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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타닥 Jul 25. 2024

포기가 잦아서 도전도 잦습니다

ADHD와 일하면 좋은 점

요가를 하는데 한 자세를 오래 유지하기 힘들어서 금방 포기해 버리는 나를 보고 많이 실망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하루 이틀 더 나를 관찰해 보니, 그렇게 금방 포기해 버리고 또다시 시도하고, 또 포기하고 또 시도하고 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주 포기하니 자주 도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장점이라면 장점일지도.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들이 거의 다 그랬다는 것을 느꼈다. 

작심삼일을 열 번 하면 작심한 달이 되고, 그걸 또 열두 번을 하면 그냥 일 년 동안 열심히 한 사람이 되는 거다,뭐 이런 류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끈기가 부족하고 금방 지쳐버리는 ADHD가 뭔가 잘 해내는 것처럼 보인다면, 십중팔구는 그냥 잦은 포기와 잦은 도전을 반복하고 있으리라. 아니면 나만 그런 걸까?!


지난 글에서는 ADHD와 일해서 나쁜 점에 대해서 이야기해 봤다면,  

오늘은 함께 일해서 좋은 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이상할 만큼 사소한 것들을 잘 기억해 준다. 


어제 먹은 점심메뉴나 그제 부탁한 일은 기억하지 못할 때도 많지만, 당신의 커피취향이나 스치듯 말한 건강상태등을 기억하고 챙겨주기도 한다. 애정 어린 관심일 때도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이 선택적 기억력의 힘이 닿는 곳에는 성역이 없다. 랜덤 하게 기억할 때도 있고, 단순히 그 정보가 흥미롭다고 생각되어서 뇌 속 어딘가에 저장해 뒀을 가능성이 크다. 


또 그 반대로, 비밀을 아주 잘 지켜주기도 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선택적 기억력에는 성역이 없다. 만약 당신이 비밀이나 외부에 유출되지 않았으면 하는 정보를 ADHD에게 공유했다면, 그런데 그 비밀이 아주 잘 지켜졌다면, ADHD는 당신이 무엇을 말했는지  완벽하게 잊었을 가능성이 높다. 

정말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왜냐면 잊어버렸으니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또, 깜짝 놀랄 정도로 고도의 집중력으로 여러 가지 일을 빠르게 처리해버리기도 한다. 


학창 시절부터 유구히 나를 따라다닌 내 친구는 방광염이었는데, 한번 집중하면 화장실에 가는 것도 잊을 정도로 집중해서 할 일을 끝내버리는 성격 탓이었다. 이게 ADHD 탓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얼마나 놀랐던지. 자랑거리이자(?) 집중력의 원천이 지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누구라도 그러리라. 


이렇게 보면 썩 나쁜 일만도 아니기도 하다, ADHD라는 거. 

하지만 이외에도 이야기할 불편한 점이 서른마흔다섯 가지쯤 있지만, 오늘은 차치하도록 하자. 


정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나는 왜 이건 잘하고 남 들다 하는 저건 못하는지 궁금한 당신, 나와 같은

지병을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 이상하지만 바쁠 땐 놀라운 속도로 일을 처리해 버리는 당신의 직장 동료도, 나의 동지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지들, 그리고 우리 옆자리의 당신, 오늘도 화이팅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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