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계약직, 디자이너, 그리고 ADHD인 사람의 일생생활 분투기
제 직장은 많이 폐쇄적입니다, 선생님.
덤덤하게 말했지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내 상황에 대한 분노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미어터지는 정신과의 예약일정 속에서, 타지로 병원을 다니는 나는 평일에 진료 일정이 잡히면 반차와 연차를 반복해서 내고 있었고, 언제까지고 이렇게 연차를 소진할 수 없어 난처했다. 그 가운데 병가 사용을 고려해 보게 되었지만... 결심하기가 녹록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아주 폐쇄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에는 보안이 없다. 이 작은 인구가 살아가는 시골도시, 더 작은 사회인 내 직장에서 그게 무엇이건 정신과 병력의 서류를 제출하고 병가를 제출하는 순간, 암암리에 이야기가 돌 수도 있을 것이란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오바 아니냐, 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 상황이 오바고, 내가 오바고, 그냥 다 오바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반복작업과 지루함이라면 질색을 하고 그래서인지 주로 예체능과 예술계통으로 빠지기 다반사인 ADHD가 어쩌다 공공기관에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걸까.
사기업에서 구른 지 n 년, 아주 많지는 않은 경력이었지만 불안정한 계약상황과 급여에 두 손 두 발 다 든 내가 향하게 된 곳이 공공기관이었다. 재미와 자극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그것들을 추구하다가 가랑이가 찢어진 내 카드값을 지속적으로 메꾸려면 아무래도 안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공직사회 단점의 벽은 누구에게나 단단하다지만,
그 앞에서 쿠키처럼 부스러지는 내 멘털의 원인은 ADHD를 너무 많이 함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더 잘 이해하게 되어가는 과정과, 어디엔가 있을 나 같은 사람을 위해- 그러니까 꼭 공직이 아니더라도, ADHD지만(또는 내가 그렇지 않을까 의심만 하며) 폐쇄적인 사회 속에서 반복적이고 지루한 업무들을 떠안아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오랜만에 다시 키보드를 잡는다. 당신 같은 사람, 여기에도 있다.
적어도-내가 아는 선에서- 이곳에는 나밖에 분투하는 사람이 없지만. 나는 ADHD인 사람들의 글을 보며 울고, 웃고, 또 많이 공감하고, 내가 검사를 하게 되는 일에 큰 도움을 받았다. 나의 글도 그런 역할을 하길 바란다.
또는 당신의 이해할 수 없는 동료가 마치 나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래서 글을 읽다가 피식하거나 분노(...)했다면, 내 글이 당신의 동료와 조금 더 원만하게 함께 할 수 있는 지침서가 되길 바란다. 그게 아니더라도, 얘가 그래서 그랬구나, 적어도 알게는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나와 내가 ADHD임을 밝힌 일부 주변인들도,
그렇게 서로에게 익숙해져가고 있다.
나는 계약직이라지만, 또 디자이너라지만, 그래도 공직사회를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공무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당신 곁에서, 오늘도 내일도 한 글자씩 써 내려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