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기업 다시 살리기

기사회생의 가능성

by 임요세프

Born Again. 1985년 기타리스트 김태원이 주축이 되어 탄생한 그룹 부활이 결성된 지 벌써 40년이 다 되어 간다. 김태원은 늘, 부활 이름 덕분인지,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잘 극복해 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잊힐 때쯤 히트곡이 나오고, 쓰러질 때쯤 훌륭한 보컬리스트가 나타났고, 철천지원수라 생각했던 인연(이승철)과의 재회로 영원히 계속될 명곡(Never ending story)도 탄생했다.


이승철의 싸인에도 Born Again 문구가 들어가 있다. 옛 부활 시절에 대한 추억, 초심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가짐,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겠다는 자기 주문이 아닐까 싶다.


이름은 잘 짓고 볼 일이다.

예술의 영역이야 그렇다 쳐도, 한 번 망한 기업, 실패한 경험이 있는 기업가도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몽상가의 말 안 되는 이야기일 뿐일까?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예고 없이 갑자기 쓰러져버린 기업의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가끔은, 과거에 취급한,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회사의 부도/폐업 소식도 들린다. 그럴 때마다, 사장님에 대한 배신감, 안타까움, 걱정, 정기(특별) 감사에 대한 두려움 등등 여러 가지 감정이 든다. 그래도, 20년을 다니다 보니, 어느 정도 단련됐는지, 생각보다는 오래 버텼네, 역시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곤 한다.

오늘 아침에도 여지없이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3년 전,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때 나를 찾아와, 비대면 서비스를 강화하겠다며, 야심 찬 자신감을 보여주던, 청년 기업가 K의 폐업 소식이었다. 들리는 풍문으로는, 사업은 잘 되었다던데, 차도 바꾸고, 직원도 늘어나고 하다 보니, 마음이 콩밭에 갔는지, 방심했었나 보다.


초심을 잃는 순간, 이 정도면 됐다 하고 마음을 놓는 순간, 몰래 뒤에 숨어 있던 가혹한 운명의 신이 여지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저간의 사정을 들어보고자 전화를 걸었다. 결번이었다. 이렇게 연락 두절이 되고, 주변 사람들과 인연을 끊어버리는 경우엔, 다시 회생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상황을 회피하는 건 하책이다.


기업가에겐 신용평가 점수보다, 위기를 수습하려는 의지, 주변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대응 태도 같은 사후관리 역량이 중요하다. 아무래도, K가 스스로 기회를 날려버리는 거 같아, 그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실, 치열한 경쟁사회,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 같은 상품, 유사한 서비스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기업의 소멸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비밀(Secret)은, 우리에게 알려진 이상, 더 이상 비밀이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 매스컴과 유튜브, SNS가 신화 같은 성공담을 계속 알려 온다. 저, 성공 확률이 매우 낮다는 사실이 잘 전달되지 않을 뿐이다. 알다시피,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성공은, 특히나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성공은, 사실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도드라지는 거라고 해도, 완전히 빈말은 아니다.

그저, 나만큼은 우리 회사만은 예외이길 바라지만,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냉정한 시각으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2021년 한 해에만 102만 개의 기업이 생겨났고, 그중 76만 개의 기업이 소멸했다. 폐업률 74.5%, 생존율 25.5%다. 2021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의 생존율은 창업 후 1년 64.8%에서 5년 33.8%로 떨어진다. 1년 안에 셋 중 하나는 망하고, 5년이 지나면 셋 중 하나만 살아남는 게 현실이다.


2022년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 결과에 따르면, 영업이익으로 은행 이자를 감당하기도 힘든 한계기업이 전체의 35% 수준에 이르고, 기업 부채비율도 9년 만에 최고치라고 한다. 외부감사 기업의 차입금 의존도 (28.2%)와 부채비율(102.4%)도 모두 역대 최고치 수준이다.


물론, 잘되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다 잘될 거 같으면 누가 사업을 하지 않겠는가.


코로나로 매출이 갑자기 반토막 나고, 거래처가 부도나 판매대금이 안 들어오고, 핵심 직원이 느닷없이 경쟁사로 이직해 버리고, 은행 금리가 2배 이상 오르는 건, CEO가 예상하기 힘든 변수들이다.


통제하지 못할 이유로 쓰러지는 회사들은 많다.




사업이 잘 운영되는 동안에는 가족, 지인, 친인척, 직원, 거래처, 은행(정책금융기관), 정부 등 온 세상이 회사 편이다. 그러나, 회사가 어려워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방은 적이 되고, 사장 혼자 남는다.


마지막 기댈 곳은, 사법기관(법원)뿐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세상사와 가장 동떨어져 있을 법한, 고귀하고 비현실적인 느낌의 법원이 최후의 보루라니.


여하튼, 채무조정(빚 탕감)을 통한 경영정상화를 원하는 기업은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할 일이다.

삼권분립이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라는 건 배웠어도, 기업가가 투자자, 채권자가 아닌, 변호사를 찾아가 조력을 구하고, 법원에 구제를 신청하는 상황은, 쉽게 상상하기 힘든 그림이다. 그래도, 참 다행스럽다.


이런 걸 두고, 수정자본주의 혹은 자본주의 4.0, 인간의 모습을 한 자본주의 시스템이라고 하는 걸지도.

어떤 이유에서건, 성장 동력을 상실한 기업은 매출 급감, 수익성 악화, 부채비율 급등으로 한계에 처한다. 화재나 태풍, 수해와 같은 자연재해, 임직원의 횡령/배임 같은 사고를 피하지 못한 기업들도 많다. 사업실패는 제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 기업회생 제도(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이른바 통합도산법)가 도입된 2006년부터 2020년까지 총 10,693개 기업이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같은 기간, 파산을 신청한 기업도 6,228개에 달한다.


특이한 건, 2020년 한 해 동안은 코로나로 인해 사업을 포기한 기업이 늘어나, 회생을 신청한 기업 수는 감소하고, 오히려 파산을 신청한 기업 수가 처음으로 1,000개를 넘었다. 코로나가 남기고 간 상처는 크다.

또 하나, 회생 신청기업 중 외감기업*의 비중이 계속 감소세다. 30%대에서 최근 9%대까지 줄었다. 외감기업은 자산총액이나 고용 규모가 일반 중소기업보다 더 크고, 보유 기술력과 사업 아이템 역시 부가가치가 큰 경우가 많다.

사회적으로 이들 기업의 재건은 중요하다. 그런데도, 회생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건, 기업의 부실 규모나 원인이 복잡해, 회생절차를 통한 구조조정이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 외감기업(외부감사 기업) : 상장기업, 코스닥기업, 자산 120억 이상 & 매출액 100억 이상인 기업, 자산이나 매출액이 500억 원 이상인 주식회사나 유한회사.



그런데,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2010~2019년 전체 기업회생 신청기업의 회생 계획 인가율은 연평균 50%, 인가기업의 회생절차 정상 종결률은 59% 수준이다. 0.5 곱하기 0.59는 0.295니까, 약 30%이다. 망했던 기업의 성공확률로 본다면, 생각보다 높은 수치다.


2006~2018년 기간 동안 외감기업을 대상으로 데이터를 분석해 본 결과도, 기업회생 인가율은 74%, 종결률 51% 수준이다. 성공률이 약 38%에 이른다.

대표자의 재기 의지가 사라지거나, 의지는 충만해도 회사 여건이 뒤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면, 회생 제도의 문턱은 예상보다 높지 않다. 물론, 회생계획안이 인가되면, 기존 주주나 채권자들의 권리는 크게 약화된다. 턱없는 회생계획안을 제출한다면, 채권자들은 돈을 못 받는 한이 있더라도, 계획안을 부결시킬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고의부도가 아닌 이상, 회사가 일시적 유동성 위기만 벗어나면, 다시 정상화의 궤도에 오를 수 있다고 판단하는 한, 법원도, 채권자도, 주주도, 거래처도, 기사회생 (起死回生)을 도우려 한다. 기꺼이 권리락(權利落)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 회계법인도 기업의 존속 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다는 계산으로, 기업 재건에 힘을 보탠다.

따라서, 성실한 실패기업, 채무부담(부채비율) 조정으로 제2의 도약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보유한 기업가라면, 기꺼이 회생 제도를 이용할 일이다.


채권자에게도, 채무감면 및 출자전환은 나중에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 실제로, 우리 회사도 모 기업의 회생절차 종결 및 주식 재상장으로 수십억 원의 이익을 본 적이 있다. 이런 행운의 사례는 많다.


기업회생 인가기업의 재무적 성과가 미인가 기업보다 우수하다는 연구 결과, 회생 절차를 정상적으로 졸업한 기업의 경영성과가 유의적이라는 통계 결과도 확인된다.

2021.12월 자본시장연구원의 연구보고서 [기업회생 신청기업의 재무성과 분석]에 따르면, 회생 종결 기업의 매출액, 총자산 규모가 증가세임이 (통계적으로) 확인됐다.

다만, 수익성 회복에는 한계가 있고, 매출액도 회생 신청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낙인효과 때문이다. 기업의 재도약은 고객 확보와 수주 확보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아무래도 회생기업은 거래 상대방으로부터 현금거래를 요청받거나, 보증금 같은 각종 안전장치를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 기술 개발과 투자도 위축되고, 영업도 예전만 못하다. 그러면서 2년 동안 빚도 갚아야 한다. 회복 탄력성의 한계는 부득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생 절차를 졸업한 기업의 성장성이 확인된다는 건, 긍정적이다. 니, 기대 이상이다.


따라서, 회생절차를 잘 졸업한 기업에게는, 정책기관을 통한 후속적 도움을 줘서라도, 재도약의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


다행히, 2019년부터 회생 중소기업에 대한 신규자금지원 (DIP 금융*) 정책이 시행 중이라고 한다. 물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중복지원과 같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 DIP(Debtor In Possession) 금융: 회생 기업의 기존 경영인에게 경영권을 인정해 주고, 신규 자금을 공급해 경영정상화를 지원하는 정책금융 제도. 자산관리공사 (KAMCO)에서 시행 중임.

2022년 산업경제연구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2020년 DIP 금융을 지원받은 51개 기업과 지원받지 못한 83개 기업, 총 134개 기업을 대상으로, 자금지원 전과 후를 비교 분석한 결과, 자금지원을 받은 기업의 매출액 반등(성공)이 확인됐다. 지원받지 못한 기업들 대비 무려 25% 이상 성장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회생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전략적 투자자, 재무적 투자자, 사모펀드 등 외부인들로부터 M&A(인수합병) 투자 제안이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기업회생을 신청한 외감기업 1,530개 중 M&A 방식으로 회생 종결에 이른 기업의 비중이 49%에 달한다.

회사의 성장성(매출액 증가율) 측면에서는, 인수합병을 통한 회생절차 종결이 더 유리하다는 결과도 확인된다. 아무래도, 신규 투자자금이 유입되고, 새로운 경영진의 적극적인 성장 의지도 반영되기 때문이리라.

채무조정(채무감면, 채무상환, 출자전환)을 통한 회생 종결이든, M&A를 통한 종결이든 간에 회생 기업의 재무적 성과가 개선된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회생을 통한 부채비율 인하도 기업의 부담감을 낮추고, 재도약 의지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기제다.


요컨대, 기업회생 제도는 채무조정을 통한 기업 재건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경쟁력을 잃지 않은 기업에는 DIP 금융지원, 인수합병 등 의외의 기회도 생긴다.




실패한 기업 다시 살리기, 이른바 부활(Born Again) 프로젝트는, 유효하다.

사업 실패라는 낭떠러지 앞에서도, 마지막까지 기회를 찾으려는 법인기업에는 기업회생 제도가, 개인사업자에게는 개인회생 제도가, 최악의 경우엔, 보유 자산(재산)을 총망라해 채권자에게 나누어주고(배당), 나머지 재산상 책임을 면한 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파산/면책 제도가 있다.


숨지만 않으면 될 일이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길을 찾는 한, 기사회생의 기회는 있다.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빚을 탕감해 준다는데, 외면할 필요 있겠는가. 기업가는 회생절차를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CEO의 용기는 디폴트 값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부디, 청년 기업가 K에게도 이 메시지가 전해지기를.


<참고> 회생 기업은 데이터를 공개하는 데 소극적이다. 그래서, 회생 기업 관련 연구 결과나 통계자료에 한계가 많다. 이 글도, 논문이 아니다. 그래서 누적된 데이터를 토대로 한 객관적인 결과분석보다는, 아무래도, 희망적인 메시지 중심으로 전개했다. 독자들의 양해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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