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기

믿고, 배신하고, 또 믿고 (2)

by 임요세프

살다 보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이 생긴다. 선한 의도가 때론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엉뚱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금전 문제가 얽힌 경우엔 더욱 그러하다.

J는 사업하는 친구에게 선뜻 돈을 빌려주었다가 수천만 원을 떼였다. 월급이 수입의 전부인 직장인에게 수천만 원을 날리는 일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억울한 일이다. 그 일로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남의 눈에 티끌은 보아도 제 눈에 대들보는 못 보기 마련이다. 자격증과 학위를 취득한 금융전문가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다. 제아무리 변호사, 아니 판검사라 하더라도, 본인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던가. 스스로를 과신하면 안 된다.

J는 돈을 빌려주기 전에, 친구가 운영하던 공장이 일시적 자금 유동성 위기만 벗어나면, 예전처럼 다시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를 나름 면밀하게 검토했다. 25년 신용평가 전문가로서 역량을 발휘했다.


거래처들과 체결한 수주계약서, 매입-매출처별 신용도와 결제기일, 급여대장과 4대 보험료, 대표자 평판까지 크로스체크 했다. 그러나, 결과는 본인의 예상과 달랐다. 역시나, 교과서적 이론과 교과서 밖 실제 세상 간 오차는 컸다.

원금에 이자까지 쳐서 상환하겠다고 한 기간은 6개월. J는 그 흔한 차용증도 쓰지 않고, 친구만 믿고 돈을 빌려주었다. 세상이 두 쪽 나지 않는 한, 공장 기계와 설비, 원재료를 떨이로 팔아서라도 J 돈만은 꼭 갚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친구의 호언장담이야말로, 든든한 신용장이자 확실한 담보였다.

수십 년간 이어온 우정, 가족 간의 두터운 친분, 친구의 친구끼리 이어진 인적 네트워크를 생각하니, 차용증을 쓴다는 건 도리어 친구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J는 결국 마이너스통장까지 개설해 친구가 말한 금액에 천만 원을 더 얹어주었다.




호의(好意)가 채무불이행으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친구는 처음엔 주 단위로 회사 매출 현황과 자금수지를 보고했다. J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두 달째는 월말 결산 후 수백만 원의 이자를 미리 상환하기도 했다. J 입장에서는 임도 보고 뽕도 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였다. 성실하고 착하게 살면서, 너른 마음으로 주변까지 잘 살폈더니, 때론 행운의 여신이 자신에게도 찾아오나 보다 생각할 수밖에.

그러나, 약속된 6개월이 다가오자, 어쩐 일인지 친구와 연락이 잘 닿지 않는 날들이 늘어났다. 공장에 특별한 이슈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상환날짜가 도래하자, 공교롭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되었다. 때맞춰 가끔 연락이 닿던 친구의 핑곗거리도 가파르게 늘어났다.

주거래은행에서 원금 상환을 독촉하는 바람에 신용불량자가 될 수 없어 그 돈 먼저 갚았다, 이자가 높은 제2금융권의 원금을 먼저 상환했다, 오랜 인연의 매입처 사장님이 사정사정하는 바람에 구매대금 먼저 결제해 줬다, 갑자기 어머님이 쓰러져 서울 대형 병원에서 수술하시는 바람에 병원비를 지급했다, 등등 피치 못할 사연은 차고 넘쳤다.


상환은커녕, 친구는 오히려 강한 태도로 대응하며 J를 힘들게 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잦은 연락은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위반일 수 있으니 연락을 자제해 달라는 문자였다. 이젠 갑과 을이 바뀐 셈이었다.


J는 본인 스스로가 공공기관 근무자로서의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기 검열을 하기에 이른다. 혹시나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튈까 봐, 더 이상 친구에게 채무 상환을 요청하기도 어려웠다. 자괴감과 후회가 뒤따랐다.

J는 마지막으로 정중하게 부탁했다. 이자가 많이 올라 부담스러우니, 부디 매월 이자만이라도 대신 내 달라고 말이다. 그제야 답신이 왔다. 그러겠노라고.




부끄러움을 달래려 타인의 에피소드를 장황하게 설명했기는 하나, 사실 내 발등에 찍힌 도끼자국도 여럿이다.

대학 졸업할 즈음, 한 평 남짓한 고시원에 살면서, 과외 아르바이트하며 취업을 준비하던 때다. 고등학교 동창 N이 갑자기 찾아와 갈 곳이 없다며 함께 살자는 요청을 해 왔다. 잠시 고민했으나, 결국 없는 살림에 조금 더 넓은 하숙집으로 옮겨 그와 함께 지냈다. 물론, 월세는 대부분 내가 냈다.

N은 대학원에 합격했는데, 등록금이 없다며, 고학생이던 나에게 250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이다음에 취업하면 첫 달 월급 받아서 바로 갚겠다는 그의 말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물론, 차용증도 쓰지 않았다. 고등학교 동창의 끈끈한 우정이 곧 담보요, 신용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통장 잔액은 거의 정확하게 N의 등록금과 같았다. 선행을 베풀 환경마저 제대로 조성된 셈이다. 스물다섯의 대학생이었던 난, 선한 의도는 결코 배신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로부터 이십 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직, N은 돈을 갚지 않았고, 연락도 되질 않는다. 가끔, 다른 친구들을 통해 그의 안부를 전해 듣는데, 내로라하는 대형 증권사에 다니면서, 돈도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산다는 소식이다. 그는 나와 엮일 만한 시간(T), 장소(P), 상황(O)을 피해 다니는 것일까?




배신의 역사를 떠올리다 보니, 불현듯 L 대표와의 에피소드도 생각난다. L은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기존 주력사업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게다가 그즈음 배우자가 실직해 이중으로 힘들어했다.


그걸 지켜본 난 L의 성실성과 진정성, 그리고 미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 그에게 협업 시너지가 기대되는 다른 기업가를 소개해 주었다.

그러나, 얼마 후 L은 돌연 달라진 태도로 나를 원망했다. 상대방의 제안으로 새로이 시작한 사업이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다. 초기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지자, 급기야 나에게까지 해결을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돈 문제가 결부되니, 제삼자니 좋은 인연이니 그런 건 오간 데 없었다. 양쪽을 오가며, 오해를 풀려고 아등바등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오지랖의 대가로 난 쓰라린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인심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도 뼈저리게 와닿는다. 무엇보다 힘든 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받는 일이다. 직접 경험하거나 바로 옆에서 지켜본 후에야 알게 된다. 사람들이 내 맘 같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고, 사람과 인연을 끊고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설령, 어제의 철천지원수라 하더라도, 평생 그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며 사는 건 자기만 손해다. 애당초 만남, 이별, 사랑, 우정, 증오는 모두 상호작용이다. 상대방 잘못이 백 퍼센트인 경우란 없다.

J는 수천만 원을 날린 상황에서도, 드러내놓고 친구에 대한 원망을 표현한 적이 없다. 돈을 빌려주겠다는 의사결정을 한 것도, 상호 간 약속 증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도, 차입금 상환 가능성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것도, 사람을 믿은 것도 결국은 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J는 친구에 대한 복수심(?)을 키우기보단, 스스로 실수를 만회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절약의 일상화로 1년 만에 대출금을 모두 갚은 것이다. 중년의 찐한 빚탈출기다. 그러다 보니,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도 받게 되고,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몸도 마음도 회복할 수 있었다.


다행히 세상은 두 쪽 나지 않았고, J의 친구도 영원한 배신자는 아니었다. 당초 판매처로부터 대금회수가 늦어져 단기 현금흐름이 나빠졌기에, 우선 급한 불(이자율이 높은 금융권 채무)부터 끈 것이었다. 어머님이 갑자기 쓰러지신 것도, 공교롭지만 사실이었다. 진심 어린 사과에 이어, 지금은 매월 원금에 이자까지 잘 상환하고 있다. 높은 이자수익은 덤이다.



다음은 나의 이야기다. N이 더 늦기 전에 나를 한 번 만날 기회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지금껏 타이밍을 못 잡은 모양이다. 아무래도, 내가 그다지 호락호락한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만약 내가 조금 더 품이 넓은 사람이었다면, N은 진즉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술자리를 제안하고, 빌렸던 원금에 몇 배를 더 쳐서 되돌려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이젠 내가 마음을 고쳐먹을 차례다. 그때 내가 내어 준 등록금이 마중물이 되어 N이 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족하다. 다행히, 250만 원 전액을 상각(손실) 처리하더라도, 내 인생에 미치는 타격감은 없다. 마음이 한결 편하다.


해피엔딩은 계속된다. 지난달 속초에서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는데, L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다. 코로나가 물러간 이후, 다시 사업이 본궤도에 올라 성업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그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새 사업을 시작한 것인데, 돈은 안 벌리고, 계획대로 일도 잘 진행되지 않다 보니, 괜히 나에게 화풀이했다는 사과의 메시지도 이어졌다.


중간에서 브로커로 오해받고, 양쪽 모두로부터 원망받았던 게 참 힘들었었는데, L의 전화 한 통으로 미움의 감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삶은 믿고, 배신하고, 또 믿는 과정의 반복이다. 가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대부분 날이 없어 안 아프고, 가끔 금도끼도 있다.


선한 의도와 행동이 종종 엉뚱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네 인생은 오해를 이해로 바꾸어 가는 과정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노력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설득하려 해도,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 해도, 나와 기질과 취향이 맞지 않는 사람들은 어디든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금전 문제로 소중한 인연을 놓치는 우(愚)만 범하지 않으면 된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게 돈이다. 다친 마음을 치유하는 것도, 닫힌 마음을 다시 여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차용증이 아닌, 좋은 인연을 판별할 수 있는 통찰력(Insight)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완벽한 선인도, 악인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