 동서양 가릴 거 없이 출장 다니며, 밀가루/옥수수/콩/에탄올 제조공장에서 산출되는 부산물(사료 원료)을 수입했다. 즐겁게 일하다 보니, 은행에 가서 L/C(수입 신용장) 개설하는 것도, 국내외 신규 거래처 발굴하는 영업활동도 재미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공계 출신들이 문과생들의 영역(재무/회계/전략/법률)까지 섭렵하게 되면, 경쟁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경영학 전공자들은, 더 늦기 전에, 코딩부터 다시 익힐 필요가 있다.




M 대표는 입사 후 3년여 만에, 독립하여 법인을 설립했다. 유통업(도매업)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업종이 아닌 관계로, 경쟁은 치열했다. 경영에 왕도는 없다. 그저, 다른 경쟁기업들보다 한발 빠른 대응으로 고객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수용하고, 이익률은 최소화하며, 10년을 버텼다.

틈나는 대로, 대기업을 찾아가 거래처 등록을 요청했으나,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수년간 거절당했다. 수입 전문업체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은행 L/C 거래도 늘어나자, 하나둘 큰 규모의 거래처들과도 계약을 체결했다.


이제, M 대표의 회사는 사조대림, 대한제분, SPC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부터 동물 사료용 밀가루 부산물을 대량으로 매입한다. 국내외 대형업체들로부터 안정적으로 원재료를 조달받게 되니, 가격경쟁력도 확보되었다. 거래처 수가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500억 원 이상 매출액을 달성한 지도, 이제 5년이 넘어간다.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매년 수출입 거래 규모가 큰 폭으로 증가하다 보니, 국제 곡물 가격과 환율 변동성에 대한 대응이 어려웠다. 환율 관리에 서투르다 보니 재작년엔 환차손만 수억 원이었다. 다행히, 은행에서도 도움을 주고(환변동 보험 가입), 전문가를 채용해서 선물환 관리에도 신경을 쓰니, 이젠, 영업외수익으로 환차익도 발생한다.

회사 규모가 커지고, 인력이 고급화되니, 업무는 시스템화된다. J 대표는 나와 미팅하기 전,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 열흘 정도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래도, 회사는 별 어려움 없이 잘 돌아간다.


재무제표나 감사보고서를 살펴보아도, 특별히 부각되는 재무적 부실 징후는 없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다. 거래처 매출채권 관리, 환리스크 관리, 주요 매입처 결제 관리만 잘하면, 앞으로도 계속기업으로 꾸준히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변화다.


개인의 무모한 선택이 사회적, 경제적 진보를 낳는다. 이소은 변호사도, M 대표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모한 선택을 하고 난 후에야, 사회적 성공과 경제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양자역학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해당 학문을 온전히 이해하는 학자 수도 많지 않다고 하니, 전형적인 문과 출신인 내가 양자역학을 함부로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저,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히기 위한, 나름의 부 정도로 이해해주면 충분하다.


기존 물리학에서 적용되던 결정론과는 다르게, 양자역학에서는 원자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가 입자적 성질과 파동적 성질, 두 가지 성질을 모두 갖는다고 본다.


어떤 실체라도 서로 상충되는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그 실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그 성질 중 하나가 선택, 관찰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두 가지 성질이 동시에 존재하더라도, 우리는 한 가지 만을 선택(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의 삶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우리가 한 선택들이 쌓여 지금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만, 우리는 늘 새로운 것과 낡은 것, 즉흥성과 꾸준함, 부드러움과 강함, 냉철함과 따뜻함, 엄격함과 관용 등 물리적으로 상반된 두 상황 속에서 고민하고, 결론 내린다. 따라서, 다소 무모해 보인다 해도, 우리의 개별적 선택이, 실은 하나의 원자 속 입자와 파동 간 고도의 결합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실수 속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무모함 속에서 지혜를 터득한다.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취하기 위한 노력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이끄는 원천이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모든 선택은 무모하면서도 완벽하다.


어차피,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 C(Choice)의 연속이다. 과감하게 살 필요가 있다. 최소한, 묘비명에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다는 내용만을 남기고 떠날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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