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정책금융의 역할

by 임요세프

장사꾼과 사업가, 기업가의 차이는 무엇일까. 언뜻 생각하면, 말장난 같기도 하나, 곰곰이 들여다보면 사업 규모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스노폭스의 김승호 회장은 최신작 ‘사장학 개론’을 통해 장사와 사업의 차이를 알기 쉽게 구별했다. 첫째, 사장의 업무 능력이 직원들보다 뛰어나면 장사고, 직원들이 사장보다 뛰어나면 사업이다. 직원을 키우고 믿어줘야 사업 규모가 성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둘째, 시장의 규모다. 나의 경쟁자가 나로부터 멀리까지 존재할 때 내 회사가 장사가 아닌 사업의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다. 사업 영역에 대한 대표의 시야와 이해력이 중요하다는 거다.


셋째, 수입을 만드는 방식이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수입을 창출한다. 음식 조리, 서빙, 배달까지 1인 3역을 다 한다면, 그건 장사다. 반면, 사업은 대표의 노동력과 별개로, 무한대의 수입, 노동과 상관없는 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모두 사업의 확장성에 대한 설명이다. 십분 동의한다. 다만, 사업가와 기업가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마차를 아무리 연결해도, 철도가 되지는 않는다”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멋진 표현이다. 창조적 혁신이 무엇이고,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설명하기에 좋은 문구이기도 하다. 혁신은 불연속적인 변화이고, 그 핵심은 새로운 결합에 있다. 신 결합, 즉, 혁신은 구체적으로 5가지의 경우를 포함한다고 했다. 새로운 상품, 새로운 생산방법, 새로운 시장, 새로운 원자재(공급원)의 발굴, 새로운 조직 등이다.


그렇다. 기업가는 다름 아닌, 새로운 결합을 해내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니, 자영업자, 사업가는 많아도 기업가는 많지 않은 것이다. 함부로 기업인 호칭을 달아 줄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2023년을 사는 우리가 20세기 초반의 경제학자 슘페터의 정의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는 창조적 파괴의 개념을 도입한 훌륭한 (이론) 경제학자였기는 해도, 현실적으로는 경제공황과 은행 파산을 막지 못한 관료(장관, 은행장)이자, 개인 투자에 실패해 빚에 허덕인 적도 있는 보통의 사람이기도 했다. 이론과 현실 간 차이는 크다.




다시 정의하면, 기업가는 기존의 제품(상품 또는 서비스를 포함)과는 다른, 한 끗 차이를 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우리에게 더 나은 만족감(효용)을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지식재산권(IP)으로 구체화된다.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은 인간의 지적 창조물 중에서 법으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에 대한 법적 권리를 의미한다. 산업 재산권에는 특허권, 실용신안권, 디자인권, 상표권 등이 있고, 저작권은 글, 영화, 음악, 그림 등 새로운 예술 작품에 대한 권리를 의미한다.


이제 좀 명확해졌다. 지식재산권을 보유 중인 기업, R&D 투자를 꾸준히 하는 기업, 새로운 아이템 개발에 적극적인 기업이 바로, 혁신기업이고, 그 기업의 CEO가 바로 (창조적) 기업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만난 J 대표는 명실공히 기업가다. 원래, 그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보험회사에 취업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형적인 인문계 출신 직장인의 모습이다. 하지만, 일이 영 적성에 맞지 않았고, 고민 끝에 전혀 다른 업종의 회사로 이직했다.


새로운 도전이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낳는 법이다.


옮긴 곳은 산업 안전용품을 개발, 생산하는 회사였다. 산업현장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보호장비인 안전모, 무릎 보호대, 발목 보호대, 장갑, 세이프티 바(Bar), 리프트 등을 개발, 생산하는 법인이었다. 영업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라도, 제품 기술에 대한 이해는 필수였다.

그는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해 산업 안전 공학 분야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박사과정에도 진학했다. 얼마 전에는 지도 교수님과 함께 해당 분야 책도 집필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전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분을 인수하고, 급기야 대표이사의 자리에까지 앉게 되었다.


불과 7년 사이, J는 완벽하게 변신했고, 회사의 사업은 재편되었다. 이런 변화를 유식한 말로는 피봇팅(Pivoting, 사업 방향의 대전환)이라고 한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생산 제품에도 업그레이드가 필요했다. 안전모에는 인공지능(AI) 카메라를 장착했다. 무릎 보호대와 발목 보호대는 사용자 편의성을 높였다. 지게차와 리프팅 기계도 자동화(인공지능 로봇)했다.


그 과정에서 다른 회사들과의 기술 협업은 필수였고, 테스트에 성공한 후 시제품 생산은 외부에 위탁했다. 내부 자원이 부족하니, 기술개발 전문기업으로 거듭나야 했다. 생산장비, 기계설비까지 도입해 제품 생산까지 도맡아 하자면, 투자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용 안전용품 개발 기업 타이틀만으로는 부족했다. 회사가 계속기업으로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필요했다.


J 대표는 직원들과 합심하여 계속 특허를 출원했고, 총 7건의 특허권 등록에 성공했다. 개인 명의로 취득한 특허권도 여러 개였는데, 제품화에 성공한 후에는, 과감히 회사에 양도했다.




20대의 낭만적 영문학도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변신을 거듭해, 어느새 40대의 기술형 CEO가 되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좋고 나쁨도 없다. 문학도가 문단에 등단하는 대신, 특허권자로 이름을 올린 것뿐이다. 하지만, 이게 바로 창조적 파괴의 증거 아니겠는가.


기업가가 혁신의 주체라는 슘페터의 주장은, 그래서 참이다. 단, 이론적 배경과 실무 역량을 겸비한 기업가여야 한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기존 제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제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돈과 기술, 인력,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무엇하나 저절로 생기는 건 없다. 이 땅에서 기술 기반의 제조업이 생존하기 어려운 이유다. J의 회사도 예외는 아니다.


외부 대출금(차입금)은 계속 늘어났고, 매출은 정체했다.


특허권 하나 신청하고, 평가받고, 등록하는 데도 최소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이에도, R&D 투자, 기술 협업, 테스트, 시제품 생산은 계속되어야 한다. 자금과 인력은 계속 투입되어야 한다.

모두가 인정하는 지식기반 기업이 되어야 했기에, 기업부설 연구소, 벤처기업, 이노비즈 기업, 경영혁신형 중소기업 등록도 마쳤다. 모두 역량이 투입되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그러나, 처음 대면했을 때, J 대표의 법인은 한계기업으로 비추어졌다. 회사의 매출액보다 대출금 규모가 더 크기 때문이다. 물론,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기업 내부 역량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나 같은 외부인을 만난건, 지금보면 J 대표의 복이다 !


기술개발, 제품 개발에 특화된 기업이다 보니, 특별히 돈 되는 부동산이나, 유형자산도 눈에 띄지 않는다. 오로지, 영업권, 개발비(특허권)만 두드러질 뿐이었다.


더구나, 작년, 재작년은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었고, 현대차/기아차 같은 기존 거래처들도 산업현장 노동자들의 휴업이 잦았다. 생산 현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으니, 기존 산업 안전 용품에 대한 수요가 줄었고, 회사의 매출액 감소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야심 차게 추진하던 공장 신축 프로젝트도 원자재 가격의 급등으로 중단되었고, 이와 관련해 제2금융권에서 조달한 고금리의 시설자금 대출금은 여전히 보유 중이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이다. 매출은 정체이지만, 생존과 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템 개발을 지속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돈과 자원은 계속 투입될 수밖에 없다. 기술 인력에 대한 인건비 줄이기는, 타는 불에 기름 붓기다.


매월 이자 비용만 2천만 원에 달하니, 새로운 돌파구, 그리고 외부의 긴급 수혈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다행히, 회사의 기술력을 높이 평가한 외국계 투자법인에서, 작년 말에 수억 원을 투자했고, 동시에 전환사채도 인수했다. 1차 고비는 무사히 넘겼다. 아니, 고비를 넘긴 수준이 아니라,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수준이다.


역시, 정부보다는 시장이, 신속하고, 과감하다.


벤처 자본의 도움으로, 회사는 공기 필터 제조 관련 특허권과 흡연 부스 제조 시스템 특허권을 등록했다. 기존 제품들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신규 아이템이다.


나는 이 특허 기술에 주목했다. 3주일 정도의 시간을 두고 방법을 모색했다. 우선, 고금리 대출 정리가 급선무였다. J 대표와 협의하여 공장용 토지를 매각하기로 했다. 다행히, 산업 단지 내 공장용지이기 때문에 다른 회사들의 매입 문의가 꾸준한 편이다. 그리고, 시 공무원들도 지역 산업 단지의 순조로운 조성을 위해 매입/매각 업무에 협조적이다. 조만간, 십수억 원에 이르는 대출금은 상환할 수 있을 듯하다.

필요한 것은 장기 저리의 정책금융 지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회사가 십억 원 정도의 정책금융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했고, 때마침 IP 금융이 떠올랐다.


최근 시제품 개발에 성공한 [흡연 부스 시스템]과 제조 핵심 기술인 [공기 필터 특허권]의 IP 가치를 측정해 보기로 하고, 발명진흥회에 기술평가를 의뢰했다.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았는지, 그사이 회사는 협업 관계에 있는 유럽 회사에서 수입한 [쿨조끼]를 국내 유명 아웃도어 의류기업에 대량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올여름 날씨가 유난히 더울 것이라는 예상, 코로나 엔데믹으로 근로자들의 야외 업무가 다시 활성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제대로 맞아떨어진 결과다. 가뭄에 내린 단비였다. 여름에는 [쿨조끼], 겨울에는 [웜조끼] 판매로 이어질 수 있다니 더 다행스럽다.


올해 4월까지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증가한 것을 확인하니, 내게도 확신이 생겼다. 9회 말 구원 투수가 되어야겠다는 확신 말이다. 창조적 기업가는 파괴적 정책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


얼마 전, 수억 원에 달하는 IP 가치평가 금융지원이 결정됐다. 단기간 누적적 자금지원에 대한 금융 리스크는, 과감히 내가 짊어지기로 결심했다. 이게, 정책금융의 역할 아니겠는가.



누구나 플랫폼 기업을 만들고 싶어 한다.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플랫폼(Platform_애플리케이션)은 콘텐츠와 콘텐츠를 결합해 주는 도구이기는 해도, 그 자체가 새로운 결합, 즉, 혁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조금 과하게 표현하자면, 여러 가지 제품을 포장해 주는 포장지, 보따리가 썩 대단한 발명품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기업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다른 문제다)


J 대표도, 젊은 기업가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플랫폼 기업을 만들고, 대규모 투자유치와 홍보에 성공해, 유니콘기업으로 성장하는 걸 보면, 마냥 부러울 뿐이란다.


하필이면 왜 제조업체를 인수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본인도 잘 이해가 안 된다는 푸념이다. 얘기가 길어지다 보니, 어렵게 취득한 지식재산권과 인증실적들도 모두 부질없는 결과치라는 데까지 이르렀다.


수십억 원의 대출금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기업인은 없다. 하지만, 그의 한숨은 일시적인 것이다. 그동안 구축된 회사의 흡수역량, 그리고 신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의 푸념에 동의하기 어렵다. 좀 고리타분해 보여도 할 수 없다. 공장을 짓고, 중후장대한 생산 설비와 기계장치를 도입해 제품을 생산하고, 생산량 증대를 위해 추가적 시설투자와 기술개발을 단행하는, 이 땅의 제조기업은 정부영역에서 최대한 지원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제품을 생산해 잔뜩 재고로 쌓아두는, 말 그대로의 한계기업이 되지 않는 한, 제조 기반의 기술기업, 지식기반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우대되어야 한다.


법으로 보호되는 특허권도, 정부의 이름으로 내어준 각종 인증도, 모두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 교환가치 및 장부가치로 인정해줘야 한다. 그런 게 제도권의 역할이자, 적극 행정이다.

누군가는 소를 키워야 한다. 일단 소를 키워야, 밭을 갈든, 안심 스테이크를 요리하든, 소의 눈물을 주제로 영화를 제작하든 할 것 아닌가.


제조업은 소를 키우는 일이다. 나의 역할은 그가 소의 고삐를 잘 매도록 채비를 갖추는 일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J 대표와 임직원들의 몫이다. 부디, 그가 지금의 난관을 잘 극복하고, 앞으로도 우직하게 소들을 잘 키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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