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은 참 묘한 동네다. 예쁘고 분위기 좋은 맛집, 브런치 카페, 커피숍이 모여 있어 SNS 명소가 많다. 가죽공방, 도자기 공방, 향수 공방, 수제화(구두) 가게와 같은 아기자기한 매장들도 눈에 띈다. 동시에 오래된 공장용 건물, 빈 창고들도 혼합되어 있다.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다 보니, 골목골목 걷기에도 참 좋다. 정리되지 않은 동네 같지만,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MZ들이 힙(Hip)한 감성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데이트하거나, 놀러 가는 성수동이 아니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아는 사람들만 출입하는 오래된 구두공장, 주택을 개조한 가죽공방, 금속 장신구매장은, 사실 치열한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L 대표는 일할 목적으로 매일 성수동으로 출근한다. 40년 된 단독주택을 개조한, 두세 평 남짓한 공간에서 여러 가지 금속제품을 만든다. 황동을 녹여서 만든 명함꽂이, 거치대, 금속 책갈피, 책 거치대, 카페 메뉴판, 냅킨꽂이, 기념패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조그마한 금속제품 안에 친구나 연인, 부모와 자녀 등 특별한 관계의 징표나 문구를 새기고자 하는 수요는 꾸준하다.
L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주로 활용한다. 본인이 직접 디자인등록, 상표권등록을 마친 다양한 금속제품, 리퍼 제품을 사진 찍어 올려 두고, 고객의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제작해서 판매한다.
비슷한 형태의 금속제품 결과물을 반복적으로 생산하는데 쓰이는 <금형>과 <프레스기>, 그리고 3D 도면설계 프로그램(CAD)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버지 때부터 거래하던 외부업체들에 초벌 가공을 주로 맡긴다. 제품의 마지막 후가공과 점검, 포장과 배달이 L 대표의 몫이다.
낯선 경험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복판 성수에서, 소품종 다량 생산도 아닌, 다품종 소량 생산 전문 제조업이라니. 쉽게 상상이 안 되는 그림이다.
본래, L의 부친이 합금과 아연 제조 사업을 크게 했다. 지금 L 대표가 운영 중인 개인기업 상호 앞에 주식회사라는 글자만 추가된 회사였다. 1980년대 초반에 사업을 시작해 20년 이상을 경영했으니, 부친은 사업하면서 결혼도 하고, 아들딸도 다 키운 셈이다.
L은 사업하는 아버지를 도왔다. 사내이사에 이름도 올리고, 지분도 보유하고 있었으니, 과점주주인 이사에 해당했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기업에서 은행 대출받을 때는, 대표이사는 물론, 대표이사와 특수관계라는 이유만으로, 배우자나 자녀들이 기업채무를 연대 보증하는 경우가 많았다.
L도 그런 경우였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은행이 부르면 쫓아가서 서명해야 했다. 20대 때의 L은 아마 연대보증이 무언지도 몰랐을 것이다. 제조업은 금융(대출) 활용이 불가피하다. 공장이나 기계설비, 시설 장치 도입에 워낙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부푼 희망으로 공장을 신축하고, 기계설비를 확충하고, 원재료 구매도 늘렸는데, 예측하지 못한 대외변수로 제품 판매가 기대 이하인 경우, 제조기업이 입는 피해는 크다. 더구나, 황동, 알루미늄으로 만든 산업용 금속제품이 범용성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할인된 가격으로 덤핑 판매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던 최영 장군의 말씀이 현실이 돼 버린 셈이었다. 결국,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리먼 사태)의 파고를 넘지 못한 L의 아버지 회사는 부도를 맞았다. L도 아버지와 함께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은행 채무의 연대보증인이었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의 신용불량자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다. 어디든 직장에 취업해서는 수억 원에 달하는 금융권 채무 원금은커녕, 십몇 퍼센트에 달하는 (연체) 이자를 내기도 어렵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다.
결국 L의 선택은 개인파산, 면책이었다. 법원의 판사님도 안다. 그에게 채무불이행의 고의성이 없었음을. 그리고, 그가 진 빚은 (웬만한) 근로소득으로는 평생 상환할 수 없는 규모의 금액임을 말이다.
L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별의별 생각을 다 해보았지만, 채무를 정리할 뾰족한 수는 없었다. 아버지 사업을 도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필수 연대보증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자칫 평생을 빚쟁이로 쫓기며 살 참이었다. 자존감은 바닥을 친 지 오래고, 자존심 역시 상할 대로 상했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다. 파산이 선고되면, 책임이 면제된다. 실패를 받아들이면, 인생이 다시 시작(Re-set)될 길이 열린다. 파산면책 후 7년이 지나면, 신용불량에 관련된 기록도 삭제된다. 채권의 소멸시효(消滅時效)가 완성되는 셈이다.
그사이 연대보증 제도는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L 대표와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더 이상 양산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으니, 참 다행이다.
L은 면책받았지만, 수년간 은행거래나 카드 이용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는 7년 동안 와신상담(臥薪嘗膽)했다. 금속 장신구 가공 기술은 이때 연마했다. 기회는 언제 올지 모른다. 시간은 절대 허투루 쓰면 안 된다.
L은 그렇게 성수동으로 돌아왔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황금(황동, 금속)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의 선택은 황동 오브제, 수공예 소품기업 재창업이었다.
아버지 회사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자본금이 부족하니, 허름한 창고에서 시작해야 했다. 레트로(Retro) 공방 느낌이 나고, 유동 인구도 많은 성수동이 제격이었다. SNS 마케팅과 제품 디자인에 특화된 20~30대 아르바이트생 구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성수동에 터 잡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바로바로 현금수입을 창출해야 하니, 일반소비자 대상으로 사업을 해야 했다. 길거리를 오가던 젊은 대학생들이 창업초기 단골이 됐다. 매장의 위치도 한몫했다. 초기 자본금이 적다 보니, 낮은 가격으로 승부를 보아야 했다. 그래서 결정한 아이템이 바로 황동 소품(액세서리)이다.
특히, 글귀를 새겨 넣은(刻印) 금속 책갈피, 기념패, 명함꽂이의 인기가 좋다. 재창업한 지 3년 차, 브랜드의 인지도가 높아졌다. 최근 1년 매출액도 5억 원을 넘었다. 가내 수공업(?) 비슷한 사업인데, 이 정도 추세면 중박 이상은 된다. 기념(紀念)에 특화된 아이템과 디자인이 입소문이 났는지, 회사와 기관 단위의 단체 주문도 크게 늘었다. 기념비적 사건이다!
아직 갈 길은 멀다. 다품종 소량 생산에, 박리다매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하니, 출근부터 퇴근할 때까지 하루 종일 정신이 없다. 아직, 업무를 믿고 맡길만한 후계자도 키우지 못했다. 무엇보다 육체적 노동강도를 낮춰야 한다. 업무 생산성과 효율성도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추가적 자본(!)이 필요하다. 그를 돕지 않을 이유는 없다.
베스트제품의 소비자 판매가는 평균 5천 원에서 1만 원 남짓이다. 원재료와 외주가공비를 제하고 나면 30% 정도 남는다. 네이버를 비롯한 오픈마켓의 수수료, 배달 수수료, 아르바이트생 인건비는 별도로 나간다.
얼추 계산해 보자. 연간 매출액이 5억 원이면, 매월 대략 4천만 원, 일 평균 140만 원 정도의 매출이다. 제품의 개당 가격이 7천 원이라고 치면 하루에 200개를 팔아야 한다. 하루 8시간 일한다면 시간당 25개를 만들어야 가능한 수치다. 적정 재고를 확보해 두어야 하니, 시간당 생산량은 30개 이상이다.
가끔은 세밀한 후가공 작업도 필요하니, 아르바이트생을 한둘 더 늘리더라도 소화하기 버거운 수준이다. 이곳은 힙한 성수동(!) 상권 아니던가. 노동자(!)의 휴식권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L 대표는 마흔다섯이다. 다시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다. 그는 헤매고, 넘어지고, 깨지는 삽질 인생 7년 만에 진짜 인생을 찾았다. 그는 실패가 두려워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가슴 뜨거워지는 꿈을 꾸고, 진짜 인생을 찾아 나서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이제 은행거래도, 신용카드 결제도 가능하다. 확인해 보니, 그의 개인신용도는 이미 나와 같은 수준이다. 직원 인건비, 월세, 원재료 구매대금, 각종 공과금을 다 제하더라도, 그의 월 소득은 어느새 내 월급보다 많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쯤 되면, 그는 회복탄력성의 표상(表象)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여든을 넘긴 L의 아버지도 더 이상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 없게 되었다. 그간 아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았을 텐데,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여전히 부모님 두 분을 모시고 산다.
그는 오랫동안 자기를 믿고 기다려준 여자친구와 결혼식도 올릴 예정이다. 동거한 지는 좀 되었는데,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혼인신고도,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행복을 만끽할 시간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서울 시내 아파트 청약에도 당첨됐다. 재앙이 오히려 복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다.
행여나 예전 일로 인해, 세상에 갖고 있을지도 모를 미안한 마음 역시 훌훌 털어버려도 괜찮을 듯하다. 재창업 후 3년 동안, 그가 납부한 부가가치세, 사업소득세, 그리고 직원 3명의 인건비만 더해도 족히 수억 원은 된다.
의지가 새삼 대단하다. 그는 이십 년간 한 우물만 팠고, 바닥을 찍는 와중에도, 손끝의 예민한 감각을 계속 유지하며 언제 찾아올지 모를 기회에 대비했다. 기회는 기약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공부와 절차탁마(切磋琢磨)가 필요한 이유다.
공교롭게도 L이 만드는 건 기념(記念)품이다. 그는 제품을 통해 고객에게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기억(記憶)을 선물한다. 제품은 그가 판매하는데도, 수많은 고객이 그의 (온/오프) 매장에 방문해 고마움을 표시한다.
마흔다섯, 성수동의 연금술사는 재창업의 정석(定石)이다. 그의 실패와 재도전, 성공적인 재기 스토리는 내 마음속에 영원히 각인(刻印)되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